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일과 무관하다

책 읽는 우체통/ 브로덱의 보고서를 읽고

by 이성주

내 이름은 브로덱이고 그 일과 무관하다.

이 말만큼은 꼭 하고 싶다. 모두들 알아야 한다. p9


인간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가,라는 질문에 이 책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물론 직접적으로 그렇게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책을 읽어가면서 독자는 저절로 인간의 비논리적이고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인 행동과 선과 악이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 삶에 전혀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역사 속에 전쟁의 흔적들은 바로 그런 인간의 이해할 수 없는 면을 보여주는 궁극을 보여준다. 소설의 첫문장은 그래서 굉장히 강렬하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궁금하게 하며 이 소설의 끝에서 우리가 느낄 나는 그 일과 무관한지(소설 속의 상황 뿐 아니라 궁극의 상황에서 벌어지는 인간들의 이기적이고 비이성적이고 폭력적인 모습)에 대해 묻게 된다.


대체로 인간은 평화로운 순간에 삶의 조건에 대해서 생각하지 못하고 산다. 궁극의 순간, 전쟁이나 극심한 가난, 절체절명의 순간에 직면하고 나서야 인간답게 사는 것이 얼마나 사치스러운지 깨닫게 된다. 삶이라는 것이 생존과 동의어로 사용되는 순간 비루함을 견뎌내야 한다.


그는 나와 달리, 개가 되는 것을 용납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 아마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시는 개와 상종하는 않는 법이다. 시는 개를 무시한다.p45


브로덱이 마을 사람들의 투표에 의해 침략자, 점거인들에 의해 수용소에 끌려간 후 생존을 위해 선택한 삶은 삶이라고 할 수 없다. 우리가 삶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인간답게 사는 걸 전제하기 때문이다. 개의 삶이란 개의 입장에서 생각할 때 뿐이다. 그런데 브로덱을 힘들게 한 것은 그를 개로 살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닌 그와 함께 웃고 삶을 나누던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주변의 사람들을 사사롭게 미워하고 욕하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나를 팔아 자신의 안녕을 구하려 하는 존재로 인식하지 않는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나는 내가 여러 해 전부터 알던 그 모든 사람들이 방금 저지른 일에 대해서 생각해 봤다. 그들은 괴물이 아니라 농부이고 장인이며 소작농, 살림감독, 하급 공무원들이었다. 간단히 말해서 당신이나 나 같은 사람이었다.p23


나는 혹은 당신은 우리의 이성과 합리를 어디까지 신뢰하는가. 전쟁을 겪고 독재의 시대에 감시사회를 겪어왔던 우리에게 신뢰란 얼마나 믿을 수 없는 일이었던가. 이웃이 어느 날 총부리를 겨누었던 시대에 사람들의 유전자에 각인된 배신의 씨앗은 지금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이분법적 갈등, 진보과 보수, 가진 자와 무산자, 주류와 비주류로 나뉘어 여전히 뿌리 깊은 불신의 싸움을 이어오고 있다. 이런 사회에서 우린 무엇을 기대하는지 이 소설은 묻게 한다.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브로덱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은 그래서 아이러니하다.


나는 살아있다. 그들에게는 살아남을 이유가 단 하나도 없었을까? 그들에게는 가슴 속에나 전에 살던 마을에 남겨 두고 온 사람이 없었던 걸까. 그렇다. 아마도 그들에게는 살아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었던 것 같다.p29


어쨋든 브로덱은 살아왔다. 짐승의 시간을 견뎌내고 배신의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삶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 틈에서 그간의 고통과 수모의 시간을 애써 드러내지 않고 그들 속에서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아가려고 한다. 어느 날 '안더러(타인)'이 이 마을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브로덱은 또 다시 그들의 모습을 본다.


하지만 나에게는 늘 '안더러', 즉 '타인'이었다. 아마도 어디서 온 사람인지 알 수 없을 뿐더러 우리와 달랐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것만은 확실했다. 어떨 때는, 고백하건대, 그 사람이 나 같다고 느껴졌다.


타지에서 왔다는 점, 모습이 다르다는 점, 그래서 마을 사람들에게 선택되어져(?) 수용소로 끌려가야 했던 브로덱에겐 이방인이었던 '안더러'가 여러모로 자신과 비슷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도시에 나가 고등교육을 받을만큼 영특했던 브로덱과 여러 나라를 여행하고 온 듯한 그리고 이 마을의 비밀을 다 알고 있는 듯한 '안더러'는 또 다른 브로덱이고 유대인이고 이방인이고 소수의 차별받는 존재다. 그리고 그들의 결과는 비참하다. 브로덱은 수용소에 보내졌고 '안더러'는 마을 사람들에 의해 살해 되었다. 단지 다르다는 이유로.


