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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터러시 멘토 Aug 23. 2022

쓴다는 것


논술이라는 말은  오랫동안 들어왔지만 손에 잡히지도, 머릿속에 뭔가가 떠오르지도 않는 단어  하나입니다. 요즘은 그래서 논술학원도 ‘독서토론글쓰기 혹은  간단하게 ‘독서글쓰기 이름을 붙이는 곳도 많나 봅니다. 그래도 논술전형이라는 것이 버젓이 있으니 우리  가까이에 있는 셈입니다.   부모 세대들은 대부분 논리적 글쓰기를 거의   적이 없습니다. 대학도 졸업시험을 보거나, 논문을 쓰더라도 형식적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논술이라는 어휘에 개인적인 경험이 전혀 붙어 있지 않습니다. 자신은 겪은 적이 없는 논술시험, 논술학원 등을 통해 ‘논술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으니, , 국어,  등등의 떠다니는 말로  개념을 붙잡아 봅니다.


글쓰기를 떠올리면 누구나 한 번씩은 하얀 백지를 보고 있는 자신, 그러나 머릿속도 새하얗게 아무 생각이 없어 당혹스러운 장면이 떠오를 것입니다. 종알종알 말을 배우고, 천천히 글자를 익히고, 신나게 낙서하고, 또 뭔가를 끄적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인데, 또박또박 뭔가를 길게 써 내려가는 것은 누구에게나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누군가의 글을 아무 생각 없이 따라 쓰라고 하면 손가락이 조금 아파도 쓰겠는데, 또 짧게 몇 마디만 쓰라면 어디서 주워들은 말은 있으니 또 어떻게 써 보겠는데, 제대로 글쓰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그 자리를 피하고만 싶습니다.


글쓰기에 관련된 여러 가지 일화들이 떠오릅니다. 아이들의 말도 귀담아들을수록 좋지만, 저는 아이들의 글이 참 좋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5학년 남자아이, 견우의 글입니다. 처음 만났을 때 견우는 조금은 엄격한 환경에서 자란 순종적인 성격의 아이라 자세가 많이 굳어 있는 편이었습니다. 책에 대해서도 시험 보고 정답을 맞히는 자세로 대하는 통에 열심히 읽기는 하지만, 독서의 기쁨은 아직 잘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글은 더 심했습니다. 정답을 써야 한다는 강박이 마음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견우의 글쓰기가 갑자기 좋아진 건, 솔직한 감정을 쓸 수 있도록, 힘을 빼도록 도운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습니다. ‘많이 어색하지만 어디 한 번 솔직하게 내 감정이나 생각을 펼쳐 놓아 보자’고 마음먹고 써 내려간 글은 어떤 글보다 빛이 났습니다. 강박은 자유로움으로 변해 있었고, 굳은 자세는 솔직한 겸손함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글을 통해 견우라는 사람을 더 자세히 알고 느끼게 되어 좋았고, 솔직하게 글을 읽고 받은 느낌이나 생각을 전하면서 우리 사이에 다리가 놓이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런 ‘도약’은 마치 시냇물을 건너기 무서워하는 아이에게 손을 내밀었고, 아이는 신뢰하며 손을 잡고 스스로의 힘으로 시냇물을 건넌 것과 같습니다.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가장 기쁜 순간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그 이후로도 솔직하고 담백한 견우의 글은 저뿐 아니라 같은 그룹 친구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당연히 견우에게 가장 좋은 일이었습니다.


글쓰기 교육은 대개 일기 쓰기로 가장 먼저 시작됩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쓴다는 것이 가장 좋은 시작이 됩니다. 그러나 매일의 숙제가 가지는 함정이 늘 그렇듯이, 아무 생각 없이 형식적인 칸 채우기, 줄 채우기가 되기 쉽습니다. 매일의 뻔한 일기에 코멘트를 재미나게 붙여주시는 선생님을 만나면, 그나마 조금 더 자발적인 글쓰기가 될 때가 있습니다.


“오! 철학적임.”

 

“다 좋은 노래들이네~ 선생님도 이 노래들 다 좋더라!”

