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을 읽고
독서일기 20
그 모든 것이 꼭 못된 농담 같기만 했다./ p421
줄리안 반즈의 소설 <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가 얼마 전에 영화로 개봉되었다. 소설의 여운이 오래 남았던 터라 영화로 만든 스토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보고 싶었고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주인공 토니는 피 끓는 청년기에 사랑했던 베로니카 어머니의 일부 유산을 상속받았다는 소식을 듣는다. 젊은 시절 탁월한 재능과 지적인 인물이었던 에이드리안을 흠모했던 토니는 그가 자살한 사건의 원인을 몰랐다. 베로니카 어머니의 유품이 에이드리안의 일기장이라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고 베로니카와 연락을 취하면서 토니는 잊고 지냈던 지난 날의 추억을 끄집어낸다. 당시 원래 자신의 연인이었던 베로니카가 에이드리안과 연애에 빠졌다는 소식으로 충격을 받고 분노에 차서 보낸 편지 한 통이 가져온 파국의 결말에 대해 평생 알지 못했던 토니가 접하게 된 사건의 전말은 비극적이기도 하지만 한 편으로는 희극적이기도 하다. 기억은 얼마나 쉽게 왜곡되고 신뢰할 수 없는 것인지,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희극적 순간이 우리 삶의 단면이란 걸 독자 역시 소설이 끝나갈 무렵 깨닫게 된다. 밀란 쿤테라의 소설 <농담>을 읽어가면서 느낀 나의 감정은 반즈의 소설을 읽었을 때와 다르지 않았다. 소설 속의 진술 ‘그 모든 것이 꼭 못된 농담 같기만 했다’는 말처럼 어쩜 우리 삶은 진한 농담으로 가득 찬 희극이 아닐까 싶었다.
믿을 수 있겠는가. 아무렇지 않게 엽서에 적어 보낸 세 문장이 한 사람의 인생을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면. 혁명처럼, 마술처럼, 재앙처럼. 단지 농담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는 자신의 세계에서 추방당하고,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로부터 적이 되었다. 그리고 친구와 가족을 잃었다. 이것을 설명할 수 있겠는가, 인생이여.
위의 문장처럼 주인공 루드비크의 삶은 엽서 한 장으로 해서 자신이 믿어 의심치 않았던 이념의 시대, 세계로부터 던져진다. 군인으로 탄광에서 보낸 시간들, 그리고 루치에와의 이룰 수 없는 사랑, 이 모든 것이 친구였고 동지였던 제마네크 때문이라고 믿으며 세상을 불신하고 여인들을 농락하고 결국 제마네크의 아내 헬레나를 유린하면서 그에게 제대로 복수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가 얻지 못했던 루치에의 사랑은 사실 그녀의 과거를, 그녀의 진심을 알지 못했던 자신의 불찰이었으며 그토록 오랜 세월 복수심에 불타오르게 했던 제마네크는 세월이 흘러 더 이상 예전의 모습이 아니었고 젊고 아름다운 애인과 탄탄한 직장, 의식있는 사고를 가진 사람으로 변해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제야 인생이 얼마나 공허한 외침 같은 것인지를 루드비크는 깨닫게 된다. 어쩜 우리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소설 속에서 만나는 상황이 어쩌면 우리의 삶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우리가 무심코 던진 한 마디 말들이 가져올 결과들에 대해 우린 얼마나 깊게 생각하는가. 우리가 분노하고 고뇌하며 보낸 시간들로 해서 스스로의 삶이 얼마나 피폐해지고 퇴락하는지를 소설을 읽으며 내 삶의 어떤 부분은 어쩌면 루드비크처럼 무가치한 것들, 비물질적인 것들의 형상화에 집착했던 결과물이 아니었는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사람들은 대부분 두가지 헛된 믿음에 빠져 있다. 기억(사랑, 사물, 행위, 민족 등에 대한 기억)의 영속성에 대한 믿음과 (행위, 실수, 죄, 잘못등을) 고쳐볼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다. p493
내 인생 전체가 늘 그림자들로 가득했다. 그리고 현재라는 것은 어디 자리할 곳도 거의 없을 정도다. p490
우리는 모두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낼 거라고 생각했어요. 사람들은 장구한 전통 속에서 다시 부활할 거라구요.……하지만 샘물은, 그것은 조직되는 것이 아니에요. 샘이란 솟아나오든지 아니면 없든지 그러는 것이죠.p449
그녀 세대의 동년배들에게 나와 우리 세대는 전혀 구분되지 않는 하나의 무리일 뿐이며, 알아들을 수 없는 은어, 과도하게 정치화된 사상과 고뇌, 아득히 흘러간 암흑 시대의 이상한 경험들이 그들이 아는 우리의 일반적 특징이었다. p465
책을 읽으며 밑줄 긋는 부분이 늘어났다. 작가의 삶 전체를 지배했던 이념의 대립이나 그 안에서 충돌한 인간과 이념의 갈등, 삶의 복잡한 질문들에 대한 통찰력 있는 사유들이 내게 많은 영감을 주기도 하고 감동을 주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의 소설을 통해서 많은 인물들은 생각하게 되었다. 현현하는 인물들, 실재하는 인물들을 마주 보게 되었다. 드라마를 통해서 소설을 통해서 영화를 통해서 만나는 인물들의 고통과 고뇌들이 그간 내게 얼마나 추상적이었는지 불현듯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현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직면하는 고통과 고민들만이 생생히 살아있고 나보다 더한 고통에 처한 사람들에 대한 것들을 막연하고 추상적으로만 인식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은 소설의 화자가 바뀌며 한 편의 이야기를 퍼즐 형식으로 삶의 진실을 들춰낼 때마다 내게 절실하게 다가왔다. 일인칭 소설 형식으로 내 삶을 들여다봤다면 실은 내 삶의 많은 퍼즐 조각들이 나 혼자 꿰어 맞출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가까이는 가족, 친구들에서 멀리 이 시대에 함께 사는 사람들과도 함께 맞춰야 했다. 그들이 내 삶의 많은 퍼즐 조각들이고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야만 나는 온전하게 내 삶을 완성하고 오해 없이 내가 원하는 평화와 안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는다면 나는 주인공 루드비크처럼 루치에처럼 헬레나처럼 야로슬라프처럼 살 것이다. 한 편의 소설에서 나의 진짜 삶을 들여다보게 된 것이다. 좋은 책이 갖고 있는 장점이랄까. 삶의 비밀을 들여다보는 것은 즐겁기보다는 고통스러울 때가 더 많다. 해답이 있는 것 같지만 해답은 없다. 우리가 만나는 상황은 늘 처음으로 맞닥뜨리는 것이고 현명함이란 이론처럼 쉽지 않다. 소설이 갖고 있는 가장 큰 장점은 우리 삶의 비밀을 들여다보고 체득하여 나의 삶을 반추할 수 있다는 점인 것 같다. 나도 지금 루드비크처럼 지금 이야기할 것을 속으로 끙끙 앓으며 삶을 소비하고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그 퍼즐을 나 혼자 맞출 수 없는 노릇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