사람들은 말한다. 그들 폭력의 정당성을. 그들의 잔인함을 포장한다.


좋은 양치기라면 짐승을 사랑하든 말든 그 모든 일을 할 수 있어야 하고 그렇게 해야 하지. 그럼 짐승은 양치기를 사랑할까? 어때? 그게 내가 자네한테 묻고 싶은 것이네.p359

양치기는 내일을 생각해야 하네 어제에 속한 것은 모두 죽은 거야. 중요한 것은 살아가는 것일세.p360

이제 잊어야 할 시간이네. 사람에게는 망각이 필요해.p361


과연 우리는 잊을 수 있는가. 선과 악의 역사, 인간의 역사는 과연 믿을 수 있는 것인가. 브로덱의보고서에서 브로덱은 말한다. 이 세상의 역사는 개인적 차원의 거짓말을 수백만 개 꿰어 만든 대강의 진실인가.p352, 이제 난 아무데도 없는 존재일지 모른다. 역사를 떠난 것 아닐까. 우화의 시간이 온다면 우화 속 여행자에 불과하지 않을까.p363


책을 덮으면서 너무나 무거웠다. 국가란 다정한 말로 꼬드기며 가끔 이런저런 요구를 해 오지만 한번도 그 눈이나 입술을 제대로 본 적 없는 여자와 비슷한 존재(p257)라고 하거나 그러나 그것은 거짓이다. 실은, 군중 그 자체가 괴물이다. 군중은 의식이 있는 수천 개의 서로 다른 몸뚱이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어마어마하게 큰 하나의 새로운 몸뚱아리로 다시 태어난다(p204)고 서술되어 있는 소설 속의 진술이 개인과 국가, 개인과 군중, 개인의 삶과 인간의 역사라는 대치되는 두 개의 관념 사이에서 인간다운 삶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작가는 브로덱의 보고서를 통해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아주 이상한 인물일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하는지도 모르겠다. 나약한 인간은 끊임없이 신을 부르고 기도하지만 여전히 고통받고 억압당하고 죽임을 당하고 있으니까. 물론 인간이 이렇듯 비이성적이고 비논리적인 행동을 보이는 이유엔 '두려움'이 있다.


두려움은 나중에 온다. 두려움의 시간은 창문이 닫히고 덧창의 빗장이 잠기고 마지막 장작이 재 속으로 흘러 들어가고 집 안 구석구석에 침묵이 군림할 때야 비로소 찾아온다.p68


두려움이 빚어낸 폭력의 역사, 그것은 인간이 만들었다. 인간이 스스로 만든 문명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이 아이러니의 역사는 끊임없이 반복된다.


삶의 단계라네. 옆에 있다는 사실마저 잊어버렸던 오어슈비어의 중얼거림에 난 깜짝 놀라 정신을 차렸다. "처음에 본 것은 순수의 시대, 그 다음은 어리석은 분노, 여기는 관조의 지혜라고 할 수 있겠지.p50


과연 관조의 지혜 시대가 오긴 한 걸까. 세기말적 증상을 보이는 요즘 어떤 이는 두려움으로 어떤 이는 자조적으로 어떤 이는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기다리는 기대로 현재를 맞이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인간이다. 여전히 살아가고 있다. 인간이라 불리우는 존재로. 세상의 어떤 존재보다 우월하다고 믿었던 존재로. 우리는 그래서 불리워진다. 자신만의 이름으로. 그러나 우린 진짜 우리 모습을 숨기고 있다.


이름이란 참으로 이상하다. 아는 바가 전혀 없는 말인데도 끊임없이 입에 올리게 된다. 잘 생각해 보면 사람과 비슷하다. 몇 년을 만나도 본색을 알 수 없던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도저히 상상도 하지 않았던 모습을 드러내는 일이 있지 않은가. p67


작가 필립 클로덱은 이 책을 통해서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그의 묵직한 질문과 그가 생각하는 철학적 질문과 사유에 해당되는 글들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그 많은 그들을 옮겨적는 것을 포기한다. 내 공책에 옮겨 적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누군가 이 글을 읽고 책을 읽어보길 권한다. 작가 필립 클로덱을 찾아보니 내가 좋아했던 영화 '차가운 장미'를 연출한 감독이란 점에서 이 책은 내게 또 다른 감흥을 남긴다.


다음 영화에서 이미지를 빌려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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