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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터러시 멘토 Sep 21. 2022

영어책을 읽는다는 것

어린이든, 어른이든

 

영어에 대해 오랫동안 자존심을 내세우면 살았습니다. 그 자존심을 들여다보면 참 복잡한 것 같습니다. 문법 위주 공교육의 폐해, 외국인과 외국문화에 대한 생경함, 영어에 대한 과도한 추종 혹은 제국주의에 대한 반항심, 비싼 사교육비, 오랜 훈련 기간 등 지금 세대와는 확연히 다른 환경에서 벌어진 낡은 문제들이 응축되어 있었습니다. 물론 이 중에는 외국어 학습에 관련된 여전히 유효한 이슈들도 포함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이 모든 것은 다 핑계일 뿐이라고 할 만큼 다른 사람들처럼 영어 공부에 뛰어들지 않은 것이 문제인데 그것을 인정하기가 싫었습니다. 무엇보다 다 큰 어른이 앵무새처럼 유치한 말들을 아이처럼 종알대기가 싫었습니다. 유창한 모국어로는 복잡하고 심오한 의미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데, “내가 왜 굳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었습니다. 그래도 영어를 유창하게 잘하는 사람을 보면 자존심 때문에 표현하지 못하는 부러움이 있었습니다. 유창한 실력 뒤에 숨어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긴 훈련의 땀, 인고의 시간에는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한 번에 쑥 잘하고 싶은 환상도 있었습니다. 시험을 코앞에 둔, 그러나 공부는 하기가 싫은 모든 학생들의 헛된 망상도 한 구석에서 불순하게 또아리를 틀고 있었나 봅니다. 


취업이 아니라 공부를 오래 해보기로 마음먹은 터라 영어에 대한 자존심은 고집이 되었습니다. 한 해, 두 해 꾸역꾸역 복잡하고 심오한 영어 원서를 붙들고 한판승부를 벌이며 버텨냈습니다. 늘 뒷배는 입시 때 마스터한 <성문종합영어>, <맨투맨종합영어>였습니다. 문장의 구조를 샅샅이 분석하는 능력을 갖추다보니 시간이 오래 걸리고 힘들어서 그렇지 그럭저럭 이해가 되었습니다. 한글책을 열심히 읽다보니 영어문장이 한글로 스르르 변화되어 이해되는 독해과정의 마지막 단계는 비교적 수월하게 이루어진 모양입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제게 언어의 정확한 법칙, 영어 문법은 마치 풍부한 언어의 세계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철옹성이었습니다. 문법의 틀에 영어를 가두고 나니 언어로서의 풍부한 영어의 맛을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누군가 말을 하면 문법을 들이밀어, 문법적으로 틀린 말을 어떻게 저렇게 철판을 깔고 말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누군가 글을 쓰면 문법의 틀을 들이밀어 해독했습니다. 


결혼도 하고, 딸 둘을 낳고 어쩌다보니 이제 영어는 나의 문제가 아니라 아이들의 문제가 되었습니다. 아이들에게도 외국어, 특히 영어를 가르쳐야 하는 시기가 찾아 왔습니다. 아이들은 나이 많은 엄마와는 완전히 다른 영어 환경에 놓였습니다. 미디어를 통해 수많은 다양한 영어 컨텐츠들이 아이들의 눈앞에 펼쳐집니다. 어린이집, 유치원 등 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재미있는 다양한 영어 수업을 경험합니다. 아이들이 재잘대기 시작하면서부터 부모는 수많은 영어 사교육 마케팅에 노출되기 시작합니다. 초등학교 3학년에 시작하는 학교 수업과는 별도로 간단한 학습지부터 영어유치원까지 말 그대로 영어 열풍이 빈부의 차이, 가치관의 차이 틈새로 뜨겁게 파고듭니다.


당시 ‘(한글)책 읽어주는 엄마’, ‘함께 (한글)책 읽는 선생님’으로 정체성을 가진 저는 영어 교육 앞에서는 주춤거렸습니다. 영유아 영어 사교육 시장의 부작용을 알고 나니 좀 더 과감하게 영어 교육을 저 뒷전으로 밀어버렸습니다. 그래도 그림책으로 한글을 떼고, 책으로 생각을 넓히는 아이들과 함께 하다 보니 책으로 습득하는 몰입형 영어 교육에는 관심이 갔습니다. 하지만 그 세계로 뛰어들기는 왠지 부담스러워 꽤나 오랫동안 열심히 한글책만 읽었습니다.


