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의 나_13
대학원을 졸업하는 즈음, 나는 여행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도쿄였다. 혼자가 아닌 친구와 가기로 마음먹었다. 함께 가는 친구는 서울에 와서 만났던 그 그룹 내의 아이였다. 괜찮은 친구라고 생각했었던 그 친구였다. 그 당시에는 그도 나도 싱글이었기에 여행을 간다는 건 큰 무리 없이 진행되었다. 그렇다고 서로에서 뭔가 감정이 있어서 움직였던 그런 여행은 전혀 아니었다. 정말 그냥 동료였다.
그 녀석과는 첫 여행은 아니었다. 그전에 홍콩을 한번 다녀온 적이 있었다. 그 친구와 함께했던 여행에서 나는 일단 혼자가 아니라 함께 갈 수 있다는 것에 안도감을 느꼈다. 비행기를 타고 내리던 건 이제 기억에 없다. 하나 기억에 남는 건 길을 찾는다고 혼자서 열심히 걸어가다가 잘못된 길을 가고 또 가다가 길도 잃고 서로 말도 잃은 순간이었다. 난생처음 그 친구가 화내는 걸 보았다. 그리고 그는 말없이 의자에 앉아서 바다멍을 때렸었다. 나도 어쩔 줄 모른 채 멍 때리고 있었었다. 그때 깨달았다. 여행은 함께 하는 것이라고. 길을 잃어도 같이 잃고 좋은 곳을 가도 같이 가는 곳이라고.
그리고 처음으로 그 녀석이 화내는 걸 보았다. 그 녀석의 감정표출을 처음 봤다고 해야 하나? 그런 부분에서 오히려 좋았던 기억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리고 고맙기도 했다. 여자친구들과 갔던 것처럼 조잘거리거나 수다를 떨거나 하는 여행친구는 아니었다. 하지만 뭔가 듬직한 느낌이 있는 여행이었다고 해야 하나? 그때의 홍콩은 홍콩을 느끼기보다는 그 친구를 마음으로 이해하는 시간이었다.
그런 녀석과 도쿄를 갔었다. 주말을 이용해서 다녀왔었다. 역시나 방은 셰어 했고, 한 개뿐인 침대도 셰어 했었다. 참 우리는 아무 일도 없었다. 특히나 나는 더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이 있었음에도 매력적인 제스처를 취하지 않았고 아니 못했고, 그도 내게 그 어떤 제스처를 취하지 않았었다. 아직까지 조금 궁금한 부분이기도 하다. 정말 아무 느낌이 없었는지, 홍콩 도쿄 그리고 쿠알라룸푸르까지 3번을 함께 여행을 갔는데 단 한 번도 그 어떤 일도 생기지 않았다는 게. 정말 궁금한 부분이긴 하다. 아마 평생 물어보지 못할 질문이기도 하지만.
도쿄에서의 여행은 여행도 여행이었지만 대학원생활을 진짜 마무리한다는 의미 있는 여행이었다. 사실 이 녀석돠 어디 어디 갔다는 것보다는 나의 대학원마무리를 혼자가 아닌 친구와 마무리할 수 있다는 데 의미가 있었다. 도쿄의 그 시끌벅적하고 요란한 소음은 오히려 내가 대학원 다음을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주었다. 다음이 정혀져있었기 때문에 조금은 불안 감 없이 있을 수 있었다. 별건 아니지만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하면서 나의 불안함 혹은 나의 기분을 그 녀석에게 털어냈었다. 신주쿠의 한 꼬치거리에서 간단하게 꼬치와 음료를 마셨다. 다들 갓 퇴근해서 야식을 하는 분위기였는데 우리는 타국에서 여행을 하면서 속내를 털어놓는 시간이었다.
그 녀석도 대학원을 다녔기 때문에 내가 하는 이야기에 많이 공감을 해주었고, 크게 토닥여주지는 않았지만 알게 모르게 내게 많은 지지를 해주고 있구나 하는 마음이 느껴져서 참 고마웠었다. 그런 친구들이 있다. 휘황찬란한 말이나 달콤함 말이 아니어도 이 친구가 나를 지지해주고 있구나. 나를 응원해주고 있구나 하는 그런 친구. 이 녀석이 그랬다.
모두가 힘든 대학원생활을 보내고 보냈었겠지만 나도 누구보다 힘든 대학원을 보냈는데 그런 대학원생활을 마무리한다는 게 시원섭섭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섭섭한 것도 시원한 것도 없었다. 그냥 끝났다. 였다. 앞으로 두 번 다시 돌아보지 않을 나의 대학원생활이 끝났다. 그렇게 여행과 함께 마무리지었다. 어두웠던 그 내 마음에 이제는 빛이 들거라 생각하면서 그렇게 나는 나의 대학원을 마무리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