 

“다른 사람의 마음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지만 관심 갖다 보면 나와의 관계도 더 자연스러워지고, 갈등도 줄여 나갈 수 있을 거야!


저는 아이들의 일기를 읽는 것만큼이나 선생님들이 붙여주시는 유머나 멘트를 읽는 것이 기대됩니다. 교실 안팎으로 많은 업무에 시달리면서도 한 아이의 일상, 감정과 생각에 꼬리표를 달아주시는 노력에, 그 사랑에 절로 존경심이 생깁니다.


아이들과 함께 글쓰기를 하면서 가장 즐거울 때는 시를 짓는 시간입니다. 아이나 어른이 쓴 시를 같이 낭독하며 즐기는 것도 재미가 있습니다. 시는 사실 어떤 문학 장르보다 해석이 어려운 장르입니다. 시인은 그 깊은 생각을 정제된 언어로 자신만의 인장을 찍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이들의 경우는 시 쓰기가 제일 쉽습니다. 내 맘대로 쓰는 자유를 한 번 맛보고 나면, 말의 재미를 좀 느끼고 나면, 짧은 시 쓰기가 가장 좋습니다.


그리고 독후감의 세계로 넘어갑니다. 아이들이 가장 싫어하는 활동 중 하나가 독후감 쓰기입니다. 책 읽기도 싫지만 독후감 쓰기는 훨씬 더 싫습니다. 한 편의 독후감을 짧든 길든 완성 하려고 하면 머리에 쥐가 난다고 하는 아이들도 많습니다. 사실 글쓰기는 고도의 이성적인 정신 활동이므로, 머리에 쥐가 나는 게 맞을 것입니다. 몇 줄이라도 채워야 하는 글 때문에 책이 더 싫어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독후감 쓰기가 힘을 발휘할 때는 두 가지 중 하나라도 만족하는 경우입니다. 읽은 책이 인생 책으로 느껴졌을 때, 혹은 읽은 책에 대해서 실컷 이야기를 나눈 경우입니다. 혼자만의 독서가 수다나 토론과 같은 말하기로 자신의 생각과 연결되고, 또 조금은 깊어진 자기 생각을 정리해서 저장하는 작업이 독후감 쓰기가 된다면 독후감 쓰기도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특별한 경험이 됩니다. 내가 읽고, 말했고, 쓰기까지 했다는 것은 감정에서 시작해서 생각을 했고 정리하는 단계까지 나아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기 생각이 멋있게 정리된 글을 읽으며 본인이 가장 먼저 감탄합니다.


“내가 이런 긴 글을 쓸 수 있다니!”

 

“내게도 이런 생각이 있었나!”


논리적 글쓰기는 그다음 단계입니다. 독후감은 많은 부분을 책과 책의 저자에 의존합니다. 인물과 사건, 배경이 모두 책 속에 있습니다. 나는 그 인물이나 사건과 배경에 반응하는 사람입니다. 지식책의 경우도 독후감은 책의 수많은 내용이나 책의 저자에 많은 부분 의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제’를 놓고 논리적인 글쓰기를 하려면 내가 더 주인공이 되고 좀 더 자발적이 되어야 합니다. 좀 더 골똘하게 의미들을 논리적으로 붙여나가야 합니다.


어른들에게는 글쓰기 붐이 일고 있지만, 아이들의 삶은 글쓰기와 점점  멀어지는  같습니다. 지식 암기의 시대가  지가 언제인데, 언제까지 논리적인 자기 생각을 펼치는 장이 혹은  분위기가 마련되지 않을지…… 아이들은 글보다는 영상으로, 감각적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타인을 받아들이는  익숙합니다. 생각을 담는 그릇인 글을 통해  무럭무럭 자라면 좋겠는데 말입니다. 생각을 담는 도구인 언어를 가지고,   많은 살아있는 경험을 하면 좋겠습니다.


말하기와 글쓰기는 ‘나’를 세상 가운데 놓고 소통하고 확장하는 방법입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인 것처럼, 나의 생각은 표현되어야 비로소 나의 생각이 됩니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자유롭게 말하고 글을 쓰는 미래를 꿈꿔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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