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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터러시 멘토 Oct 19. 2022

은유와 확장 : 경이로움을 느끼다

즐기는 이야기_ 판타지 전성시대


“하지만…… 전 시리우스와 루핀 교수가 페티그루를 죽이지 못하게 막았어요! 볼드모트가 돌아온다면 그건 제 잘못이에요!”

“그렇지 않단다.” 덤블도어 교수가 조용히 말했다. “시간을 거꾸로 가게 하는 시계를 이용해 과거로 돌아간 경험을 하면서 뭘 배웠니, 해리?” 우리 행동의 결과는 항상 너무 복잡하고 다양하단다. 따라서 미래를 예측한다는 건 사실 대단히 어려운 일이지……. 안됐지만 트릴로니 교수가 바로 그 산 증거란다……. 페티그루의 생명을 구해 준 건 매우 훌륭한 일을 한 거란다.“


조앤 롤링, <해리포터, 아즈카반의 죄수>



“예전부터 물어보고 싶었는데, 당신은 왜 손님을 고르는 거야? 매일 당신은 제비를 뽑아서 동전을 골라. 그 동전을 가진 사람만 당신 가게에 올 수 있다니, 대체 그런 속 답답한 짓을 왜 하는 거야?”

“인간이 사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입니다.”

아주머니는 천천히 대답했다.

“돈이라는 것은 인간의 욕망이 굳어진 것, 그렇다고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닙니다. 사용하는 인간에 따라 돈은 행운이 되기도 하고, 불행이 되기도 하지요. 그것이 이 베니코에게는 정말 흥미롭습니다. 요도미 씨가 악의를 좋아하는 것처럼 나는 인간이 어떤 운을 잡을지 그것을 보는 것이 즐겁습니다. 그래서 <전천당>을 연 것이지요. 운을 시험하는 가게. 돈으로 운을 살 수 있지만, 그것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행운이 될 수도 불행이 될 수도 있는 과자를 파는 가게 말이에요.”


히로시마 레이코, <이상한 과자 가게, 전천당 4>



<해리 포터>가 몰고 온 파장은 막대했습니다. 20년 이상 책과 영화로 전 세계의 아이들이 마법 학교를 둘러싼 마법 판타지 세계에 빠져들며 <해리 포터> 시리즈와 함께 성장했습니다. 수리수리마수리 마법들은 <해리 포터> 이전에도 어린이 문학에서 자주 활용되는 소재였지만, <해리 포터>가 출판되면서 판타지는 주류 문화가 되어서 캐릭터가 문학을 넘어 영화와 테마파크, 캐릭터 상품 등 문화 산업으로 확장되었습니다. 길고 두터운 ‘해리 포터 세대’를 만들었습니다. 혜성처럼 나타난 조앤 롤링의 <해리 포터>는 사실 갑자기 툭하고 등장한 작품이 아니라 영국의 아동문학의 거장들, 로알드 달이나 C.S.루이스, J.R.R. 톨킨, 프랑스 문학의 자양분을 먹고 자란 환상 소설, 성장 소설의 새로운 경지였습니다. 특별히 작가 조앤 롤링은 C.S.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나 J.R.R 톨킨의 <반지의 제왕>에 몰입한 시간을 말하기도 했습니다. 


환상 문학 혹은 판타지는 인간이 얼마나 경이로움을 갈망하는가를 보여줍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문학과 예술의 ‘카타르시스’의 역사적인 발전에서 그 뿌리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격정적으로 솟아오르는 영혼의 고양’을 지칭하는 ‘카타르시스’ 즉 ‘숭고’에 논의는 오래된 미학의 주제였습니다. 고대 로마의 철학자 롱기누스는 <숭고론>에서 카타르시스가 예술가의 고귀한 영혼, 정신에서 비롯되어 감상자의 황홀경으로 이어진다고 말했습니다. 


