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에게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올해의 작가상 전시를 봤다. 거리 곳곳엔 겨우내 버틴 나무들이 꽃망울을 틔웠다. 사람들의 옷차림은 얇고 표정은 들떠 있다. 애인과 나는 사람들 속에 섞여 종로 거리를 한참 걸었다. 그렇게 오래 살며 다닌 동네였는데 여전히 올 때마다 좋고 설렌다.
조금 걸어 종로 5가에 있는 닭 한 마리 집엘 갔다. 손에 쥐어지는 대기 번호표.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그 속에 낯선 언어도 섞여 있다. 식당 내부는 깊고 기름 진 닭 국물 냄새가 진동했다. 그 안에 사람들은 거리 사람들보다 훨씬 상기된 표정으로 먹고 떠들고 있다.
애인과 나도 2인석에 자리를 잡고 닭 한 마리가 끓길 기다렸다. 갑자기 먼저 옆 테이블에 계시던 어머니들이 우리 얼굴을 보고 말을 거셨다.
"둘 다 어떻게 이렇게 예쁘고 훤칠하나. 보는데 둘이 너무 예뻐서 그래요."
생각지 못한 말에 나는 표정에서 당황을 감추지 못했고 맞은편 애인은 웃기게도 얼굴부터 귀까지 빨개졌다. 이런 정면 공격은 꽤 오랜만이라 나는 너스레를 떨 생각도 못하고 그저 어버버 거릴 뿐이었다. "아.. 감사해요..."
이어진 말씀.
"이렇게 예쁜 사람 둘은 꼭 애를 낳아야 해. 예쁜 사람끼리 만나면 셋은 낳아야지!"
어머니들도 다년간 경험에서 얻은 나름의 전략이었던 걸까. 뭐 아무튼간에 기분은 나쁘지 않았고, 좋았다. 사실 두 번째 문장은 더더욱 생각도 못했던 터라 나는 큰 소리로 웃고 말았다.
국물을 떠먹으면서 '어머니들도 아름다우셔요'라고 말할 걸 그랬나, 생각했다. 어쩌면 당신들의 지나간 세월을 떠올리다 이런 말씀을 하셨는지도 모르겠다. 지나간 당신의 젊음, 그리고 지금 나의 젊음. 나 역시 지금은 젊지만 언젠간 이 순간들을 뒤로하고, 이때를 몹시도 그리워할 날이 올 거란 걸 안다. 그래서 왠지 목이 조금 무거워졌다. 주책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내려 항상 그랬듯 육교를 건너려는데 큰 나무에 꽃이 피어있다. 무심하게 한 번 눈길을 주고 갈 길을 가는데, 함께 버스에서 내린 어머니 한 분이 어머- 하는 소리와 함께 멈춰 서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으신다. 눈이 반짝인다. 아름답다. 그리고 왜인지 모르게 슬프다. 알 수 없는 감정이다.
평생을 성장하는 시기로 살아온 나는 요즘의 나이 듦이 썩 익숙하지는 않다. 키가 크고 젖살이 빠지고 피부가 기름지고 이목구비가 뚜렷해지고 기억의 부피가 늘어나는 성장의 시기만 보내다, 인생에서 거의 처음으로 나이 듦을 느끼기 시작했다. 흰머리가 솟아나고 피부가 마르고 망각이 잦아진다. 사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누구나 처음은 낯설고 두렵듯, 나이 듦은 요즘 나의 화두 중 하나다. 어떻게 하면 더 잘 나이들 수 있을까. 겉모습이든 마음 속이든. 그래서 더욱 어른들에게 관대해지는 지도 모르겠다. 오늘 마주친 어른들의 모습에서 나의 마음을 읽는다. 더 잘 살고 싶다. 더 잘 나이 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