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우체통

'아Q 정전'을 읽고

by 이성주

독서일기 19




‘토리노의 말’이라는 니체와 관련된 영화가 있다. 건강이 급격하게 악화된 니체는 요양지를 돌며 저술활동을 했다. 그러다 토리노의 한 마을에서 말이 마부의 무자비한 채찍질을 당하는 광경을 목격한다. 말은 채찍질에도 꿈쩍도 하지 않는다. 잔인하게 채찍을 맞는 말을 보고 니체는 마부를 말리고 말의 목을 끌어안고 엉엉 운다. 후에 십 년 동안 니체는 정신이상 상태로 광기에 사로잡혀 일생을 마친다. 영화는 그 때 니체를 미치게 했던 말은 어떻게 되었을까,를 따라가며 시작한다. 마부는 딸과 함께 하루종일 모래바람이 불고 사람 살 수 없을 곳 같은 척박한 곳에서 살고 있다. 매일 똑 같은 일이 반복되고 창 밖으로 거칠게 부는 바람과 인가가 드문 곳에 지나가는 짚시 떼이나 이따금 찾아오는 사람만이 있는 한적한 공간에서 변함없는 삶이, 가난한 부녀의 일상이 보여진다. 희망도 기쁨도 없이 반복되다 소멸하는 그들의 삶을 통해 니체가 말한 ‘신은 어디에도 없다’, 혹은 ‘신은 죽었다’는 그의 사상을 흡사 다큐멘터리처럼 보여준다. 영화에는 대사가 없다. 다만 술을 구하러 온 이웃 남자의 긴 대사가 그나마 대사다운 대사다. 그는 말한다.


“파멸을 향해 가고 있네.

모든 것은 파멸하고 타락하게 마련이니까.

그들이 모두 파멸케하고 타락하게 한 거야.

무슨 큰 재앙이 벌어져서가 아니라

인간의 순수한 본성에서 비롯된 걸세.

바꿔 말하면 인간이 자초한 심판이야.

인간이 인간 자신에게 내린 심판이지.”


그의 대사 속에는 어떤 신도 없다는 것, 선악이란 없다는 것, 그들 역시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요즘의 내가 느끼는 감정이랄까. 어쩌면 이것은 한 세기를 마감할 때 대부분의 무기력한 국민들이 느끼는 비슷한 감정이 아닐지.


아Q는 정확한 이름도 어디 출신인지도 분명치 않은 사람이다. 집도 없이 마을 밖 사당에서 잠을 자고 남의 집에서 허드렛일 하며 번 돈은 술로 허비한다. 외모도 볼품 없고 배움도 없고 가진 것도 없으면서 허세가 있고 쓸데 없는 자존심으로 큰소리를 친다. 사람들은 그를 하대하고 무시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는다. 그는 뚜렷한 신념도 없으면서 사람들에게 큰 소리를 친다. 대단한 계획이 있는 것 같지만 호기롭게 큰 소리 치다가 금세 목적도 방법도 상실하고 스스로 만족할꺼리를 찾는다. 그러면서도 자신보다 더 약한 사람들에게는 비열하게 군다. 여승을 희롱하거나 자기보다 약한 자들에게 큰 소리치고 무시한다. 1911년 중국에 분 신해혁명은 사람들의 삶도 바꿔 놓을 거 같은 기대를 주었다. 왕조가 무너지고 공화국이 설립된다. 혁명당이 들어서며 세상이 바뀔 것 같았지만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사람들 틈에서 아Q도 혁명군에 가담하여 사람들 틈에서 다시 큰소리치며 특권을 누리려고 한다. 그것이 아Q의 생존 방식이었기 대문이다. 하지만 그는 여느 때와 다름 없이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 현명하거나 변화에 기민하게 움직이며 자신의 이익을 찾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부화뇌동하고 비판 없이 수용하며 그날그날을 살아왔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혁명당에 들어가기 위해 첸가의 집에 간 날 마을의 지주인 자오 영감의 집을 괴한들이 습격한다. 자오영감에게 매를 두들겨 맞고 쫓겨났던 적이 있던 아Q나 마을 사람들은 속으로 은근히 기뻐한다. 하지만 누군가 자오 영감의 집을 습격한 괴한이 아Q라고 밀고하였는지 그는 잡혀간다. 제대로 붓을 잡아본 적도 없는 그에게 서명을 하라고 하지만 그는 글을 알지 못한다. 그러자 자신의 죄를 시인하는 의미로 동그라미를 치라고 하는데도 그는 그것이 의미하는 것을 알지 못한다. 스스로 죄목을 인정하는 행위, 아Q는 동그라미를 제대로 그리지 못하고 비뚤어진 모양으로 그린 것만 생각한다. 그럼에도 총살당하기 전까지 자신이 동그라미를 친 것에 만족한다. 소위 ‘정신승리법’이라는 이름으로 자기를 합리화시키는 것이다. 아Q는 세상의 중심이라고 믿었던 ‘중화사상’에 빠져 국운이 기울고 왕족과 지주들의 부정부패의 고리 속에서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여전히 자족하며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중국인들을 상징하고 있다.


