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우체통

독서일기 9

by 이성주

‘19호실에 가다’를 읽고


‘골드미스’라는 말이 한동안 회자된 적이 있었다. 고등 교육을 받고 전문직에 종사하는 여성을 일컫는 이 말은 능력은 있으나 결혼한 시기를 놓친 여성을 일컫는 대표적인 단어였다. 금이 반짝인다는 의미에서 환금성에서 그 가치를 갖고 있다면 당연히 ‘골드미스’도 그만큼의 가치를 존중받아야 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사실 딸을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는 똑똑하고 능력 있는 자식이 어렵게 구한 직장을 결혼과 육아 때문에 놓는다면 몹시 서운하고 안타깝다. 표제작으로 되어 있는 ‘19호실에 가다’는 그 첫 문장에서 이 소설에서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함축적으로 담고 있다.


이것은 지성의 실패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롤링스 부부의 결혼생활은 지성에 발목을 붙잡혔다.(p277)

19호실은 수전이 찾는 자기만의 공간이다. 버지니아 울프가 ‘자기만의 방’을 썼을 때가 지금으로부터 90년 전의 일이다. 남성과 여성이 다니는 길이 다르던 시절, 여성이 글을 써서 자기의 이름으로 출판하려면 너무 많은 어려움에 직면해야 한다. 자기의 방을 갖지 못한 여성이 자신의 생각을 올바로 표현하기란 정말 어려운 시기였다. 그럼에도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 작가의 입장에서 여성을 대변해서 이야기를 했지만 결국 그녀는 자살을 선택했다. 여성이 자기 목소리를 갖는다는 것은 이토록 어려운 일일까. 그건 도리스 레싱이 1960년대에 발표한 ‘19호실에 가다’에서의 상황과 별로 다르지 않다. 물론 버지니아 울프가 활동하던 시대보다는 조금 더 진보하고 수전은 일하는 여성이었지만 결혼과 임신을 통해 잃어버린 자신의 목소리와 방의 가치는 그녀가 결혼생활을 유지하면 할수록 아내와 엄마로 살수록 더욱 강력하게 필요성을 가슴 밑바닥에서 소리치지만 실제로 가질 수 없는 공간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허름한 호텔에 겨우 얻게 된 자기만의 공간에서 결국 수전은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성의 자유 역시 남성에게는 환타지를 선사하는 계기가 되었는지 모르지만 여성에게 그것이 결국 족쇄가 된다. 현재 한국에서 없어진 간통죄가 여성에게 더욱 가혹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그것은 다행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성이 성의 자유가 여성을 자유롭게 하는 것과는 다른 의미다) 수전이 찾은 19호실에서 그녀는 숨쉬기와 앉아있기만 한다. 언뜻 얼마나 쓸모없이 시간을 낭비하고 돈을 낭비하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것은 ‘공간’이 갖는 의미를 우리가 간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간’이란 흔히 사람들은 ‘빈’ 곳을 의미한다. 하지만 공간 안에는 우리가 감지하지 못한 많은 물질들이 있다. 우리가 지각하지 못하는 물질들이 사실은 우리와 공간을 공유하며 느끼지 못할 정도로 조화롭게 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그 공간을 함께 쓰면서 부딪치고 침범하고 빼앗는다. 공간이 길이, 넓이, 높이를 가지고 있으며 감정과 생각을 조절할 수 있는 사물과 사물 혹은 인간과 사물, 인간과 인간이 조화롭게 꾸며질 때 공간은 그 가치와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자기만이 희생하고 자기 것이 빼앗긴다고 생각하는 존재가 있다면 그 공간은 이미 균형과 조화, 아름다움이 깨어진 상태이다. 그래서 수전은 자기만의 공간을 찾았을 것이다. 겉으로 드러난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의 몸도 다양한 물질로 이루어진 공간이라면 작은 공간에서 더 큰 공간으로 그리고 더 큰 공간으로 그것이 조화롭게 어우러져야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어쩌면 이 말은 너무 거창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그저 편하게 숨 쉬고 싶은 ‘공간’으로서 수전은 자기만의 공간을 찾았다고 한다면 적당할까. 그 전에서 버지니아 울프가 말한 ‘자기만의 방’은 사십 여년이 지난 도리스 래싱이 활동하던 시대에도 여전히 부재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떤가. 겉으로 보기에 지금은 자기의 공간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지만 정말 그럴까? 공간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공간’이 주어질 때 그 ‘공간’은 가치가 있을 것이다. 버지니아 울프와 도리스 래싱이 작품을 활동하던 시대에도 ‘공간’을 필요로 하지 않은 여성들은 존재했다. 문제는 ‘나’라는 의식을 갖고 삶을 대하는 여성에게 여전히 공간이 있는가 한다면 그 점에서 우린 생각이 많아진다. ‘19호실로 가다’는 그래서 여전히 독자를 몰입하게 하고 생각할 것들을 던져준다.


