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나_12
가끔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짝사랑 전문 배우가 나오곤 한다. 나의 과거를 생각해 보면 나도 그런 사람 중의 하나인 것 같다. 나는 사람으로서는 꽤 멋진 사람인데 여자친구로서는 잘 모르겠는 사람 중 하나이다. 어딜 가도 제대로 좋아한다는 표현도 못하는 바보였으니 말이다.
솔직히 남자들이 좋다고 고백했다는 친구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쟤네는 어떤 매력이 있어서 저렇게 고백을 받는 건가 싶었다. 그렇게 비교를 하면서 나는 사랑스럽지 않다고 내가 결론을 내어버렸는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참 가랑비 같았다. 누군가를 정말 좋아할 수 있는 것도 복이라면 복인거지.
함께 어울리면서 함께 고민하고, 또 구박을 받으면서도 그게 그렇게 좋았고, 밤늦게 전화해서 별것도 아닌 걸로 이것저것 물어보면서 그저 10분이라도 더 전화하는 게 좋았다. 이것도 모르냐, 왜 이런 걸로 전화하냐 투덜거려도 그것만으로도 그저 좋았다. 밸런타인데이라고 해서 초콜릿을 주고 싶은데 혼자 주면 괜히 티 날까 봐, 지금 생각해 보면 티 나게 줬었어야 했는데 말이지. 20여 명 넘게 있는 사람들의 초콜릿에 또 엽서까지 준비한다고 부지런을 떨었던 나였는데 혹시나 어딘가 행사에 네가 간다고 하면 나도 가려고 일부러 시간 빼서 달려가고, 혹시나 내 마음이 다른 사람들에게 들킬까 봐, 조마조마하면서 애써 더 틱틱거리고 괄괄하게 굴던 때.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더 좋아했었는데 불현듯 나타난 그 사람의 연인. 좋아하는 것에는 순서가 없고, 좋아하는 것에는 장단이 없다고 했기에 나는 그렇게 짝사랑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지나 나타난 그에게는 그때의 아쉬움과 애틋함에 더 빨리 마음을 줘버렸고, 그냥 그가 하는 모든 것들이 옳아 보였다. 지금도 그럴 리 없다고 믿고 또 믿고 있는 나 자신이 참 어리석지만. 그래도 내 믿음만은 저버리지 않길 바란다고 매일 이렇게 기도한다. 진심은 통할 것이라고 편지도 쓰고 메일도 쓰고, 카톡도 보내고 해 보지만 진심이 닿지 않은 것인지 통하지 않는 것인지 연락도 없는 사람. 고소를 하든 뭘 하든 할 수 있는 유효기간이 틱톡틱톡 줄어들고 있는 이 와중에도 나는 고민하고 고민하면서 널 믿고 있는데 어디 있는 것인지.
짝사랑하던 사람과 잠시나마 연인일 수 있었다는 것에 행복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연인이라고 착각하는 것에 슬퍼해야 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이젠 집착인가 싶기도 하다. 정말 남들이 보면 어리석어 보인다는 거 잘 안다. 사기를 당했고, 고소를 하면 되는 것을 왜 이러고 있냐고, 한두 푼도 아니고 몇천만 원을 이렇게 기다리고 있냐고, 왜 이러고 있냐고. 정말 아름답지 못한 짝사랑에 내가 자존심이 상해 버린 건가, 오늘도 생각하고 또 생각해 버리는 시간이다.
덕분에 확실한 건 나는 매력이 별로 없나 보구나 그건 확실해진 것 같다. 상대가 보기에 순진하다거나 속여먹기 좋아 보이는 그런 사람일 뿐이지. 상대방을 애달프게 해야 한다느니, 아쉽게 해야 한다느니, 그런 거 나는 모른다. 좋아하는데 왜 그래야 하는지 머리로도 이해할 수 없다. 이건 연인관계뿐 아니라 친구관계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라도 더 잘해줘도 시원찮을 판에 튕긴다니, 아쉽게 한다니. 나로서는 정말 말이 안 되는 거다. 그런데 그런 마음을 이용한다는 건 더 최악인거지. 그리고 그렇게 보인다는 것도 최악인거지. 언젠가 이런 마음과 통하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 생각도 해봤지만 이제는 그런 사람은 없다고. 나에게는 없을 것이라고 확신하게 된다. 슬프지만 나에게는 그런 사람은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