“그는 오른손을 들고 힘을 실어 자신의 얼굴을 연달아 손바닥으로 두 번 때렸다. 때린 사람은 자신이고, 맞은 쪽은 또 하나의 자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뒤에는 또 왠지 자기가 다른 사람을 때린 것 같아 ······ 만족스러운 기분으로 자랑스럽게 벌렁 뒤로 누웠다.”


아Q의 ‘정신승리법’은 고통 속에 있는 사람에게 그 고통을 극복하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실제적 고통이 잠깐의 자기 기만으로 벗어날 수 없는 것처럼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적극적으로 고통에 대처하고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는 시선이 중요하다. 그럼에도 많은 중국인들은 중국의 세상의 중심이라는 사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여전히 자존심을 지키며 변화하는 세계 정세에 둔감하게 반응하며 대처하는 모습에 작가 루쉰은 냉철하게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작품을 읽으면서 이는 100년 전의 중국의 모습이 아니라 현재 대한민국의 자화상 같은 느낌이다. 몇 년 전 젊은이들에게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제목의 책이 인기를 끈 적이 있었다. 젊은이들이 겪는 여러가지 문제점들을 단순화시킨 제목에서 많은 수의 젊은이들이 위안을 얻기도 했지만 냉소적인 반응을 보인 젊은이들도 많았다. “아프면 환자다”와 같은 반응은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기성세대가 얼마나 섣부르게 젊은이들의 고민과 고통을 대하고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 현재의 대한민국의 정치적 상황이나 경제적 위기를 바라보는 시선도 마찬가지다. 여기저기서 위기와 통증이 느껴지는데 여전히 우리가 갖고 있는 위기 능력에 과신을 한다. 하지만 우린 세월호나 메르스 사태에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했고 국민의 생명이 얼마나 헐값에 통치자의 손에 의해 경시될 수 있는지 경험을 했다. 또한 역사를 통해 한 나라의 흥망성쇠가 얼마나 쉽게 벌어지는지 경험했다. 역사는 살아남은 자들의 기록이다.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를 읽기 전에 그 역사서를 쓴 역사가에 대해서 알아볼 것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역사란 역사가의 시선이 어떤 식으로든 개입되고 그의 편향된 사고는 책에 고스란히 드러나기 때문에 독자들에게 역사가를 검증하는 것은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하지만 결국 역사가 살아남은 자들, 힘 있는 자들의 손에 쓰여지는 경우가 많고 그것을 강압적으로 교육시키는 경우도 왕왕 우리 역사를 통해 경험해 봤으니, 지금 겪는 우리의 정치 현실과 국민들의 정치적 행위가 어떻게 기술될지 알 수 없다. 바람이 있다면 객관적 시선을 가진 역사가의 손에 쓰여진 책들이 많이 출간되고 그들의 시선을 통해 현재가 제대로 이해되기를 바랄 뿐이다. 어쨌든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이라는 사회는 아Q가 살았던 시대만큼이나 혼란스럽고 민생이 어려울 때다. 한 사회의 리더에게 보편적 윤리를 요구하는 것이 사치일만큼 기본적인 인성조차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으면서 사회를 망가뜨리는 것을 우리 눈으로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기도 하다. 역사의 순환 고리가 여전히 같은 지점을 반복적으로 돌고 있는 느낌이랄까.

‘그러나 세상만사는 한 걸음 물러서서 생각해야 한다.

역사는 현재 내가 서 있는 지점에서 바라보는 것에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 각자의 시점이 다른 것에서 전혀 다른 해석에 따른 행위가 수반되기 때문이다. 훌륭한 작가는 그러한 혼란스런 시기에 제대로 된 시점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하고 이 작품을 통해 루쉰도 중국이 나갈 방향이나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고 대처해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런 점에서 루쉰이라는 작가가 중국인들에게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 알 것 같다. 일부에서는 계몽소설로 이 작품의 가치를 평가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문학작품이 작품으로서의 완성도를 성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독자로 하여금 자신이 사는 시대가 어떤지를 제대로 인식할 수 있도록, 사유할 주제들을 던져주는 것도 작가에게는 중요한 덕목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랜만에 다시 읽는 책이 지금 내가 서 있는 현재의 시대와 오버랩된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백 년 전의 상황에서 조금도 앞으로 나가지 않은 것 같은 딜레마에 빠져 있으면서 나는 오늘도 스스로에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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