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있는 나날'을 읽고
독서일기 21
여러분이나 나 같은 사람들은 진실되고 가치 있는 일에 작으나마 기여하고자 ‘노력하는’ 것으로 충분할 거 같다. 그리고 누군가 그 야망을 촉구하는데 인생의 많은 부분을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다면 결과가 어떻든 그 자체만으로도 긍지와 만족을 느낄만하다. 생각해 보면 탐닉한다고 해서 크게 어리석은 것도 아니다. 농담을 주고받는 것이 인간의 따뜻함을 느끼는 열쇠가 될 수 있다면 더더욱 그렇다. p302
우리 사회 지도층의 갑질로 연일 뉴스가 도배될 때쯤 이 책을 잡게 되었다. 영화에서 안소니 홉킨스가 연기한 ‘스티븐스’는 켄트 양을 연기한 엠마 톰슨과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양들의 침묵에서 보여준 잔인하고도 차가운 인상의 안소니 홉킨스는 스티븐스라는 역할을 잘 했지만 내가 생각한 집사의 전형은 좀 더 마르고 주인보다 더 절도 있고 품위 있는 모습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 소설에서 ‘품위’라는 단어는 꽤 중요하다. 집사라는 직업으로서 품위를 지키는 것과 인간의 삶에서 품위를 지키는 것이 유리된 것처럼 스티븐스의 진술은 철저하게 직업윤리관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 사람에게 직업이 주는 영향력이 이토록 큰 것일까 싶을 정도였다. 그건 어쩌면 영국이란 나라의 상황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귀족을 가까이서 모실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들에게 격을 맞추기 위해 언행에 조심을 하는 것이 몸에 밴 습관 때문이리라. 남편이 사장이면 부인도 사장이란 말은 자신의 처한 환경을 타인을 통해 투사하고 자신이 그 사람인양 동일시하여 하는 행동을 비꼬는 말이다. 많은 집사들의 오만한 행동이 어쩌면 이와 비슷한 행위인지 모르겠다. 스티븐스는 그걸 경계하고 철저하게 자신의 행동에 절제를 했지만 그 역시 인간인지라 허점을 드러내고 만다.
품위란 자신이 몸담은 전문가적 실존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집사의 능력과 결정적인 관계가 있다. p57
스티븐스라는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보여주는 적확한 표현인 것 같다. 그는 집사로서의 나무랄 데 없는 생활을 했다. 그리고 35년의 세월이 지나 자신이 모셨던 ‘나리’가 아닌 자본주의 첨단 미국인의 일괄 거래 품이 되고서야 자신이 잃은 것들을 하나씩 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된다. 그가 잃었던 것은 가족과 사랑과 웃음이었다. 살면서 우리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그는 전문가적 실존을 포기하지 않음으로써 모두가 잃고 마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놓여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어디 비단 스티븐스 뿐이랴. 대부분의 사람들이 출세와 돈을 위해서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함부로 여기고 버리고 있다. ‘남아있는 나날’이란 작품이 주는 묘미는 바로 거기에 있는 것 같다. 영국 귀족사회의 한 집사를 통해서 우리가 평생을 바쳐온 것들이 과연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가를 물어보는 것이 아닐까. 작은 저택의 집사였던 한 노인네가 스티븐스에게 스치듯 이야기하는 ‘그러니까 당신은 그 집과 함께 남았군요. 일괄 거래에 낀 한 품목으로서.’p298에서 스티븐스 스스로 자신이 어떤 존재로 살아왔는지 처참하게 깨닫게 하는 순간을 맞이하게 한다. 그런데 실제로 우리에겐 선택권이 없다. 스티븐스가 지적한 나리에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더 나아가기 위해서 무언가를 시도했던 많은 사람들이 결국 집사로서 성공하지 못하고 그 일을 중도에서 멈추고 말았으니. 스티븐스에겐 집사로서의 명예와 품위가 가장 최우선이었으니 그런 사람들의 인생은 실패한 인생이란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을 것이다.
