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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ㅎㅈ Apr 10. 2018

최은영, 당신의 평화

책 «현남 오빠에게»에 실린 단편. 왠지 한 단어가 떠오른다..

요즘엔 의도적으로 페미니즘 책 구매를 피하고 있다. 그냥 지금의 내 세계가 평화롭길 바라며-실은 평화롭지 않지만- 의도적으로 현실을 잊으려 애쓴다. 잠시 동안만이라도 클-린한 진공 상태에서 머물고 싶어 스스로를 외부로부터 차단하는 노력이랄까.. 댓글을 읽지 않고 페미니즘 책과 글을 읽지 않고. 당장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면, 피해자/당사자 서사를 담은 글조차 읽지 않는다. 피로해졌다.


새로운 영감을 위해서 아주 다른 주제의 책들을 골라보려 며칠 동안이나 서점을 기웃거렸지만 끝내 책을 고르지 못했다. 무슨 책을 사야 될지를 모르겠더라. 한참을 뒤적 뒤적 서성이다 괜히 여행 코너에 가 치앙마이 책을 뒤적거리다 매번 서점 닫는 시간에 발걸음을 돌렸다. 치앙마이의 주요 스팟들은 지금 서울의 집값보다도 훨씬 비싸단다. 아씨.. 호스텔 차리려고 했는데 망했다. 카페도 못 차리겠는데..



«현남 오빠에게»의 존재는 진작에 알았지만 읽기 싫었다. 아예 페미니즘 소설이라며 대놓고 드러내는데. 하긴 요즘 페미니즘은 돈이 된다니까. 여러 소설가들의 단편으로 묶인 책이다. 심지어 소설집의 제목은 조남주의 단편 제목이다. 난 조남주의 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소설 같지 않다. 82년생 김지영은, 그냥 페북에 여성이 자기 서사를 늘어놓은 것의 조금 정제된 버전처럼 느껴졌다. 물론 그 현실을 모르는 사람들에겐 아주 쉽고 유용한 책이겠지만. (사실 지금은 메갈 책이다. 이 마녀의 책 불태워라!!!!!)


아니나다를까 단편 '현남 오빠에게'는 일기 같았다. 딱 예상했던 그런 소설이었다. 그래도 최은영과 손보미 때문에 읽는다.



'당신의 평화'라는 최은영 소설은 아픈 데를 때리면서 동시에 아픈 목소리를 대신 내줬다. 내가 엄마를 보는 시선, 엄마에게 가지는 감정. 건조하고 담담하게 그러나 선명하게 설명해낸다. 김혜진의 «딸에 대하여»도 그런 소설이었다. 책 소셜 매체에서 홍보한 것과 다르게 딸의 레즈비언이라는 정체성은 그 소설에서 엄마에게 그다지 유난하고 특별한 문젯거리는 아니었다. 고등 교육을 받은 딸, 똑똑한 딸, 그럼에도 비정규직 대학 강사가 된 답답한 딸, 제 똑똑한 건 알아서 목소리는 큰 딸, 엄마를 가르치려드는 딸, 엄마의 꿈을 실현시켜주지 않는 딸, 서른이 넘도록 결혼을 않는 딸, 자꾸만 여자인 친구와 함께 잠자리에 드는 딸. 레즈비언이라는 딸의 성적 지향성은 이해할 수 없는 딸의 여러 부분 중 하나일 뿐이다. 오히려 이 소설은 내 또래의 여성(딸)과 5060대의 여성(엄마)들의 관계와 서로를 향한 감정을 포괄적으로 그린다.


'당신의 평화'는 이곳에 며느리라는 제3의 여성으로 이야기가 열린다. 딸인 유진은 엄마인 정순을 이해할 수 없다. 가부장제 사회에 아주 적합한 여성상으로 자라온 정순은 스스로를 자신의 자리로 우겨넣기 위해 수없이 삶을 합리화 한다. 기댈 곳 없는 정순은 딸인 유진에게 모든 걸 이야기하고 기댄다. 유진은 유일무이한 친구다.

