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는 깃털처럼 가볍고 불확실성은 납처럼 무겁다."

by 이성주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떠나거나, 갑자기 하던 일을 멈추고 현재의 장소를 벗어나 바로 예약되는 교통수단으로 한번도 가보지 못한 곳을 가게 되는 것을 꿈꾼 적이 있다. 아마도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그레고리우스의 삶이 변곡을 맞이하게 된 건 그가 읽고 가르치는 라틴어만큼이나 따분했던 일상의 변화를 무의식적으로 갈망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계기를 만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아니, 정확하게 말해서 그런 변화의 시점을 깨닫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고 하는게 더 정확할까. 길이 있지만 그 길이 보이지 않는 게 우리 삶의 한계일 것이다.


아마데우 프라두의 여정을 찾아가며 그의 사유가 적힌 책을 통해 포르투갈 역사의 한 가운데에서 열정과 이성을 동시에 지닌 인물을 쫓고 그 안에서 한 지식인의 고민을 들여다보면 비슷한 역사를 가진 한국의 지식인들 중 누가 그런 인물에 해당할까, 생각해보게 된다. 책을 먼저 보지않고 영화를 먼저 본 기억 때문에 아름답고 조각처럼 생긴 아마데우 역의 잭 휴스턴의 모습에서 나는 이미 아마데우라는 사람의 이미지를 만들어버렸다. 아마데우 프라두는 너무나 아름답고 그레고리우스는 멋지게 늙은 이의 전형인 제레미 아이언스이니 책을 읽기 전에 난 이미 '리스본행 야간열차'에 탑승하고 말았다. 리스본은 너무 아름답고 조용했다. 나는 제레미 아이언스가 걸었던 길이 어딘지 그 길을 따르고 싶지만 그레고리우스처럼 혼자서 걸어야 하는 일이라는 걸 나중에서야 깨달았다. 그래, 이런 낯선 곳은 혼자 걸어야지 누군가와 걸으면 안되었다. 그건 프라하의 소로를 따라 카프카의 산책로에서도 마찬가지였지. 외롭게 나 자신과 마주해야 진짜를 만나는 것이다.


'자유가 없다면 모든게 무의미합니다.' 자유란 무엇일까. 어디로 가고, 무엇을 먹고, 누구와 만나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면 자유로운가. 누군가 내게 입고 있는 옷에 대해서 말한다. 어울리지 않는다고. 나는 그녀에게 지금 입고 있는 옷을 나는 선택했다고 대답한다. 그런 간섭이 견딜 수 없을 때가 있다. 내 모습이 최대한 아름답게 보이게 하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나는 수긍할 수 없다. 약속 시간에 늦게 오는 사람과 혼자 있는 시간을 견뎌내라고 하는 사람들을 신뢰하지 않는다. 그렇게 자신의 이기심으로 타인의 자유를 갉아먹는 사람들에게 환멸을 느끼곤 한다. 그렇지만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참고 또 참고 한다. 난 착한 사람이고 싶지 않은데 내 안의 무엇인가가 자꾸만 참으라고 하는 것 같다.


인식이라는 것은, 때로 거추장스러운 옷더미 같다. 단순히 안다는 것과 각인돼서 아는 것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지식을 떠들어대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목구멍에서 올라오는 아리아를 듣는 것 같다. 조금 있으면 금세 질리고 만다. 나는 뱃속에서 우러나오는 삶을 듣고 싶다. 그들의 눈에는 연민이 있다. 그들의 눈은 따듯하지만 슬퍼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 눈을 가진 사람을 만나고 싶다. 안타까운 건 그런 눈을 가진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사실이다. '리스본행 야간열차'로 돌아와서 프라두의 눈빛은 어땠을까. 그의 눈빛은 슬프고 연민에 가득찼을 거 같다.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래서 그를 더욱 사랑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많지 않다. 진짜 만나고 싶은 사람들은 가까이에 없다는 건 그래서 늘 슬프다. 하지만 스스로 위로한다. 가까이에는 없지만 어딘가에 있다. 전화해. 그럼 그들이 받을 것이다.


포르투갈에는 다시 또 갈 생각이다. 가을 무렵에 제레미 아이언스처럼 모직 재킷을 입고 셔츠의 깃을 올리고 골목길을 걸어다닐 것이다. 포르투갈 회화집을 샀다. 오래된 책이다. 책을 사놓고 책꽂이에 꽂아놓은 채 딱 한 번 책을 훑어봤다. 내일 갈 일은 없어서 책을 펼치지 않는 건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끝까지 그 책을 보지 않고 여행을 떠날지도 모르겠다. 영어가 가능하니까. '리스본행 야간열차'에서 그레고리우스는 프랑스어로 프라도의 동생인 아드리아나와 대화를 나누지 않았던가. 어쩌면 밀어놨던 불어를 다시 시작할지 모르겠다.


"자유는 깃털처럼 가볍고 불확실성은 납처럼 무겁다."

이제 우리는 내일을 알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과거는 벨벳처럼 부드럽지만 고통스럽고 현재는 아프지만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하고 미래는 불확실성으로 무겁지만 기대된다. 나는 리스본이라는 말보다 'Lisboa' 리스보아라는 말이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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