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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터러시 멘토 Oct 17. 2022

차이와 반복 : 문해력의 뿌리를 심는다

읽는 이야기_ 시적 체험

옛날 옛날에 곰 세 마리가 살았어.

아빠 곰, 엄마 곰, 그리고 아기 곰.


하루는 엄마 곰이 뜨거운 죽을 만들었어.

아빠 곰 죽은 큰 그릇에, 엄마 곰 죽은 중간 그릇에, 그리고 아기 곰 죽은 작은 그릇에 담았지.

죽은 너무 뜨거웠어.

그래서 곰 세 마리는 죽이 식을 때까지 산책을 가기로 했지.


그때 금발이라는 아이가 지나가다가 집 안을 들여다보게 되었어.

그랬더니 죽 세 그릇이 보이네.

금발이는 배가 고팠어.

그래서 아빠 곰 죽을 먹어 보았지. 하지만 너무 뜨거웠어.

다음에는 엄마 곰 죽을 먹어 보았어. 이번에는 너무 차가웠지.

금발이는 아기 곰 죽도 먹어 보았어. 이번에는 딱 먹기 좋았어.

앗! 죽을 먹다 보니 어느새 다 먹어 버렸네.


이제 금발이는 앉고 싶어졌어.

맨 먼저 아빠 곰 흔들의자에 앉아 보았지. 그랬더니 너무 빨리 흔들리네.

다음에는 엄마 곰 흔들의자에 앉아 보았지. 이번에는 너무 느리게 흔들리네.

그래서 아기 곰 흔들의자에 앉아 보았어. 이번에는 딱 알맞게 흔들렸지.

금발이는 흔들흔들 자꾸만 흔들어 댔어.

너무 많이 흔들어 대서, 의자가 그만 와지끈 부러져 버렸어.


금발이는 이제 눕고 싶어졌어.

맨 먼저 아빠 곰 침대에 누워 보았지. 그런데 너무 딱딱했어.

다음에는 엄마 곰 침대에 누워 보았어. 이번에는 너무 푹신했지.

그래서 아기 곰 침대에 누워 보았어. 이번에는 딱 좋았어.

금발이는 아기 곰 침대에서 콜콜 잠이 들었어.


조금 있다가 곰 세 마리가 집으로 돌아왔단다.

곰 세 마리는 죽 그릇을 보았어.

아빠 곰이 말했지. “누가 내 죽을 먹은 거야?”

엄마 곰도 말했어. “누가 내 죽을 먹었네.”

그러자 아기 곰이 말했지. “누가 내 죽도 먹었어. 게다가 싹싹 다 먹어 버렸잖아.”


곰 세 마리는 흔들의자를 보았어.

아빠 곰이 말했지. “누가 내 의자에 앉았지?”

엄마 곰도 말했어. “누가 내 의자에 앉았나 보네.”

그러자 아기 곰이 말했지. “누가 내 의자에도 앉았나 봐. 게다가 완전히 부서져 버렸어.”


그 다음에 곰 세 마리는 침대를 보았어.

아빠 곰이 말했지. “누가 내 침대에서 잠을 잔 거야?”

엄마 곰도 말했지. “누가 내 침대에서 잠을 잤나 봐.”

바로 그 때 아기 곰이 소리쳤어. “누가 내 침대에서 자고 있어요. 이거 봐요. 여기 여자애가 있어요.”


금발이는 곰 세 마리를 보고서, 아기 곰 침대에서 발딱 일어나 후다닥 달아났어.

금발이는 걸음아 나 살려라 달려갔지. 곰 세 마리네 집에서 아주 아주 멀리멀리.


바이런 바튼, <곰 세 마리>



너무나 유명한 영국의 전래 동화 <골디락스와 곰 세 마리>입니다. 아빠 곰, 엄마 곰, 아기 곰의 죽과, 의자와, 침대를 함부로 먹고, 앉고, 눕는 금발이(골디락스)의 행동이 반복됩니다. 이 반복과 차이가 이야기도 만들고, 시적인 운율도 만듭니다. 금발이가 아기 곰의 죽과, 의자와, 침대에 대해 “딱 좋다”는 반응을 보일 때, 딱 좋은 때의 최고의 기분과 금발이의 나쁜 행동이 합해지면서 아이러니적인 쾌감이 느껴집니다. 


더 어린 아이들을 위한 동화일수록 반복과 차이는 두드러집니다. 대부분의 그림책은 이 반복과 차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물론 의성어와 의태어와 같은 음성상징어, 최상급의 활용이 두드러집니다. 어린이 독자들은 음성상징어 등과 더불어 차이와 반복이 빚어내는 언어의 재미에 빠져듭니다. 세상도 차이와 반복으로 익혀갑니다. 모든 부모가 아이들이 자라는 동안 반복되는 말과 행동을 하는 것에 지쳐서 대충 얼버무리거나 하는 시늉만 해본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상 생활에서의 반복 혹은 미디어에서의 반복과 달리 문학에서의 반복은 그 의미가 확연히 다릅니다. 문학에서의 반복은 사실 시적인 체험이기 때문입니다.


시인들은 통사구조 즉 문장의 일부나 전부의 반복, 대구법, 연쇄법, 수미상관법 등 반복을 통한 표현을 너무나 많이 활용합니다. 그들은 짧은 작품에 자신만의 인장이 박힌 고도로 정제된 언어를 선택하고, 이를 독자들과 나누기 위해 반복을 통해 여운을 남깁니다. 이런 차이와 반복이 두드러진 시를 읽는 독자들은 읽는 맛이 납니다. 내용적으로는 주제가 강조되고, 형식적으로는 시의 운율이 생겨 시는 좀 더 친절한 작품이 됩니다. 어린이 문학에서도 이런 차이와 반복은 가장 중요한 작가의 배려입니다. 독자는 이 배려를 통해 일상을 넘은 시적인 체험을 합니다.   


영국의 대문호 T. S. 엘리엇은 <시의 사회적 기능>이라는 논문에서 시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우리에게 ‘기쁨’을 주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에 따르면 시는 새로운 경험을 전달하고, 일상적인 것에 대한 신선한 이해를 주고, 이미 경험한 것이라도 언어로 표현하지 못한 것을 표현하게 하는 기능이 있습니다. ‘새로운 언어를 느낀다’고 한 엘리엇의 표현은 시를 넘어서 <곰 세 마리>와 같은 동화, 즉 문학성이 좋은 그림책과 동화에 모두 적용됩니다. 시적 언어만의 독특한 리듬, 느낌, 이미지의 연결, 즐거움, 쾌감이 논리적인 문자 언어, 긴 산문으로 넘어오기 전, ‘음성 언어’에 대한 감각을 일깨웁니다. 이런 기쁨의 언어, 새로움의 언어인 시적인 언어를 많이 체험한 아이일수록 문해력의 뿌리가 되는 언어를 통한 상상력과 이해력 발달이 빠르고, 언어를 생생하게 느끼고 활용할 줄 알게 됩니다.  


그러니 좋은 어린이 문학, 특별히 어린 아이들을 위한 문학일수록 그것의 기준은 소리 내어 읽어서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림책 작가들은 그림으로 표현하는 한편, 귀로 들어서 알기 쉽고, 생생하고, 아름다운 글을 쓰는 데 혼신을 기울입니다. 그들은 문장의 리듬, 언어의 감각을 키우도록 돕는 진짜 좋은 예술가들, 정말 좋은 선생님들입니다. 시의 운율을 이해하고, 언어의 유희를 누리는 부모님들도 좋은 독자이자, 참 좋은 선배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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