'내가 누구한테 말하겠니'
'누가 내 얘기를 들어주겠니'


어린 시절의 유진은 그게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유진은 점점 버겁다. 지친다. 정순의 행동이 유해함을 인지한다. 정순은 끊임없이 합리화의 과정에서 정순은 사라지고 거의 사라진 자존감만 바닥에서 헤매인다. 남편은 사노비 부리듯 평생을 인격이 없는 사람 취급했고 잘난 아들딸마저 머리가 굵어지고 자신을 무시한다. 그러나 유진이 지적하는 자신의 문제를 인정할 수 없다. 인정해선 안 된다. 그건 평생을 합리화하며 희생하고 삭제해 온 자신의 삶과 목소리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꼴이다.


유진은 정순의 무례함이 싫다. 가부장제에 적합한 여성은 며느리에겐 적을 자처하지만 딸에겐 무한한 사랑과 경청을 바란다. 정순의 입에선 가끔 유진의 세대에서 이해할 수 없는 발언들이 비짓 흘러나온다. "부모도 없이 큰 애를 우리가 받아줬다".


유진은 이십대 후반에 정순으로부터 도망쳤고, 지금도 도망치려 발버둥 친다. "넌 나로 살아본 적이 없다"는 정순의 소리 없는 절규를 듣고도 유진은 뒤돌아 선다. 유진은 정확히 알고 있다.



엄마와의 관계는 늘 어렵다. 우리는 거의 싸우지 않는다. 항상 엄마는 나를 그리워하고 애달파하고 나는 엄마에게 늘 미안하다. 우리는 가끔 만난다. 내가 대구에 잘 내려가지 않기 때문이다. 잘 내려가지 않기 시작한 것은, 가족과 그 주변의 가족과 내가 너무나 다른 사람이란 것을 깨달은 이후였다. 이즈음 맞지 않는 사람들과 끝없는 소모전을 펼쳤고 나는 줄 한 가운데에 어떠한 안전망도 없이 아슬아슬하게 서 있었다. 떨어지면 됐지만, 막상 떨어지기엔 그 끝이 어딜지 몰라 두려움에 주저했다. 그러다, 정말 버티다 버티다, 나 대신 내 줄에 서 있던, 그래서 줄을 흔들던 다른 사람들을 하나 둘씩 끌어내렸다. 한 사람 끌어내리니 그 뒤는 쉬웠다. 그게 내 인생에 훨씬 이롭고 무해한 선택이었다. 그 고민의 방향은 자연스레 가족에게도 향했다.


일가 친척이 모이는 자리가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애정 표현이라던 '지지배'라는 표현이 질리기 시작했고 부모이기 때문에 어른이기 때문에 용인해야 했던 부당한 일들이 많았다. 밥상에서 비난과 욕을 한 바가지로 먹어도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감내해야만 했다. 여기까지 가지 않아도, 또래로 만났다면 절대 옆에 두지 않을 그런 유형의 사람들이 넘쳐났다. 그 어떤 사회의 이야기를 해도 심각하게 어긋나 있었다. 그건 단순히 정치적 견해의 문제만이 아니었다. 삶을 보는 태도였고 타인과의 관계를 유지해 나가는 방식이었으며 내 삶을 스스로 어떤 방식으로 가꿔나가냐는 문제였다. 이미 주변의 사람들을 우루루 줄에서 튕겨 내버렸는데 이 사람들이라고 못할 게 있을까. 그렇게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그렇다고해서 내 노력이 없었던 게 아니다. 무기력하게만 수동적으로 늘어져 있었던 것도 아니다. 정말로, 몇 년 간 이 관계들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했고 회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상대를 이해하려고 노력했고 그 상대가 겪어왔던 삶의 궤적과 배경을 먼저 이해하려 애썼다.


