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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ㅎㅈ Mar 18. 2023

결혼은 왜 하는 거야?

그러게나 말이요

"왜 결혼을 결심하게 됐어?"


내년 즈음 결혼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고백에, 요즘 만나는 친구들마다 내게 묻는다. 벌써 대여섯 번 들은 거 같은데 여전히 답은 어렵다. 어제도 친구와 밥 먹다 들은 이 질문에 "솔직히 진짜 답하기 어려운데.."라며 문장을 꺼냈다. 정말로 잘 모르겠다.


한 3, 4년 쯤 전엔 반대로 내가 이 질문을 한참 하고 다녔다. 당시엔 연애를 한 지 5년 정도 됐을까. 주변 또래에서도 평균적으로 긴 연애를 하고 있어 그런지, 만나는 사람마다 어떻게 그렇게 길게 만나냐는 질문을 들었고 반대로 나는 결혼한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왜 연애를 끝내고(?) 결혼을 결심하게 됐는지 묻고 다녔다. 5년 정도 만났다고 하면 대부분은 은근하게 결혼이라는 단어를 꺼내왔고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도대체 결혼을 왜 하는 건지 정말로 궁금해졌다.


결혼. 아직도 내가 결혼을 왜 하는지에 대해 상호 납득 가능한 답을 꺼내기 힘든 이유는 지금 내가 결혼과 다를 바 없는 생활을 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웬만한 지금 신혼 부부들보다도 연애로 치면 더 긴 시간 동안 만나 왔기 때문일 거고 또 하나는 함께 산 지도 꽤 됐으니까. 그래서 그런가. 몇 년 전 친구들에게 결혼을 왜 결심했냐는 질문을 한참 하고 다녔을 때 '함께 살고 싶어서'라는 답을 가장 많이 들었다. 그 다음으로 많이 들은 건 '그냥'이었다. 당시엔 그 답이 대단히 허무했다. 당시 내게 '결혼'은 굉장히 숙고하고 고민하고 여러 가지 근거들을 대고 경우의 수를 비교해 가며 계산하여 최선, 또는 적어도 차선의 결심으로써 택하는 결정이라 느껴졌으므로.


이렇게 들으면 꼭 내가 결혼에 대해 큰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역설적으로 그렇지 않다. 오히려 그렇지 않으니 결혼을 '가만 있지 않고 굳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행동하는 선택'이라 생각했고 그렇게까지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거라면 '왜?'에 대한 답이 뚜렷하게 있을 거 같다는 그런. 그런데 생각보다 사람들은 큰 이유 없이 결혼을 결심했다며 답했고 나는 왠지 시시해졌다. 함께 살고 싶으면 결혼이 아니더라도 함께 살면 되는 문제고, 그냥이라기엔 결혼에서 너무 많은 것들을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더구나 감당해야 하는 것들 중엔 비합리적이고 이해할 수 없는 게 너무나 많으니까.


연애. 연애는 각자의 세계를 크게 넓힌다. 여전히 가족하고는 옆에서도 함께 잘 수 없고 팔짱을 끼거나 손잡는 것도 불편한 내게 예전 연애들은 어떤 관계에서는 그게 가능하단 경험을 줬다. 다시는 누군가와 함께 살 수 없을 거란 생각은 지금 연애에서 생각보다 쉽게 깨졌다. 비혼주의에 가까웠던 내게 이런 식이라면 미래를 함께 하는 것에 기대를 걸 수 있다는 희망을 줬다. 10년에 가까워지고 있는 연애는 연애 관계의 세계에서 더 나아가 삶과 미래의 세계까지 넓힌다.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서로의 삶을 실질적으로 보완할 수 있는 관계가 있다는 것을. 그 어떤 미래라도 함께 한다면 서로 의지하며 조금 더 가뿐하게 헤쳐나갈 수 있겠다는 믿음을. 결혼은 근거도 타당성도 없는 믿음을 바탕으로 한 불완전한 계약 따위에 불과하다는 생각은 여전하지만, 그래도 눈 감고 모르는 척 한번 앞으로 걸어 나가게 하는 그런 귀여운 명분을 준다.  


그래서 왜 결혼을 결심한 걸까. 애초에 '결심'이었을까? 아직도 잘 모르겠다. 한 가지 분명한 건, 8년이라는 시간 동안 20대 중반에서 30대 중반으로 흘러가는 동안 서로의 성장과 변화를 지켜 보면서 애인 이상의, 연애 감정 이상의 뭔가 설명하긴 어려운 감정을 바탕으로 한 관계가 만들어졌다는 것이고 그것이 사랑일지도 모르겠다는 것이고 또 한 가지는 8년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20대 중반 연애 초기 때의 감정보다 지금의 사랑일지도 모를 감정이 몇 백 배는 더 견고하다는 것이다.


이 문장은 조금 우습지만, 말 그대로 나는 늘 사랑을 찾아 헤맸다. 무슨 섹스앤더시티에서 사랑할 상대를 찾아 뉴욕을 헤매던 캐리 같은 이야기가 아니다. 정말로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설명하고 싶었다. 내가 원했던 건 연애 대상에 대한 사랑만이 아니었으니까. 온 세상은 사람들이 가족을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한번도 사랑을 느낀 적이 없다. 사춘기 시절에도 사랑에 빠진 척 그런 모습을 위했던 거지 정말로 사랑했냐고 물으면 모르겠다. 첫사랑이 누구냐는 질문은 여전히 어렵다. 사랑을 정의하는 것부터 어려웠으니까. 타인에게 글자로 설명할 순 없더라도 뇌는 알아야 하는데. 사랑이라는 감정을 너무 특별한 걸로 여기는 걸까. 어떤 연애 상대는 분명 많이 좋아했고 그만큼 마음도 아팠지만 그게 다였다. 한때는 내게 사랑을 느끼게 하는 뇌 신경에 선천적인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의심한 적이 있을 정도로, 온 세상 사람들은 전부다 사랑을 한다고 떠드는데 나만 모르는 기분이었다.


8년이 되니 이제 어렴풋이 알 거 같다. 그저 좋아한다는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그간 이 상대와 내가 만들어 온 관계가 단순한 연애 관계가 아니란 걸. 여전히 글자로는 설명하기 어렵지만. 잠들어 있는 얼굴을 문득 볼 때 이제는 알 거 같다. 선택과 결정엔 늘 적절한 이유와 근거를 말할 수 있어야 하던 내게도 이게 결혼을 왜 하는 건지에 대한 답이 될까. 결혼은 왜 할까? 여전히 나도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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