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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혜린 Mar 03. 2020

내일을 기대하지 않아

1. 분홍과 ‘나’

  “엄마, 나 공주 같지?” 딸아이 세 살 때, 겨울왕국의 안나 인형을 선물 받은 것이 시작이었다. 그해 겨울은 재즈 대신 ‘Let it go’를 들었다. 아이의 장난감뿐 아니라 잠옷, 티셔츠, 부츠, 팬티까지 엘사가 그려져 있었다. 아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겨울왕국에 시큰둥했지만, 세상은 넓고 공주는 많았다. 공룡의 몸통과 꼬리를 보고 단번에 “브라키오사우르스”라고 외치는 아이처럼, 딸아이는 모든 공주의 생김새와 옷차림을 구분했다. “얘는 아리엘, 쟤는 오로라, 걔는 뮬란.” 단발머리, 긴 생머리, 분홍, 파랑 드레스 모두 달랐다.

     

  아이는 재작년까지 하얀 입김 나오는 한겨울에도 드레스를 입었다. 무더운 여름날, 할머니에게 “더운데 드레스 말고 시원한 옷 입고 다녀.”라는 말을 듣고 눈물을 뚝뚝 흘렸다. 왕위에서 쫓겨난 공주라고 해야 할까. 나는 아이의 모든 것을 분홍으로 맞춰주었다. 아이는 여름이면 인견 드레스, 겨울이면 기모 드레스를 입으며 자신의 왕국을 지켰다. 내가 해보지 못한 것에 대한 보상이기도 했다. 나는 ‘분홍’과 거리가 먼 어린 시절을 보냈다. 나 같은 아이가 감히 공주가 될 수 있다고 생각지 않았다.


  어렸을 때 엄마는 딸 둘이 있는 부잣집 권사님과 친했다. 언니들이 입던 옷이 계절마다 한 보따리씩 우리집으로 왔다. 엄마가 거실 한가득 옷을 풀어놓으면, 나와 동생은 꺅 소리를 질렀다. “엄마, 이것 봐.” 우리는 향기 폴폴 나는 헌 옷 위에서 뒹굴었다. 바지 길이가 한 뼘은 남아 질질 끌리고, 군데군데 구멍도 났지만 매일 다른 옷을 입을 생각에 설렜다. 하지만 어느 순간 물려받은 옷이 달갑지 않았다. 6학년쯤 되었을까. 엄마가 우중충한 분홍에 리본이 달린 패딩을 내밀었다. 학교에는 이미 휠라, 나이키 옷을 입고 다니는 아이들이 있었다. 그런 옷은 꿈도 안 꿨지만 분홍을 입기에 나는 너무 자랐다. 나는 추위에 덜덜 떨면서 끝까지 그 옷을 입지 않았고, 끝내 엄마 손을 붙들고 옷가게에 갔다.

     

  고등학생 때 밀리오레, 두타 같은 종합 패션 쇼핑몰 붐이 일면서, 부천에도 씨마가 생겼다. 버스를 몇 번 갈아타고 가야 할 만큼 멀었다. 씨마에 도착해 층별로 모든 가게를 다 돌아보고 겨우 옷 하나를 골랐다. 시험이 끝나면 옷, 신발, 액세서리 가게가 길게 이어진 지하상가도 갔다. 시간은 많고 돈은 궁했던 시절, 어디에 더 싸고 예쁜 옷이 있을까 발품을 팔았다. 고민 끝에 나는 늘 베이지, 검은색의 가장 무난한 옷을 골랐다. 언젠가 주황색 야구 점퍼를 사고선 입을 때마다 남의 옷 같아 후회를 한 터였다.

