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ㅎㅈ Nov 26. 2023

불안을 잠재우는 옷 입히기

“내일 뭐 입지?“


매일 침대에 누워 잠들기 전 하는 생각이다. 얼마 전 친구와 밥을 먹었는데, 친구의 직장 스트레스가 매우 심해 보였다. 친구 말로는 퇴근할 때, 밥 먹을 때, 집에 와서 쉴 때도 끊임없이 회사 생각을 한단다. 이걸 어떻게 하지, 내가 뭘 잘못했나, 내일은 뭘 해야 하지. 이제는 강박 같다고 말했다.


나 역시 비슷한 일을 겪었다. 처음이자 가장 심했을 땐 2년 전 팀의 후배와 갈등을 겪었을 때였는데, 생각이 멈추질 않고 반복 됐다. 나 살려 주십쇼 하고 찾아간 심리 상담소에선 이런 복기를 일종의 강박으로 봤다. 그때부터 연습을 시작했다. 생각의 스위치를 끄는 연습. 생각이 계속 꼬리를 물고 이어지지 않게, 마치 조명 스위치를 끄듯 생각을 한 번에 딱! 하고 끊어내는 것.


그러나 상담 선생님은, 이번 강박적 복기가 유난히 특별하게 발생한 일이 아닐 거라고 말씀하셨다. 나의 기질과 성장 배경 등 다양한 환경에 의해 이 순간의 나는 꼭 이번 일이 아니었더라도 계속해서 생각하는 습관이 있었을 거라고. 그래서 몇 세션에 거쳐 왜 이렇게 생각을 많이 하게 된 것인지, 주로 생각에서 어떤 경험을 해 왔는지 등을 생각을 끊어내는 연습 외에도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 덕분에 생각의 스위치를 잘 내리게 됐고 더 나아가선 생각 자체를 반드시 필요한 게 아니라면 잘하지 않게 됐다. 특히나 내가 당장 ‘생각으로’ 해결할 수 없는 생각이라든가 부정적인 생각으로 꼬리를 물게 되는 생각이라든가. 그랬더니 요즘은 일할 때 조금 거친 말로 ‘뇌를 빼놓고 일한‘다.


뇌를 빼는 건 밤에도 이어진다. 예전의 나는 자기 전에 꼭 다음 날 해야 할 일들을 정리했다. 돈도 받지 않는 시간인데, 밤마다 내일 해야 할 일, 반드시 체크해야 할 일, 중요한 일을 시뮬레이션 돌리는 일을 잠들기 직전까지 머릿 속에서 굴려왔다. 당시의 나는 나름의 워커 홀릭 같은 내 모습이 좋기도 했고 실제로 다음 날을 준비해야 한다는 약한 강박이 있었는데 이 역시 내 정신 건강에 좋지 않다는 걸 상담을 거쳐 깨닫게 됐다.


생각을 한다는 건 습관적이다. 고등학생 때 친구들이 내게 준 편지에선 ‘넌 생각이 너무 많아’라는 말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생각은 습관이다. 요즘도 밤만 되면, 특히 일요일 밤엔 나도 모르게 머릿 속에서 이번 주에 해야 할 일과 내일 당장 해야 할 일을 시뮬레이션 돌리기 시작한다. 이 습관을 이기려면 다른 습관이 필요하다. 그래서 찾은 게 바로 ”내일 뭐 입지?”.


마침 옷 입기를 좋아하는 나는 아침마다 그날 입을 옷을 고르느라 아까운 출근 시간을 허비하기도 하여, 밤마다 내일 뭘 입을지 ‘코디’하는 것은 그야 말로 일석이조다. 무얼 입을지, 무슨 신발을 신을지 실컷 아침 일찍 일어나놓고 옷과 신발을 고르는 데 더이상 시간을 쓰지 않는다. 전날 밤 자기 직전 뭘 입을지 완벽하게 상상하고 자니깐. 마치 슈의 옷 입히기 놀이처럼 내일의 온도를 체크하고, 머릿 속에서 내 옷장을 열고, 위 아래 옷들을 돌려가며 코디를 해보고, 신발까지 골라본다. 옷 입히기 시뮬레이션을 하다 마음에 드는 착장이 나오면 기분이 좋다. 내일 그 옷들을 입고 나갈 내 모습을 생각하면 왠지 설렌다. 뇌 빼놓고 일하는 요즘의 출근길마저 설레게 만드니 일석삼조다. 그렇게 상상하다보면 나도 모르게 스르륵 잠든다. 요즘의 내 불안을 잠재우는 건 옷 입히기 상상이다.

작가의 이전글 First Love 하츠코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