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5년이 넘는 독일 생활을 정리하고 캐나다로 온지도 일 년이 되어간다. 한국에 있을 때는 막연히 서구권은 다 비슷하리라 생각했다가 독일에 가서 나름 문화 충격을 받았는데, 캐나다에서도 생각보다 적응이 어려워 또 한 번 고생 중이다. 심지어 어느 정도 예상하고 왔는데도.
한국에 있는 동안 서구 선진국에 대한 나의 관점은 다분히 미국 중심적이었다. 미국과 유럽은 다르겠지만 그래도 비슷한 뿌리를 가지고 있으니 적당히 비슷하리라는 생각. 그리고 미국과 캐나다는 또 비슷하리라는 생각. 독일에서의 시간은 좁은 시야를 넓히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독일과 캐나다는 정말 많은 차이가 있지만 직장인으로서 느끼는 가장 큰 차이는 독일이 굉장히 일하는 사람 중심이라는 점이다. 유럽이나 북미의 레스토랑에서는 보통 식사 후 앉은자리에서 계산을 한다. 이때 서빙하시는 분에게 계산하고 싶다고 말한 후 그분이 오실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급한 일이 있어 한번 더 계산하겠다고 말하거나 하면 적어도 독일 레스토랑에서는 실례다. 물론 관광객이 많이 방문하는 곳이나 외국인이 많은 곳에서는 그러려니 하면서 기다리라고만 하는 경우도 많지만, 내 지인의 경우 기차 시간에 늦을까 봐 재촉하다가 굉장히 무례한 행동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서빙하는 분은 최선을 다해 순서대로 처리하는 중인데 그 순서를 어기고 자기 먼저 처리해달라는 부정한 부탁, 혹은 너 너무 느리니까 빨리 좀 일하라는 압박 정도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는 것 같고, 이건 무례한 행동이라는 논리인 듯하다. 한국인의 관점에서는 느릿해 보인다는 점이 함정이지만. 회사 동료들의 경우 애초에 재촉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회의 시간이 다가와도 계산을 못하면 다른 동료에게 부탁한 후 먼저 일어나곤 했다.
내가 지냈던 바이에른의 경우 평일/토요일 저녁 8시에는 음식점 등의 일부 업종을 제외한 모든 상점은 문을 닫아야만 하고, 일요일에는 아예 문을 여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슈퍼마켓의 경우 도시 당 한두 곳만 문을 열 수 있고 그 외에는 모두 문을 닫아야 한다. 노동자들이 쉬어야 하기 때문이다. 저임금 노동자의 경우도 주 40시간 노동만으로 생활하기에 어려움 없는 임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하면서, 쉬는 날은 반드시 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독일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회인 듯하다. 모든 국민에게 의료가 무상으로 제공되는 국가인 만큼 휴식이 부족해서 생길 수 있는 의료 비용을 최소화하려고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일요일에 밖에 나가면 레스토랑과 커피숍을 제외한 모든 상업 시설은 문을 닫아서 창문 밖으로 구경할 수밖에 없다. 간혹 공휴일이 토요일에 겹치는 경우는 상점들이 주말을 통으로 쉬는데, 직장인들은 좀 답답하긴 하다.
캐나다에 처음 와서 충격이었던 것은 부활절 일요일에 슈퍼마켓을 비롯한 상당수의 상점들이 문을 열었다는 점이었다. 유럽만큼은 아니어도 부활절은 캐나다에서도 꽤나 중요한 휴일이어서 당연히 주말에 문을 열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당연하다는 듯이 문을 열고 있었다. 코로나로 인해 문을 닫은 상점들도 일부 있었지만, 평소에는 대부분 문을 연다고 한다. 일요일을 포함한 모든 공휴일 중 대부분 문을 열지 않는 날은 크리스마스와 새해 첫날 정도라고. 덕분에 토요일에 깜박하고 장보는 것을 잊어버려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은 좋았지만, 때때로 주말에도 일해야 하는 직원 분들을 한 번씩 생각하게 된다.
그 외에 휴가나 병가 등의 제도 역시 캐나다와 독일은 비교가 되지 않는다. 나중에 여러 가지 제도적 차이를 비교해볼 수 있겠지만, 적어도 노동의 관점에서는 확실히 독일이 훨씬 일하는 사람에 대한 보호가 잘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