"언제나처럼 정순의 전화를 받고 아주 가끔은 정순과 얼굴을 보고 밥을 먹을 것이다. 그러나 정순이 오늘 했던 행동과 말들을 잊지 못하게 된다. 용서해도 마음에서 지울 수 없는 것들이 있기 마련이니까. 언제까지고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겠지만 오늘 같은 순간들이 만들어낸 거리를 좁힐 방법은 없다"

                                                                                                                                              -당신의 평화



엄마는. 그래서 너무 어렵다. 최은영이 지적하듯 가부장제는 사랑과 심장을 서서히 돌처럼 딱딱하게 만든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미움을 받고 서로를 미워하게 만든다. 엄마가 살아온 방식 역시 그 개인의 잘못은 아니었다. 엄마는 그 선택으로 행복했고 그렇게 나를 키워냈다. 오히려 시간을 갖고 거리를 두니 조금은 마음이 편해졌고 보듬어 볼 수 있는 여유가 눈꼽만큼 마음 한 편에서 모락모락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건 당연히 말할 것도 없이, 미래에 올 두려움과 슬픔 역시 크게 한 몫 한다. 영원히 후회로 남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엄청난 슬픔으로 밀려올 수 있을 것이라는. 그런 두려움. 그런 생각.


"그 거리는 유진에게 어떤 안타까움을, 그리고 자유를 줬지만 언젠가 그만큼의 슬픔을 줄 것이었다. 유진은 그 사실을 받아들였다. 어떤 사랑도, 어떤 후회도 그 슬픔을 갚아줄 수 없다는 사실도. 그러나 이 순간의 유진은 최선을 다해 이 익숙한 반복으로부터 멀어지고 싶을 뿐이었다. 혼자가 되고 싶을 뿐이었다."

                                                                                                                                              -당신의 평화



으악. 브런치에 글을 다시 쓰기 시작한 건, 마감에 좇기는 글, 딱딱한 글이 아닌 그냥 드는 생각들을 주저리 주저리 기록해두자는 의도였는데. 한껏 심각한 주제를 마구마구 정신없이 써내리고 나니 진이 빠진다. 마음 한 켠이 또다시 아린다.


ps. '당신의 평화'라는 제목은 많은 것을 함의하는데, 그 중 웃긴 부분은 이러하다. 예비 시아버지(??) 생신 때문에 예비 시가(??)에 방문한 예비 며느리(??) 선영이 쭈뼛 거리며 설거지를 하겠다 했고, 예비 시누이(??)인 유진은 그런 선영을 단호하게 막는다. 선영이 집으로 돌아간 후, 정순은 당연히 시어머니고 며느리니 시킬 수 있지 않냐며 선영과 투닥 투닥 불편하고 견딜 수 없는 대화가 오간다. 그러다 열받은 유진이 가겠다며 신발을 신자, 옆에 앉아 있던 아빠(당연히 밥 차릴 때 1도 일 안 하고 아무 것도 안 함)는 서로 양보 좀 하지 뭘 설거지가 뭐 그렇게 힘든 일이라고 여자들끼리 신경전을 벌이냐며 평화롭게 살자며 혀를 찬다. 유진은 "아... 평화요?"하고 집을 뛰쳐나온다.


ps2. 사실 최은영 거까지만 읽고 아직 덜 읽음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나의 평화. 꽤 평화로운데. 앞으로도 나는 평화로웠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주변도 평화로워야 한다. 죽기 전까지 세상은 안 평화로울 것 같은데 그냥 내 평화로운 주변만 보고 함께 살면 좋겠다.


큰 맘 먹고 노브랜드에서 쌈 채소와 함께 사온 네덜란드산 고추장 양념 삼겹살을 굽는 순간부터 돼지 누린내가 진동했다. 먹으면서도 첫 맛에 올라오는 역함을 참았다. 그냥 non 양념 삼겹살이라면 우유나 커피 물에 담가 누린내 제거라도 할 텐데 고추장 양념 삼겹살은 어떡하지? 윽. 평화롭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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