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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ㅎㅈ Apr 23. 2018

팀 이동한 지 한 달 정도 됐다

그 팀의 이름은 캠페인 파트너스 팀

캠페인 팀으로 이동한 지 한 달 정도 됐다.


한 친구는 작은 규모의 언론이나 매체들이 아닌 JTBC 같은 언론들이 결국 세상을 바꾼다고 말했다. 반은 동의했고 반은 동의 할 수 없었다. 물론, 바꿈과 변화가 무엇인지 정의하기 나름이겠지만. 세상을 돌아가게 하는 거대한 시스템이 바뀌는 것도, 그 거대한 시스템을 지탱하는 작은 시스템이 하나씩 바뀌는 것도, 또 그 작은 시스템 속의 시스템 속의 시스템 속의 사람들 하나하나가 바뀌는 것도, 어느 방향이든 뭐가 됐든. 나이브하게 세상을 바꿔야겠어, 따위의 원대한 꿈은 나에게 없다. 마치 닷페이스가 내 반경 3m 안을 바꾸어 나가겠다고 한 것처럼 그것 역시 유의미한 게 아닐까.


그럼에도 인식 변화에 어느 순간 회의감이 들었다. 인식 변화? 몇 년 전부터 어쨌거나 꾸준히 콘텐츠를 만들어 왔지만, 인식 변화는 늘 추상적이고 조금만 뒤집으면 확증 편향의 수단이 됐다. 그래서 고민 끝에 캠페인 파트너스 팀으로 옮기게 됐다. 



무언가 환경 문제를 해결해야겠다- 따위의 또 원대한 꿈은 나에게 없었다. 지구 온난화가 문제라는데 중국의 미세먼지가 문제라는데 바다에 사는 동물들이 고통 받는다는데. 그게 이상한 날씨가 되고 한파가 되고 내 숨을 잘 쉬지 못하게 만드는 미세먼지가 되고 판매되는 소금 속에 플라스틱으로 발견되기 전까지도 그 후에도 환경 문제를 해결해야겠다라는 원대한 꿈은 여전히 없다.


그냥 할 수 있는 걸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이왕이면, 그렇게 어렵지 않다면. 이제까지 내가 해 온 사소한 실천, 실천이었다면 실천이었을 것들을 정리해본다. 길거리에 절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절대로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다, 그러기 위해 쓰레기를 주머니에 꼬깃꼬깃 뭉칫뭉칫 뭉쳐 놓았다가 쓰레기통에 버린다, 풍등을 날리지도 어떤 이벤트에도 참여하지 않는다, 풍선을 하늘로 날리지 않는다, 재활용을 열심히 하려 노력한다, 불필요한 쓰레기를 만들지 않기 위해 조금 노력한다. 조금이라고 쓴 이유는 그러기에 나는 물티슈를 너무 많이 쓴다. 그 외에 딱히 없다�


아무래도 가까이 앉은 H의 영향이 컸다. 근처의 사람. 그는 늘 텀블러와 아주 작은 에코백을 들고 다닌다. 카페에서 주문할 때 테이크아웃 통 대신 텀블러나 머그컵에 담아달라고 말한다. 불필요한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다. 물티슈를 쓰지 않는다. 재활용을 정말 철저히 한다. 플라스틱 용기를 만들 수 있는 소비를 거의 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비가 오면 나는 가끔 가게 앞에서 우산에 씌우는 비닐봉지의 대안이 없을까 고민했다. 쓰레기통에 수북히 쌓인 비닐들이 보기 싫어서. 오늘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회사 회전문 앞에서 쓸데없는 쓰레기를 만들기 싫어 우산의 빗물을 탁탁 내리쳤다. 충분히 내리치고 회전문에 들어갔지만 청소하시는 분이 비닐봉지를 씌워 들어오라고 하셨다. 내부에 물이 너무 많이 차 안 그래도 미끄러운 바닥에 사람들이 미끄러진다며, 모두에게 비닐봉지를 씌워 들어올 것을 말씀하셨다. 들여보내지 않으실 작정처럼 보였다. 그분의 역할과 마음을 이해했으므로 약간의 난색을 표하며 우산 봉지 기구 앞에서 조금 머뭇거렸다. 그러자 H는 이런 일이 매우 익숙하다는듯 아무렇지 않게 우산 비닐 쓰레기통 앞에 서 쓰레기 통 속의 비닐을 집어 들었다. 아주 짧은 시간 동안에 나는 익숙하지 않아 머뭇 거렸고 그는 아주 익숙한 판단을 내렸다. 그제서야 나도 쓰레기통 앞으로 가 3단 우산에 맞는 짧은 우산 비닐을 꺼내 내 우산에 씌웠다. 어쩌면 비오는 날 내내 이거 한 장을 가방에 넣고 다니며 씌웠다 뺐다 해도 되겠다.

