그때의 나_12
여전히 나는 봉사활동의 단체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이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발표를 해야 하는 자리였는데. 아, 온몸이 덜덜 떨리고, 감정이 격해지면서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뭐라고 말을 했는지도 모른 채 말을 하고 단상을 내려왔었다. 어디 나서서 말할 때 이렇게 떨었던 사람이 아닌데 왜가 왜 이렇게 떨고 있었던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대학원을 다니면서 자신감이 많이 떨어지고 있었다. 공부를 하면서 더 자신감 있고 똑똑해져야 하는데 지속되는 비난과 비판으로 나는 점점 초라해졌고, 내가 그 순간에 대드는 것보다 그냥 네네 라고 하면서 이 순간을 지나치는 게 낫다고 생각했었다. 삶에 대한, 그 교수라는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체념이 나를 병들게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렇게 일반화하고 싶진 않지만 대한민국의 국내 대학원은 이상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석사학생으로 입학하면 공부와 연구만 하는 게 아니다. 연구비사용의 영수증처리와 예산관리도 해야 하고 조금의 장학금이라도 더 받으려면 학과사무실의 일을 보조해야 한다. 그뿐인가, 교수 수업보조도 하고 교수의 개인적인 일도 같이 진행해야 한다. 그래, 그럴 수 있지 하지만. 교수들은 대부분 사회화가 덜 된 사람들이라 자기 기분 나쁠 때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르며 친구도 없다. 다시 말하지만 일반화할 순 없다! 아닌 교수님들도 있겠지.
아무튼 그런 학문적으로 똑똑하고 유능하나 사회적으로 인격적으로 다소 모자란 사람들이 많다 보니 학생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매우 부정적으로 흐른다. 그냥 비판적인 시각이 강하다 정도가 아니라 욕을 하기도 하고 비난을 위한 비난을 하기도 한다. 문제는 꼭 말 앞에 "나니까 너한테 이러는 거다" "내가 다 너 생각해서 하는 말이다."를 붙인다는 거다. 속으로 늘 말했다. 우리 부모님은 안 그러신다. 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러지 않는다. 가스라이팅을 당하지 않으려고 용을 쓰지만 나도 모르게 나는 나를 잃고 있었다.
절박했었다.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빠져나오기 위해서 뭐든 했다. 2시간 3시간 들리지도 않는 교수의 찢어지는 소리에 벙어리처럼 있었다. 아무 대구도 하지 않는다고 또 혼났다. 그래도 가만히 있었다. 내 연구에 대한 건전한 토론보다는 나로 인한 연구실 내 분위기. 누가 안 좋고 누가 좋고. 견뎌야 했다. 내 탓이 아님을 알고 오해를 사기도 했지만 모든 걸 다 이해시키고 설득시킬 자신도 없었다. 그렇게 졸업이라는 걸 했다. 졸업할 때도 본인 몰래 취업했다고 한 소리했다. 길길이 날뛰었다. 그래도 좀 이름 있는 회사인걸 알자 내가 본인실적이 된다는 걸 알자 화가 누그러졌다.
대학원에서의 5-7년은 정말 나를 잃어가는 시간이었다. 점점 고립되어 가는 시간이었고 나 자신의 매력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꽤 어린 나이에 뭐든 할 수 있었을 그 나이를 나는 그렇게 보냈었다. 만약 대학원을 가지 않았더라면 나았을까? 매 기념일에 작은 편지 쓰는 걸 즐기는 소녀였고. 오빠들 사이에서 굴하지 않는 낙천적인 소녀였다. 조잘거리는 걸 좋아하고 남눈치보다는 날 더 챙겼던 이기적인 소녀였다. 그런데 나는 지금의 나는 지침이 쌓이고 쌓여 둔해지다 못해 쳐진 사람이 되었고 건드리면 움츠려드는 식물처럼 사랑들의 시 시선에 움찔움찔하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