근대에 이르러 많은 철학자들이 ‘숭고미’를 폭풍에 휩싸인 바다, 깍아지른 절벽, 어두운 숲 등 자연의 대상을 통해 드러내었고, 칸트는 자연의 거대한 측면의 수학적 숭고와 위력적인 측면의 역학적 숭고를 말하였습니다. 칸트에 따르면 자연의 광대함과 이를 바라보는 인간의 고통을 수반한 기쁨이 곧 숭고미였습니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포스트 모던’이라는 표현을 처음 사용한 철학자 리요타르가 현대 예술이 음악은 조성을 포기하고, 시는 의미를 포기하고, 연극은 부조리해진 이유가 이 숭고의 대상을 표현하기를 포기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런 관점을 차용한다면 환상 문학, 판타지는 만화와 더불어 문학의 하위 범주와 영상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초대형 영화에서 다른 예술이 포기한 숭고의 재현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신과 자연을 혹은 초자연적인 것들을 재현하는 데 스스럼이 없는 판타지에서 그렇다면 독자들, 관객들은 카타르시스를 얼마나 느끼는가의 문제가 남았습니다. 롱기누스의 주장에 따르면 ‘카타르시스’의 양과 질은 그것을 만드는 예술가들의 정신적 역량이 어떠하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전 세계 어린 많은 독자들과 관객들에게 이른바 ‘카타르시스;를 안긴 조앤 롤링의 <해리 포터>는 영국의 환상 문학의 자양분을 한 예술가의 고귀한 영혼이 이루어낸 작품이 됩니다.



최근 몇 년간 일본 판타지 소설 <이상한 과자 가게 전천당>이 <해리 포터> 만큼의 열풍은 아니지만 게임과 만화, 웹툰이 가져간 아이들의 눈을 책으로 옮겨놓고 있습니다. 책을 즐겨보지 않던 아이들도, 글밥이 많은 책을 읽어본 적이 없던 아이들도 <이상한 과자 가게 전천당> 시리즈에 폭 빠져서 한 권을 후루룩 읽고는 다음 권이라고 외쳐댑니다. 자녀들의 이 ‘바람직한’ 모습을 지켜보는 부모님들은 <이상한 과자 가게 전천당>의 유해하지 않은 내용과 교훈에 더욱 안심하며 이 시리즈가 앞으로의 독서에 길잡이가 되어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제대로 된 독서인가하는 의구심도 한 구석에 가지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소원을 들어주는 과자 가게라는 아이들이 열광할 만한 판타지 장소에 수많은 비밀과 이야기가 숨겨져 있는 과자라는 소재, 또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는 가에 따라 결과가 바뀌는 설정은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읽는 재미를 주고 있습니다. 장편의 호흡으로 연결된다기보다는 에피소드식으로 짧은 이야기가 나열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일상을 둘러싼 사연들과 기괴한 과자들은 마치 포켓몬 시리즈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고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수집형 소재의 문학 버전 같습니다.  


아이의 눈으로 바라보는 삶은 이렇게 구체적이고 세밀합니다. 매일매일 사서 모을 수 있는 수집형 장난감, 간식거리, 노는 아이템들을 볼 때, 어린이의 삶이 어른보다 더 소비와 연결이 되어 있고, 더 물질적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이상한 과자 가게 전천당>은 그래서 숭고한 ‘카타르시스’보다는 우리 삶의 직접적인 은유로 아이들에게 다가옵니다.  


사실 끊임없이 변형이 되어 계속 제공되는 아이템들은 아이들을 둘러싼 각종 문화의 키워드인 것 같습니다. 문화 산업 측면에서는 한 가지를 제대로 만들면 멀티 유즈는 물론이고, 멀티 생산, 멀티 소비가 가능한 물적 토대가 갖춰져 있습니다. 신과 자연이 주는 거대하고 강한 ‘숭고함’이 초자연적이고 마술적인 많고 작은 물건의 ‘숭고함’으로 바뀐 것도 같습니다. 


판타지를 비롯해서 모든 문학에서 활용되는 은유와 확장이 있습니다. 평범한 대상이 은유로 확장되어 나오는 데서 오는 놀라움, 평범한 인간이 영웅으로 확장시킨 데서 오는 경외감은 인간의 이성과 상상력에서 비롯됩니다. 우리는 경이로움을 느끼며 인간다움을 누립니다. 경이로운 대상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질 것인가? 경이로움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에 대해 고통과 한계를 느끼는 데서 그치느냐, 아니면 이를 상상력으로 채우며 ‘쾌’를 느끼며 사느냐하는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이상한 과자 가게 전천당>을 읽는 아이들에게 그 다음은 더 좋은 판타지, 더 좋은 경이로움을 경험해주는 일이 남은 것 같습니다. <100층짜리 시리즈>, <괴물들이 사는 나라>, <마녀 위니>는 좀 더 어린 아이들에게 좋은 판타지물이니, <해리 포터>를 읽고 싶다면 그 전에 로알드 달의 상상력이 넘치는 단편 소설들을 읽어도 좋겠습니다. 어린이 문학을 통해 이성이 놓치는 상상력의 세계를 또 그 상상력의 세계가 안겨주는 ‘경이로움’, ‘카타르시스’를 함께 즐기면 좋겠습니다. 어차피 판타지는 계속해서 전성시대를 이어갈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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