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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터러시 멘토 Oct 14. 2022

스토리: 인간다움을 이야기에서 찾다

듣는 이야기: 전래 동화의 위대함

옛날하고도 아주 먼 옛날, 어느 산골에 홀어머니와 아들이 오순도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산에서 나무를 하고 온 아들은 어머니가 사라진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꽁지 닷 발 주둥이 닷 발 되는 커다란 새에게 어머니가 잡혀갔다는 소식을 듣고 아들은 어머니를 찾아 나섭니다. 아들은 우여곡절 끝에 힘들게 얻게 된 볏집 태운 재, 고춧가루 한 봉지, 도꼬마리 한 웅큼, 삭정이 한 단을 쥐고 꽁지 닷 발 주둥이 닷 발 되는 큰 새가 사는 동굴에 도착했습니다. 

동굴 안에서 쇠창살에 갇혀 있는 어머니를 만난 아들은 어머니 손을 잡고 펑펑 울었지만 문을 열 수가 없었습니다. 

궁리 끝에 아들은 큰 새가 오기 전에 재는 방에, 고춧가루는 마당에, 도꼬마리는 부엌에 뿌리고 삭정이는 아궁이에다 넣어 놓았습니다. 

꽁지 닷 발 주둥이 닷 발되는 두 마리의 큰 새들은 아들이 뿌려놓은 것 때문에 방에도, 마당에도, 부엌에도 잘 수가 없게 되자 가마솥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이를 몰래 숨어서 지켜보던 아들은 큼직한 바위를 솥뚜껑 위에 올려 놓고는 아궁이에 불을 땠습니다. 

솥에서 나오지 못한 새들은 새까맣게 타 죽고, 새가 죽자 저절로 쇠창살도 스르르 열렸습니다. 

어머니를 구한 아들은 숯처럼 까맣게 탄 새들을 절구에 넣어 가루로 만들어 바람에 날려 보냈습니다. 

그랬더니 그 가루가 멀리멀리 날아가서는 모기로 변했습니다. 

꽁지 닷 발 주둥이 닷 발 커다란 새가 사람한테 죽은 게 너무 억울해서, 모기가 되어 사람을 자꾸 무는 거랍니다.

<꽁지 닷 발 주둥이 닷 발> 



누구보다 모기에게 괴롭힘을 많이 당하는 아이들은 모기에게 감정이 많습니다. 말을 제법 하고, 따지기 좋아하는 시기가 되면 아이들은 모기에 대한 의견도 표현하기 시작합니다. “모기는 왜 사람을 무나요?” “왜 하필 사람피를 빨아 먹나요?” 아이들의 많고 많은 질문이 귀찮은 부모는 “그러게, 왜 그럴까?”하며 대충 넘어가기도 하고, 또 조금 바지런함을 떨어 흡혈을 하는 모기에 대한 과학적 상식을 찾아서 설명해주는 부모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궁금증과 모기에게 품은 분한 감정이 완전히 해결되지 않습니다. 


이 전래동화를 들은 아이들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인 것 같지만 왠지 마음 속이 시원해짐을 느낍니다. 여러 번 들어본 구출하는 이야기이지만, 아들이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가족인 엄마를 찾아 용감하게 떠나서 마침내 엄마를 괴물로부터 구하는 이야기는 들어도 들어도 긴장됩니다. 결국에는 '꽁지 닷 발 주둥이 닷 발'인 크고 나쁜 새가 당하니까 통괘합니다.구석구석 재미있는 이야기를 머리 속에 그려보며 모기에 대한 감정도 정리됩니다.  


아이들은 전래 동화를 들으면서 자신이 생각하지 못한 이야기의 세계에 풍덩 빠져듭니다. 먼 옛날로 슬쩍 넘어가고, 저 멀리로 따라가 봅니다. 특히 어른들이 들려주는 옛이야기는 아무런 도움 없이 오직 귀를 기울여 들려오는 음성을 실마리로 하여 이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독특한 체험입니다. 이야기를 정면으로 마주보는 일입니다. 


옛이야기를 들려주는 아주 평범한 일들이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해 왔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우리의 조상들은 인생의 수많은 이야기들을 만들어 후손들에게 들려주며 인간다움을 전수해왔습니다. 재미있는 이야기, 슬픈 이야기, 무서운 이야기, 불가사의한 이야기 등 온갖 이야기가 있습니다. 인생의 풍부한 

경험을 한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풍부한 감정과 이해를 바탕으로 오래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옛이야기의 언어 속에는 이야기 속에도 이야기 밖에도 수많은 시간이 만들어낸 생명력이 있습니다.


지금은 이야기꾼이었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사라지고, 수많은 그림책, 동화책이 살아남은 시대입니다. 그러니 전래 동화는 읽어주는 사람이 책을 읽는 느낌보다는 옛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야기꾼이 되어 듣는 사람이 오롯이 구체적인 세계를 그려내도록, 귀로 듣는 언어에 대해 신뢰감을 쌓아 살아있는 언어의 힘을 배울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습니다.


세계적인 아동도서 전문가인 마쓰이 다다시는 말하는 것도, 들리는 것도 공허해진 시대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귀를 통해 순수하게 남의 말을 듣는 것, 구체적인 언어로 만들어진 세계를 귀로 듣는 것은 ‘언어’에 대한 신뢰감을 쌓는 첫 단계라고 말합니다. 그의 표현을 빌자면 유아기에 옛이야기를 듣는 것은 귀를 통해 묵직한 존재감이 있는 언어 세계를 체험하는 것입니다. 그 풍부하지만 생명력 있는 언어를 통해 언어에 대한 믿음을 갖게 됩니다. 또 일상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언어의 본질에 뿌리를 둔 체험임으로 앞으로 오랫동안 언어의 홍수에서 살아가야 할 아이들을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읽기, 듣기 교육입니다. 


잠자리 독서를 하면서 아이들은 전래 동화를 가장 오랫동안, 또 가장 즐겁게 들었던 것 같습니다. 아이들 입장에서 전래 동화는 가장 낯선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가장 익숙한 이야기입니다. 오랜 땅의 역사가 배어 있는 우리의 이야기이면서, 가장 오래되어 낯선 이야기이니까요. 아이들이 자라 엄마 품에서 벗어났을 때, 마음이 불안한 일이 생길 때면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할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엄마의 무릎에 누워 자신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행복감, 안정감을 느끼는 아이들을 보면서 옛이야기의 힘을 떠올린 적이 있습니다. 자신의 뿌리를 돌보는 것이 우리의 본능적인 보호 방식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좀 더 본질적으로 ‘언어’의 문제로 접근해보면 잠자리 독서는 호모 링구아인 아이들에게 평생 도구로 사용해야 할 ‘언어’에 대한 신뢰를 쌓는 일이구나를 깨닫게 됩니다. 언어를 신뢰할 때 언어를 발화하는 사람을 신뢰하게 됩니다. 언어를 신뢰할 때, 언어를 도구로 한 정보나 지식에 대한 관심도 이어집니다. 언어를 신뢰할 때 언어를 통한 사고, 사유를 하면서 성장하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전래 동화책은 그리고 그것을 읽어주는 노력은 참 위대한 행위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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