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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ㅎㅈ Nov 12. 2024

마라톤을 보다 갑자기 눈물을 흘렸다.

경외심에 대하여

토요일 날씨도 좋고 한강을 따라 아라뱃길까지 자전거를 탔다. 마침 주말 동안 마라톤이 열리는 듯했다. 내가 자전거를 타는 방향과 반대에서 배번을 붙인 한 두 명이 달려오고 있었다. 6km 입간판, 그리고 그 뒤편에 붙은 15.1km. 이들은 반환점을 돌아 지금 15.1km 즈음을 뛰는 중인 듯 보였다. 내가 처음 마주친 사람들이 선두 그룹이었는지 그 뒤로 꽤 많은 사람들이 한 곳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그들을 보다가 고작 6km 뛰어본 게 최고 기록인 나는 참을 수 없는 호기심에 사로잡혀 15.1km 정도 뛴 사람들의 얼굴과 호흡과 몸을 관찰했다. 어떤 이는 얼굴이 시뻘겋고 어떤 이는 땀을 한 바가지, 어떤 이는 거의 기절 직전의 표정, 어떤 이는 여유롭다. 간간이 배번을 붙이지 않은 페이스 메이커들도 보인다.


무겁지 않은 두 발로 페달을 힘차게 밟으며, 저기에 뛰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점점 더 후발 주자들을 향해 내달렸다. 선두권을 지나자 더 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역시나 선두권의 멋진 선글라스와 마라토너 같은 차림새가 아닌 각양각색의 모습들. 연령대도 성별도 다양했다. 그렇게 나의 자전거를 향해 달려 나오는 사람들을 보다, 갑작스레 눈물을 흘렸다. 갑자기 울컥하는 이상한 감정에 휩싸였다. 이게 대체 무슨 감정이람? 존경? 감탄?


사람들이 픽사를 좋아하는 372923개의 이유 중 하나는, 우리가 분명 한때는 느꼈지만 어느덧 잊고 살았던 어떤 소중한 감정을 떠올리게 해서, 또는 내 언어로 설명하지 못했던 감정을 쉽게 떠올릴 수 있게 대신 설명해 주기 때문일 거다. 그런 점에서 인사이드아웃의 빙봉이 있고 소울의 나뭇잎 장면이 있는 거겠지. 그중에서도 나는 소울의 나뭇잎 장면에서 오열하는 타입인데 아무래도 나의 유년 시절보다는 이런 쪽에 약하다. 그래, 토요일의 눈물은 소울을 보고 흘린 눈물과 닮았다. 삶에 대한 무엇. 그 무언가.


그러다 오늘 출근해 읽은 한 뉴스레터에서 어떤 책을 소개받았다. 바로 대커 켈트너의 <경외심>>이라는 책이다. 정말 평범한 일상에서 맞닥트리는 경이로움이 어떻게 삶을 지탱하는지에 대해 쓰였단다. 경이로움이라는 건 흔히 알려졌듯 사막이나 큰 폭포, 넓디넓은 대양처럼 거대한 자연을 만났을 때 느낀다. 이 거대한 우주의 나라는 존재란. 그렇지만 이뿐이 아니다. 이 작가는 경외심이 생각보다 우리 가까이에 있다 말한다. 20년 동안 26개국을 돌며 경외심 경험을 수집했단다. 그랬더니 공통적으로 사람들이 아주 평범한 일상에서 경외심을 느낀 걸 알게 됐다. 마치 누군가 지나가던 사람에게 친절을 베풀 때, 아름다운 꽃과 그 향기를 맡을 때처럼.


그래 경외심이다. 바로 경외심이야. 소울의 주인공이 떨어지는 나뭇잎을 보며 삶의 의미를 되새기던 것, 그리고 그걸 보며 내가 눈물을 흘리던 것, 지난 토요일 뜬금없이 마라톤을 뛰는 사람들을 보며 눈물을 흘렸던 것. 셋의 공통점을 바로 일상에서의 경외심이라 설명하고 싶다.


책에 따르면 경외심을 통해 ‘작은 자기 small self’를 발견하고 겸손해지고 서로 나누고 의지하고 협력하고 그렇게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어쩌면 나를 좀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건 이 경외심일 테다.


경외심의 순간 우리는 우리 운명에서 오로지 자신만이 통제권을 쥐었으며 다른 사람들보다 성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마음에서 벗어나, 자신 또한 공동체 일원으로서 다른 사람들과 본질적으로 같은 성질을 지니며 서로 의지하고 협력하는 관계라는 마음을 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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