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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ㅎㅈ Oct 08. 2023

스웨덴 교환학생 10주기

어떤 경험과 추억은 힘이 정말로 정말로 세다!

경험과 추억은 사람이 견디고 또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준다. 지탱해준다. 기대게 해준다.


더위와 여름을 좋아하고 겨울을 싫어하는 나는 거의 매년 겨울이 될 무렵 일주일만이라도 추위를 피해 따뜻한 나라로 떠났다. 동화책 <추위를 싫어한 펭귄>의 주인공 파블로가 정착한 것 같은 적도 가까이의 나라들.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언젠가 돈을 더 많이 벌고 시간도 더 벌 수 있을 때, 지구 반대편의 그런 곳들도 가고 싶다.


이런 내가 그래도 한국의 겨울을 그럭저럭 잘 견디게 된 이유는 오로지 스웨덴의 기억 덕분이다. 찢어지게 건조한 유럽의 겨울, 그래서 더 추운 스웨덴. 이맘 때가 되면 스웨덴의 쏟아져 내리던 낙엽들. 그리고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면 온 다운타운 건물과 가정집 창에 걸려 있던 커다란 종이 별 조명들이 떠오른다. 별, 눈송이들. 따뜻한 시나몬 냄새가 나는 카네불라, 커피와 차의 향. 헴샵에서 사온 냉동 파이를 오븐에 굽는 냄새, 그 오븐에서 라자냐를 만들고 베이킹을 하던 친구들.


조용히 쌓이는 창 밖의 눈과 시끄러운 코리도어 안의 친구들. 코리도어 거실의 낮은 테이블에 온갖 맥주와 술을 깔고 헴샵에서 산 큰 과자 봉지를 아무렇게나 뜯어선 제대로 씻었을지도 모를 컵에 술을 섞어 마셨다. 가끔 사진도 함께 찍었다. 그때의 빨간 가디건, 회색 내복, 유니클로의 보트넥 티셔츠와 청색 셔츠. 수면 바지, 수면 양망.


온돌이 없는 유럽 집의 바닥은 항상 얼음장처럼 차가웠으므로 겨울엔 맨 발을 살금살금 들고 다니거나 수면 양말을 신어야 했다. 커다란 창문에선 세상의 시야를 희게 만드는 눈이 종일 내리고 그 눈을 한 나무가 오롯이 받아내고 창틀엔 달달한 베리 향을 내는 이케아의 빨간 초가 타닥타닥 탔다. 창틀 밑에서 열심히 제 할일을 하고 있는 두 개의 작은 라디에이터. 거기에 젖은 수건을 걸어 가습기를 만들었다.


가끔 조용히 차를 마시며 침대에 앉아 스트레칭을 했다. 흰 창문을 보며 조용한 노래를 들으며. 그 책상과 의자엔 친구들이 앉기도 했고 함께 무서운 영화를 보기도 했다. 가끔은 그곳에서도 술을 마셨고 후추 과자를 먹었고 과제를 했다.


고작 6개월의 짧은 시간이 기나긴 삶을 살아가는 데 큰 힘을 발휘한다. 갑자기 세상에 무심해지거나 왠지 모를 우울감과 무기력이 나를 지배할 때 이 짧은 시간을 떠올리며 다시 나를 채운다. 내가 좋아했던 그때의 나. 쌀쌀한 가을이 되고 추운 겨울만이 오면 늘 스웨덴과 린셰핑과 리드바겐을 떠올린다. 그때의 냄새와 분위기와 친구들과 물건들을 떠올린다. 눈이 내려도, 얼어죽을듯이 추워도, 콧물이 흘러도 2013년, 14년 초의 눈이 내린 그곳과 얼어죽을 거 같이 콧물을 흘리던 그곳의 내가 생각난다. 나는 아마도 더 긴긴 시간이 흘러도 이 기억에 기대 겨울을 견딜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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