     

  그런 내가 대학 시절 분홍 공주가 되었다. 뒤늦게 만난 분홍이 참 고왔다. 대학 입학을 앞두고, 사촌 언니와 백화점에 갔다. 언니는 나를 캐주얼 층으로 데려가 분홍 재킷을 추천했다. “난 이런 거 안 어울려”라며 고개를 젓는데, 언니가 스무 살은 이렇게 입는 거라고, 점원도 잘 어울린다고 입을 모았다. 마지못해 입고 나와 거울을 보는데 웬걸,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나도 분홍색을 입을 수 있는 아이구나.’ 새삼 깨달았다. 처음 눈뜬 분홍의 세계, 나는 그때부터 일곱 살 아이처럼 모든 것을 분홍으로 물들였다.


  입학식 때 연홍 정장을 입었고, 도홍 아이쉐도우를 발랐다. 선홍 바바리에 은홍 바지를 입고 학술 답사를 갔다. 고등학생 시절 어렴풋이 흉해 내던 어른의 세계를 마음껏 누렸다. 화장과 파마, 블라우스와 정장 치마, 스카프와 하이힐까지 캠퍼스는 언제나 봄날이었다. 요즘도 가끔 회기 근처를 지날 때면 분홍의 내가 떠오른다. 서툴고 모자랐지만, 모든 것이 충분했던 때. 입지 않는 분홍 재킷을 아직까지 가지고 있는 이유는 그 안에 살고 있는 분홍 공주 때문일까.

    

  나와 아이 모두 이제 분홍을 떠났다. 딸아이는 일곱 살이 되면서 티셔츠와 바지를 주로 입기 시작했다. 쥬쥬 원피스에 날개를 달고 다니던 아이가 이제 쥬쥬 내복도 안 입는다. “안에 입는 건데 그냥 입자.” 설득했지만, 친구들이 보면 놀린단다. 시크릿 쥬쥬 향수, 시계, 핸드백, 휴대폰을 사달라고 떼를 쓸 때는 언제고. 아이는 여전히 분홍에 끌리지만 자신이 공주가 아님을 안다. 나는 유럽 여행을 계기로 분홍에서 멀어졌다. 그곳에는 분홍을 입은 어른이 없었다. 진홍 야구 모자를 쓰고 심홍 티셔츠를 입은 내가 창피했다. 유럽 유학 중인 친구가 말했다. “여기에서는 보통 분홍색을 잘 안 입어. 아이의 색이라고 생각해.” 뒤늦게 분홍을 탐한 나의 스무 살이 얼룩졌다.


“인생의 의미는 내가 나 자신에게 주는 것이다.”라는 아들러의 말은 결국 이런 뜻이지. 인생에 있어 의미 같은 건 없다, 하지만 내가 그 인생에 의미를 줄 수 있다, 내 인생에 의미를 줄 수 있는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밖에 없다. - 기시미 이치로, 고가 후미타케, 《미움받을 용기》, 인플루엔셜, 2014, 316쪽   


  유럽 여행 이후 분홍이 사라진 나를 주위에서 의아해했다. 나는 멋쩍게 웃으며 부끄러운 나를 잊으라고 했다. 아이를 키우며 알았다. ‘그때 나는 뒤늦게 어린 나를 만났구나. 스무 살에 유아기를 다시 보낸 거였어.’ 예닐곱 살 때, 내가 어떤 옷을 입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시절 나에게 분홍은 없었다. 분홍은 모든 것이 충분해 특별할 때, 꽃처럼 피어나는 색이다. 대학 시절, 내가 좋다는 사람이 몇 있었다. 늘 관심받고 싶어 허덕였는데, 누군가 나를 바라봐준 것이 처음이었다. 지금 남편도 그중 하나. 덕분에 마음 놓고 분홍 공주가 된 것일까.


  분홍을 누리지 못해, 뒤늦게 분홍에 물든 나를 이제 안아준다. 민망해하지 말라고, 늦어도 괜찮다고 말이다. 이제 나도 내가 공주가 아님을 안다. 분홍의 시간을 지나고 나니, 외롭고 쓸쓸했던 내가 보인다. 늘 사랑받고 싶었지만, 감히 사랑을 꿈꾸지 못했던 나. 날이 풀리면 새로 산 파스텔 분홍 재킷을 입고 산책을 가야겠다.


Photo by Kelly Sikkema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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