첫째가 4학년이 되고 나서야 발등에 불이 떨어져 급하게 잠수네 공부법, 영어도서관 원서 읽기법과 같은 어린이를 위한 영어책 읽기 공부를 엄마표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논술반 아이들도 모두 영어책 읽기 반에 합류하는 바람에 정식으로 영어책 선생님도 되었습니다. 하루 종일 원어민들이 읽는 어린이 영어책을 손에 쥐고 아이들과 함께 낭독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서서히 저의 오래된 영어에 대한 복잡한 감정이 술술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하다 보니 원어민 아이들이 읽는 쉬운 책부터 낭독하기 시작했습니다. 앙증맞은 그림 옆 큰 글씨의 짧은 문장들을 음원을 들으며 따라 읽는 음독은 생각보다 재미가 있었습니다. 의성어, 의태어부터 시작해서 아이들이 겪는 다양한 생활 속의 유머가 있는 리더스북들은 한 시리즈, 한 시리즈마다 생생한 언어의 재미가 있습니다. 


“Woof, woof!”

“Let go of the towel, Biscuit!”

 

“Bow wow!”

“Let go of the towel, Puddles!”

 


“Fly Guy flew until he saw something to eat. 

 It wasn’t oozy, lumpy or smelly.

 But it was brown.

 Close enough!“



엄마가 아이를 키우면서 그림책을 읽기 시작하듯, 우리 아이들은 이미 너무 늦게 시작한 영어책 읽기지만, 조금은 순진하게 좀 더 어린 외국인이 되어 마구마구 읽어 내려가는 수업은 아이들도 저도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하루 1-2권 읽기 숙제를 내어주고, 한 달, 두 달, 1년, 2년, 3년 지나고나니 어느덧 원어민 아이들이 읽는 책을 우리 아이들도 비슷한 나이에 읽게 되었습니다.


성경을 접하고 나서야 서양 문학을 제대로 이해하게 된 것처럼, 어린이 영어책들을 꽤나 오랫동안 읽고 나서야 영미 문화에 익숙해지고, 그 문화와 역사, 가치관을 담은 영어를 제대로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문법의 틀로 분석하던 버릇을 완전히 버리고 이제 영어를 ‘언어 그 자체’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틀에 가두어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이해가 되는 영어 문해력의 기본기를 갖추고 나니 영어에 대한 감정도 단순해졌습니다. 저와 영어는 이제 억지로 무리해서 같이 하지 않아도 함께 하기가 자연스러운 편안한 관계가 되었습니다.


영국와 미국에는 어린이 그림책 작가도 많지만, 어린이를 위한 시리즈물을 만든 어린이 작가들이 참 많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영어책을 읽다보면 아이의 취향에 따라 입맛에 따라 참 다양한 책이 있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양적인 면에서나 다양성 측면에서 입이 딱 벌어집니다. 세계공용어로서 영미권을 넘어 전세계의 독자층을 가진 것도 이유가 되겠지만, 영국은 물론이고, 미국의 경우에도 어린이 문학의 역사가 매우 깁니다. <해리 포터>의 조앤 롤링 뿐 아니라, 영국 작가, 미국 작가들은 모두 오래된 어린이책 거장들의 동화를 읽고 자랐습니다. 100년이 다 되어 가는 시리즈물이 아직도 인기가 있습니다. 할머니가 읽던 책을 엄마가 읽고, 이제는 손자, 손녀가 읽습니다. 또 새로운 재미난 시리즈들도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영국과 미국은 작품 읽기가 곧 국어교육입니다. 어린이책 레파토리가 워낙 다양하다보니 그 책들을 엮은 것이 국어책입니다. 그들은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집에서든 학교에서든 책 읽기가 가장 중요하면서 가장 주된 공부입니다. 그들의 교육과 독서 문화가 참 부럽기도 하지만, 외국인이 영어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 외국어인 영어를 이렇게 즐겁고 의미 있게 배우는 것도 참 좋은 일이다 싶습니다. 20~30권이 되는 시리즈를 읽고 즐기다 보면 주인공 캐릭터와 친구가 되고, 또 그 시리즈를 읽은 모든 세계인들과도 친구가 될 수 있는 것.  이 시대 어린이 영어책을 읽는다는 것의 또 다른 의미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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