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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시학과 시

#시의 낯설기에 대한 소고


#시의 낯설기에 대한 소고


이근모(시인)



Ⅰ. 서


세상은 늘 불균형의 대가를 통해서 양면성을 가지고 존재한다. 그것이 곧 현실세계의 모순이고 병폐이다 그렇다고 세상에 평행선을 그을 수는 없다.


그러다 보니 모든 예술이라고 총칭하는 행위 에는 가슴을 떨리게 하는 감동이 있어야 하고 그 감동과 가슴의 전이가 깊을수록 좋은 예술 이라는 이름을 부여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시에서의 “낯설게 하기”라는 기법이 시 창작 이론으로 거론되곤 하는데, 이에 대한 개념을 살펴보면


현대시에서 ‘낯설게 하기’는 일상적 타성에 젖어 있는 사람들의 인식에 충격을 가하고 시의 표현을 새롭게 하기 위한 방법이다.


이 방법은 1916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시어 연구회와 모스크바 언어학회에서 평범한 언어를 예술적 언어로 변모시키기 위한 기법으로 제시한 형식주의(Formalism)에서 출발하였지만, 표현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고 사물의 인식능력을 신장하여 철학적 형이상학적 세계의 범주까지 그 문을 확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의 개념 설명만으로 이해가 쉬울 것 같지 않아 시의 낯설기의 개념에 대해 좀더 이해를 돕기 위해 다음의 시 한 편을 먼저 감상해 보고자 한다.


Ⅱ. 시 감상


추일서정 / 김광균


낙엽(落葉)은 폴란드 망명정부(亡命政府)의 지폐(紙幣)

포화(砲火)에 이지러진

도룬 시(市)의 가을 하늘을 생각게 한다.

길은 한 줄기 구겨진 넥타이처럼 풀어져

일광(日光)의 폭포(瀑布) 속으로 사라지고

조그만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새로 두 시의 급행열차가 들을 달린다.

포플라 나무의 근골(筋骨) 사이로

공장의 지붕은 흰 이빨을 드러내인 채

한 가닥 구부러진 철책(鐵柵)이 바람에 나부끼고

그 위에 셀로판지로 만든 구름이 하나.

자욱한 풀벌레 소리 발길로 차며

호올로 황량(荒凉)한 생각 버릴 곳 없어

허공에 띄우는 돌팔매 하나

기울어진 풍경의 장막(帳幕) 저쪽에

고독한 반원(半圓)을 긋고 잠기어 간다.


이시에서 낯설기의 기법 시어는 첫행의“낙엽은 폴란드 망명 정부의 지폐”이다


낙엽이 주는 쓸쓸한 이미지와 함께, 가치 없고 초라하고 어수선하고 공허한 모습을 연상케 하는 이미지 형성에 충격적 표현으로 낯설게 한 것이다. 낙엽이 가치 없고 초라한 형상으로 이미지를 그려내면서 *계사은유(繫辭隱喩)의 기법을 통해 폴란드 망명 정부의 지폐로 비유 시킨 것은 망명정부의 지폐가 통용 될 수 없고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점에서 이렇듯 기발한 비유를 도출해 내어 독자에게 “어~?” 하고 인식에 충격을 가하고 시의 표현을 새롭게 하면서 낯선 시어를 선보인 것이다. 따라서 이 시는 사실적 서경의 표현보다는 일상적 관념을 깨뜨리는 낯선 비유를 사용하고 있는 점에서 상상력의 비약과 지적인 인식을 요구한 모더니즘을 기반으로 하는 시 이면서도 이미지즘에서 이미지즘의 본질 보다는 표현의 기법에 더 비중을 두었다고 본다.


Ⅲ. 맺음 말


그렇다면 시에서 어떤 인식에 충격을 주면 다 낯설기 인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시를 창작함에 있어 같은 언어로 조탁해내는 수없이 많은 詩들은 그 시가 전해지는 느낌이 다르고 그려지는 이미지가 다르다.


이것은 다시 말해 같은 그림을 보고 느낌을 담는다고 해도 전이되는 감정의 파동이 각자의 사상이나 받아들이는 사유함의 깊이에 따라 수천수만의 느낌으로 전이되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무조건 낯설기만 한다고 자칫 새로움만이 가치를 갖는다는 偏狹(편협)된 사고로 일관한다면 낯설기에 대한 가치는 그 빛을 잃을 것이다. 따라서 인식의 충격 요법이 편협된 사고가 아닌 일상적인 언어에 기초를 두고 보편적 영역을 넓혀가되 순화된 언어 속에서 건져 올리는 낯설기라야만 그 가치를 인정받는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주)

*계사은유(繫辭隱喩) : 본문에 딸려 그 말을 덧붙여 설명하는 비유법의 하나로, 행동, 개념, 물체 등을 그와 유사한 성질을 지닌 다른 말로 대체하는 일


노을은 삶의 유형수 / 이근모


노을은 삶의 유형수

장엄한 억장이 피를 토하듯

가을은 계절의 출산을 위해

양수를 터트려 노을을 적신다.


이름 없는 풀꽃이 가장 뜨거웠던

한 시절을 추억할 때

마른 풀잎은 저만큼 맨발로 산등성을 넘어

노을의 눈물이 된다

노을이 버무러내는 눈물은 짜기만 하다


삶의 법도 앞에

살아온 날을 반추하는 노을뒤로

어느덧 해는 지고 창밖에 달이 뜬다


낮과 밤의 명암에서 갈갈이 찢기는 마음

한 생의 역사에 희노애락을 묻으며

별똥별 한 획을 그으면


노을은 한 생의 마감을 예견 하듯

집행을 기다리는 유형수처럼

조용한 열반에 잠기려 하나니

집행자여 다비식을 거행하소서


노을빛

지금 첫날밤 신혼의 황홀함처럼

웅장한 해넘이 장송을 울리고 있다.



위의 나의 졸시에서 낯설기 시어는 어떤 시어일까

바로 “노을은 삶의 유형수” 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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