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혜린 Mar 04. 2020

내일을 기대하지 않아

2. 난 네가 부러워

  어렸을 때부터 J가 부러웠다. 얼굴과 행동뿐 아니라, J가 입은 옷, 쓰는 물건은 모두 남달랐다. J는 늘 인기가 많았다. 동그란 듯 갸름한 얼굴은 하얬고, 쌍꺼풀 없이 큰 눈은 웃으면 반달이 되었다. 나는 초등학생 때 J와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조차  했다. 나와 다른 차원의 사람에게서 느끼는 동경이라고 할까. 같은 교회를 다녔지만, J와 친구가 되는데 10년이 넘게 걸렸다.

    

  중학생이 되자, 교회에 다니는 아이들이 줄었다. 그래도 나는 J와 여전히 멀었다. 학교와 사는 동네가 달랐고, 적극적으로 J에게 다가갈 만큼 용기나 의지도 없었다. 나도 이미 친한 친구가 있었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지내는 것이 편했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각자 학교생활에 바빴고, 대학생이 되서는 예배가 끝나고 가끔 인사를 나눴다. J와 친해지게 된 것은 유치부 교사를 하면서이다. 내가 먼저 유치부 교사를 하고 있었는데, J가 네 살 반 선생님이 되었다. 그때껏 나의 딱딱한 율동만 보던 꼬마들이 J에게 폭 빠졌다. 손과 발이 따로인 나와 달리 J의 율동에서는 아이돌 느낌이 났다. 그 무렵 교회에 또래 여자는 나와 J밖에 없었고, 나와 J는 자연스레 20대 중반을 함께 했다. 내 부케를 J가 받은 건, 지금 생각해도 신기한 일이다.     


‘남에게 어떻게 보이느냐’에만 집착하는 삶이야말로 ‘나’ 이외에는 관심이 없는 자기중심적인 생활양식이라는 것을. - 기시미 이치로, 고가 후미타케, 《미움받을 용기》, 211쪽.     


  나는 왜 J가 부러웠을까. J는 싫으면 겉으로 내색을 했다. 반면 나는 눈치 보며, 어떻게 하면 다른 이의 마음에 들까 웅크렸다. 타인에 비친 ‘나’가 있는 그대로의 ‘나’보다 더 중요했다. 그러니 자주 삐거덕거릴 수밖에. J는 사람들 시선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J만의 세계가 뚜렷했고, 그 자체로 눈 부셨다. J는 자기주장을 해야 하는 순간에 입을 열었는데,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나는 뚜렷한 주장은 못하면서도, 내 생각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참다못해 화를 내거나 눈물을 흘렸다.     


분업 사회에서는 ‘이기’가 최대한으로 발현되면 결과적으로 ‘이타’로 연결된다. 이기심을 추구한 결과로 ‘타자 공헌’을 하게 되는 것일세. - 기시미 이치로, 고가 후미타케, 《미움받을 용기2》, 인플루엔셜, 2016, 209쪽     


    나는 충분히 이기적이지 않아 이타적이지 못했다. 나를 사랑하지 못해 누구도 사랑할 수 없었다. J는 자신을 사랑할 줄 알았다. 타고난 외모는 자존감을 덧입고 빛났다. 사랑은 사랑에게 관대하다. 학교에서 수업을 할 때면 자연스레 사랑 받고 자란 아이에게 눈이 간다. 예쁘고 공부도 잘 하는데 성격까지 좋은 아이러니. 반면 사랑받지 못한 아이에게 다가가려면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섣불리 손 내밀었다가 아기 코알라처럼 딱 달라붙기도 하고, “당신이 뭔 대?” 뾰족한 발톱을 내밀기도 한다. 사랑도 부익부 빈익빈. 사랑 받은 아이는 어딜 가나 사랑을 부르고, 사랑이 궁한 아이 옆에는 부모, 친구, 교사 아무도 없다.


  성별을 불문하고 ‘저 사람 매력 있다. 왠지 모르게 끌려’ 생각이 드는 사람은 보통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들의 삶은 투쟁적이지 않다. 자신에 대한 사랑을 쓸데없는 고집이 아닌 타인에 대한 이해로 넓힌다. 나는 사랑 받는 것도, 사랑 하는 것도 서툴렀다. 내가 느끼기에 어린 시절 부모의 사랑은 늘 부족했다. 가끔 주위 어른들에게 칭찬을 들으면 얼굴에 빨개져 고개를 숙였다. 며칠 전 사진을 찍으며 둘째에게 웃으라고 했다. 둘째가 눈은 내리고 입은 올리며 얼굴을 찡그렸다. “웃는 건 배운 적이 없어서 너무 어려워.” 노력하는 표정이 꼭 울듯 했다. 순간 생각했다. ‘아, 인생엔 배워야 할 게 참 많구나.’ 나는 사랑 받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아이였다.


  삶은 늘 전쟁, 해결해야 하는 과제였다. 나와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은 모두 틀렸다고 소리쳤다. 그러면서도 속은 ‘관종’이었다. 어떻게 하면 중앙 무대에 서볼까 주위를 살폈다. 유치원 재롱 잔치 때 백설 공주 연극을 한 기억이 있다. 나는 난쟁이라도 하길 바랐다. “K는 백설공주, L은 왕비, P는 난쟁이….” 선생님의 호명에 심장이 콩콩 뛰었다. 나는 끝까지 남아 있다 ‘지나가는 사람2’를 겨우 맡았다. 없는 역할을 선생님이 만든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삶을 늘 지나가는 존재로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때로 다시 돌아가면 나를 좀 더 사랑할 수 있을까.


Photo by Javier Allegue Barros on Unsplash   

작가의 이전글 내일을 기대하지 않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