하다가 원래 3단 우산의 봉투가 있는데 왜?��


H 덕분에 어떻게 실천하는지를 조금 더 가까이 알게 됐다. 이제 2주 정도 됐지만 어쨌든 카페에서 테이크아웃 용기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다. 대신 머그컵이나 텀블러, 플라스틱으로 만든 컵을 이용하고 있다. 물론 지키지 못해 어쩔 땐 일회용기를 쓰기도 했다. 일회용기를 쓸 때에도 컵 홀더(슬리브)를 쓰지 않는다. 그래도 아직, 일회용기를 쓴 횟수보다 머그컵이나 텀블러를 쓴 횟수가 더 많다. 해본 소감은 솔직히 어렵지 않다. 별로 귀찮지도 않다. 깜빡하지만 않으면 되는데 그 기억이 생각보다 어렵다. 그래도 습관이 들면 전혀 어렵지 않을 것 같다.



남자친구는 내가 얼마 전부터 마시기 시작한 아샷추(아이스티에 샷 추가)를 따라 마시더니 자기가 완전 더 빠져버렸다. 먹고 싶다고 연신 카톡을 보내고 아샷추를 시켜 먹은 사진을 찍어 보내기도 했다. 얼마 전엔 한 카페 주인에게 아샷추 메뉴를 만들어보시라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단다.


그런 남자친구가 어제 밥을 먹다, "그냥 니가 요즘 테이크아웃 통을 잘 안 쓴다길래, 나도 아샷추 시킬 때 통 대신 컵에 달라고 말할까 생각했었어"라고 말했다. 카페에 오래 있는 남자친구는 사실 테이크아웃 통을 쓸 이유가 없다. 대부분의 카페들은 주문시 디폴트로 테이크아웃 통에 담아주고 사람들은 테이크아웃 통을 쓰지 않는 게 좋은 이유를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냥 그렇게 테이크아웃 통을 쓰게 되기도 한다. 남자친구는 다른 어떤 공익 광고나 말들보다 그냥 가까이에 있는 나의 말이 더 크게 와닿았다고 했다. 나는 한번도 남자친구에게 테이크아웃 통 대신 다른 걸 써보라고 권유조차 한 적이 없었다. 그냥 나는 내가 그렇게 실천하고 싶었고 실천을 알리기 위해 남자친구에게 말한 적이 있었다.


내가 요즘 환경 관련, 특히 테이크아웃 통이나 이런 일상에서 쉽게 실천할 수 있는 환경 캠페인에 관심이 많이 생겼다고, 어떤 기획을 하면 좋을까 고민하자 돌아온 남자친구의 답이었다.


H와 나와 남자친구.



대부분의 재난이 그렇듯 동일한 재난이더라도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문제를 끼치지 않는다. 최근 환경권 이야기가 오가면서 미세먼지 역시 한국의 큰 환경 문제라고 일컬어지지만, 미세먼지 매우 나쁨에도 지급되는 마스크 없이 혹은 얇디 얇은 부직포 미세먼지 하나 끼고서 내내 야외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 환경 미화원, 주차장 관리 요원, 배달 노동자, 캐디, 택배 기사, 톨게이트에서 일하는 사람들.


사회에서 반드시 필요한 자리에서 일하는 사람들, 내내 나쁜 공기 속에서 일해야만 하는 사람들. 이 사람들에게 마스크가 당연히 지급돼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게 미세먼지가 됐든 무엇이 됐든 노동하기에 굉장히 열악한 상황이 됐을 때 잠깐 동안은 노동을 멈추고 대기할 수 있는 것, 혹은 짧은 시간의 교대로 노출되는 시간을 줄여 나갈 수 있는 것. 당연한 것 같지만 또 당연한 거 같지 않은 이야기들을 인식만 바꾸는 것이 아니라 이상적인 상상이 실제가 될 수 있게 만드는 것. 그게 그저 내가 이 팀에서 팀원들과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누군가 보았을 때 아주 사소하고 무의미하고 별 것 없는 것이더라도 또 누군가에겐 아주 중요하고 유의미하고 조금이라도 바꿔 나가야 할 것들이라면 그게 그냥 욕심 없는 대단하지 않은 나이브하지 않은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닐까 싶은 그런 그냥 그런 그런 요즘의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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