이 책에는 모두 11편의 작품이 있다. ‘최종 후보에서 하나 빼기’는 그레이엄이란 비평가가 성공한 무대 디자이너 바바라를 어떻게든 침실로 끌어들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이다. 남성이 여성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성공하고 자의식 강한 여성이 그런 남자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씁쓸한 느낌으로 소설을 읽게 된다. ‘한 남자와 두 여자’, ‘남자와 남자 사이’도 불륜을 다룬 내용이다. ‘한 남자와 두 여자’는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는 나이 차이가 나는 두 부부가 서로의 예술적 취향이나 이상이 비슷해 늘 어울리다가 임신 중 바람을 피운 남편에게 전혀 분노의 감정이 생기지 않는 자신이 이상하다고 말하는 도로시는 실은 혼란스럽다. 또 각각의 애인과 남편이 다른 여성과 바람을 피우고 이혼하고 헤어지는 일을 겪는 ‘남자와 남자 사이’ 역시 여성들의 이런 혼란스럽고 힘든 감정 상태가 잘 드러나 있다. 자유연애가 여성에게 해방의 의미보다는 감정적으로 더 격렬하고 주체할 수 없는 혼란을 주는 것이다. 물론 불륜을 저지르는 당사자가 여성인 경우는 반대지 않느냐는 반론을 제기 할 수 있다. 하지만 남녀의 관계가 수평적이고 평등하다면 애초에 이 문제는 논란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관계를 시작하고 끝나는 문제에서 관계를 유지할 때 적정한 선을 유지하는 모든 것이 결국의 권력의 문제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이 고삐를 쥔 게 아닌 관계, 남녀 관계가 그저 편안하게 보는 로맨스 소설이나 영화일 수 없는 건 그 안에서 권력이 형성하기 때문이다. 누가 더 많이 사랑하느냐의 문제에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사랑이 삶을 풍성하게 만드는 동력임에도 그 안에서 권력 문제를 논해야 한다는 것이. 한병철은 ‘권력이란 무엇인가’에서 권력을 얻었을 때 생기는 쾌락의 감정은 자유의 감정이라고 말했다. 여성에게 사랑이란 쉽게 시작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쉽게 끝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여성에게 남성보다 사랑이란 것에 더 복잡한 감정을 갖게 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건 이 사회와 문화, 관습 모든 것이 여성에게 불리하게 작용한 씨스템 때문인 것도 분명하다. 여성과 남성의 유전자적 특이성을 비교해볼 필요까지 없이 감정과 정서를 표현하는 방식에서 조금씩 다른 점이 있을지는 몰라도 그 안에 있는 내용들이 다를 것은 없다. 여성과 남성이 다르다는 전제하에 전개된 많은 편견들은 여성들을 보이지 않는 창살에 가두고 그렇게 하도록 유도한 것이 적지 않다. 육체적인 차이점이 정신적인 차이를 가져오지는 않는다. 사유의 틀에서 남성과 여성이 다른 것은 시몬느 드 보봐르 부인의 저서 ‘제2의 성’에서처럼 학습되고 뇌에 기록되어 온 것이 적지 않다. 교육의 기회가 많고 나와 남이 다르다는 전제하에 사유가 팽만한 지금의 시대에 더 이상 여성이 피해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세상은 변하고 인간이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유일한 사유의 동물이라면 스스로 고립되어서는 더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녀는 혼자였다. 그녀는 혼자였다. 그녀는 혼자였다. 자신을 짓누르던 압박이 사라지는 것이 느껴졌다.p304


혼자서 19호실의 방에서 압박을 벗어나는 해방감을 느꼈지만 결국 그녀는 거기서 죽음을 맞이한다. 혹자는 진정한 자유를 얻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진정한 자유일까. 죽음으로써만 여성은 자유를 얻을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이제 충분히 논란을 거쳐야 한다. 왜 인간은 같이 사는 법을 생각하지 않는 걸까. 이 책 속에 있는 11편의 작품들은 여성과 남성의 문제뿐만이 아니라 기존의 관습 안에서 겪는 불안감과 계급과 계급, 현재와 미래가 부딪치며 오는 불안을 서술하고 있다. 전쟁 이후에 폐허에서 일어난 많은 국가들이 겪는 어려움과 가치관의 변화에서 오는 혼란,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인간들의 모습은 결국 지금의 우리와 다르지 않다. 세대는 변화고 산업화의 형태도 변하고 인간의 가치는 앞으로 도래할 신인류와 기계들 사이에서 더욱 혼란스럽고 불안하고 고민하는 단계에 있다. 함께 살아가는 법을 고민하지 않는다면 19호실에서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수전과 같은 권리조차 우린 상실할지도 모른다. 여전히 변하려 하지 않는 인간은 시대가 바뀌어도 불안할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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