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옆집에 사는 언니가 부추꽃을 주었다. 언니의 긴 여행 뒤에 방치된 밭에 부추꽃이 무성하게 피어있더라는 것이었다. 언니는 부추도 정리할 겸 꽃을 베어서 버릴까 하다 버리기엔 너무 예뻐서 가지고 왔다고 내게도 한 무더기 주었다. 희한하게도 물 속에 잠긴 줄기 부분은 부추 특유의 풀향이 났는데 꽃더미에서는 은은한 꽃향이 그것도 꽤 근사한 향이 났다. 라일락 향 같기도 하고 제법 향이 짙었다. 꽃이 무더기로 있으니 작은 향이 모여 특유의 향기를 내뿜었다. 물론 가까이 다가가 맡아야 분명했다. 지나가다 맡는 향기는 너무 은은해서 집 안 어딘가에 놓아둔 디퓨저와 섞여 그만의 정체성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우울하다는 한 마디에 언니가 베푼 따뜻한 마음이었는데 나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 것었다. 부추꽃은 일주일이 넘도록 싱싱했다. 제법 무더기가 커서 시들었다싶은 줄기를 걷어내고 열흘간 싱상함을 유지했던 부추꽃을 버리며 아쉬웠다. 부추가 사람 입에 들어가는 음식으로만 인식했지 눈을 호강시킬 수 있는 집 안의 오브제로도 쓰일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게다가 언니의 따뜻한 마음까지 전해져 마음이 편안해졌다. 요즘 잠을 잘 이루지 못할 때가 있다.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빈 구석을 밀려오기 시작하면 심장이 두근거리고 머리는 명료해져 잠은 멀리 달아나버리고 만다. 그러면 몸은 천근만근이 되고 무거운 머리 때문에 마음까지 우울해지기 일쑤였다. 꽃을 보다보니 그나마 마음이 진정된다.
부추꽃만이 아니다. 시골길을 걷다 보면 흰색, 보라색의 도라지꽃, 보라색의 가지꽃, 굵은 꽃대의 오이꽃, 수세미꽃이 먹는 음식으로서가 아니라 꽃으로서 시선을 끈다. 부쩍 흙길을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된 건 그런 꽃들 때문이었다. 허리를 굽히고 사진을 찍다 보면 나도 모르게 낮은 자세를 취하게 된다. 나도 모르게 꽃에게 한 마디씩 건네는 그 작은 행복이 세상의 피곤한 일들로 지친 마음을 차분하게 해준다. 살다 보니 해결해야 할 문제는 언제나 넘었다 싶은 언덕 너머 계속되고 있었다. 세상을 혼자 살 수 없기에, 가족을 이루었기 때문에, 살아야 하는 당면한 문제 때문에 지치고 힘든 순간은 매번 찾아오는 것 같다. 그럼에도 옆에서 누군가 나의 우울을 일으켜줄 손을 내밀어준다면(부추꽃을 한아름 가져다준 옆집 언니처럼),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향과 자태를 가진 꽃이 있다면, 사랑하는 이의 전화가 있다면 그래도 오늘 하루는 살아갈 힘이 주어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