트로이전쟁의 원인은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를 사랑해서 그녀를 트로이로 데려오면서 발발이 된 것이었다. 파리스가 사랑에 빠지게 된 헬레네와 관련된 이야기로 헤라, 아프로디테, 아테네가 서로 아름다움을 겨루며 파리스를 유혹하자 파리스가 아프로디테를 선택하며 사랑을 최우선으로 했던 이야기는 시사하는 것이 크다. 김헌 교수는 이 이야기를 노숙자 쉼터에서 강의하는데 한 노숙자가 크게 동의하며 파리스가 굉장히 현명한 사람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무슨 말이냐 했더니 노숙자는 자신이 돈도 많으니 권력이 따라와 주고 정말 잘 나가는 사람이었다 하더라는 것이다. 그런데 돈이 가고 권력도 가니 처음엔 여자들이 떠나고 친구가 떠나고 가장 늦게 떠난 게 가족이라면서 아내와 아이를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은 자신을 후회하더라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프로그램에 나온 패널들 모두가 소름끼친다고 한 마디씩 거들었는데 도식적인 이야기 같지만 결국 인간이 최우선으로 필요로 하는 것은 사랑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집사로서 사명감을 가진 스티븐스에게 위로는 자신이 모시는 ‘나리’가 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작게나마 기여하고 싶다는 소망을 가슴에 품고 있었으며, 직업인으로서 그 소망을 실현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문명을 떠맡고 있는 우리 시대의 위대한 신사를 섬기는 것이라고 보았다.p148
영화 <모던 타임즈>에서 채플린은 컴베이어 밸트에서 나사 조이는 일을 한다. 영화에서 인상적인 것은 기계의 부품이 되어버린 채플린의 영상이었다. 우리는 거대 담론 속에서 개인이 스러져가는 과정을 지나쳐 왔다.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 그리고 개인의 행복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국가가 더 중요한 것처럼 배워오고 그렇게 살았다. 그리고 현재에 이르러서 개인의 행복이 없다면 그건 모두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전체에서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과오가 얼마나 큰지 과거의 역사를 통해서 우리는 충분히 경험했다.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평범한 가장이 어떻게 잔혹한 살육자가 되어갔는지를 진술하고 있다. 우리는 전체의 가치를 자신의 가치로 착각하며 살아온 세대와 그 다음 세대다. 이제는 그 세대들이 죽고 개인의 가치를 우위에 두고 사는 세대와 함께 하고 있다.
그리고 그분에게는 생을 마감하면서 당신께서 실수했다고 말씀하실 수 있는 특권이라도 있었지요. 나리는 용기 있는 분이셨어요. 인생에서 어떤 길을 택하셨고 그것이 잘못된 길로 판명되긴 했지만 최소한 그 길을 택하셨노라는 말씀은 하실 수 있습니다. 나로 말하자면 그런 말조차 할 수가 없어요. 알겠습니까? 나는 ‘믿었어요.’ 나리의 지혜를. 긴 세월 그 분을 모셔오면서 내가 뭔가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믿었지요. 나는 실수를 저질렀다는 말조차 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 정녕 무슨 품위가 있단 말인가하고 나는 자문하지 않을 수 없어요.p299
하지만 스티븐스는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잘못을 수정하는 것은 때가 없고 자격이 없고 지위고하가 없다. 그가 그 먼 길을 차를 몰아 켄트양을 찾아간 것은 그녀의 결혼을 잘못되었다고 생각한 순간 바로 잡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그리고 솔직한 자기 감정을 드러내고 싶었을 것이다. 그녀의 결혼생활이 그가 생각했던 것과 다르다는 사실로 그는 입을 다물었지만 어쩌면 그는 그런 순간에라도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냈어야 할지 모른다. 그럼에도 이 작품이 훌륭하다는 생각이 든 것은 그가 일관성 있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돌아섰다는 것이다. 앞서 말했지만 인간이란 원래 그런 존재이다. 안타깝고 슬프게도. 스티븐스와 칼라일 박사의 대화에서 칼라일 박사의 말은 인간이 갖고 있는 속성이란 것이 결국 인간을 슬픈 존재로 만든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주민들은 조용한 삶을 원합니다. 해리는 갖가지 변화들을 수없이 구상하고 있지만 사실 마을 주민 누구도 풍파가 이는 걸 바라지 않습니다. 설사 그렇게 해서 자기한테 이득이 온다고 해도 말입니다. 그저 조용히 소박한 삶을 이어가도록 내버려 두었으면 하는 게 주민들의 바람이죠. 이 문제 저 문제로 시달리고 싶지 않은 겁니다.p259
인생을 살아가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평생을 삶을 거슬리는 것처럼 살아가는 사람도 있고 순응해서 살아가는 사람도 있고 전쟁처럼 사는 사람도 있고 모험처럼 사는 사람도 있고. 결국 그걸 선택하는 것은 우리들의 몫이다. 남아있는 나날도 마찬가지다. 어떤 삶을 살아갈지는 결국 오늘의 선택에 달려있다. 작은 농담과 사랑과 오늘의 허기만을 채울 빵만 있다면 그걸로 족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더 많은 것을 원하고 더 안락한 것을 원하고. 그 끝은 어디일까. 후회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족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