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어야만 살 수 있었던 기억들

지워버리고 싶었던 과거 #1

by Helena J

갑가지 달라진 주변환경에 존재감이 사라지다

최근 금쪽 상담소에서 가수 김완선 씨가 “고통스러운 기억들을 흘려보내고, 잊기 위해 노력했기에 버틸 수 있었다”고 이야기하는 장면을 보았다. 이에 오은영 박사님은 이를 ‘사고억제 방어기제’라고 설명하며, 겪고 싶지 않고 생각하고 싶지 않은 기억을 의도적으로 밀어내는 건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본능적인 행동이라고 말했다.


나 역시 오랫동안 내 과거를 되돌아볼 용기가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내 기억 속 과거는 외로움과 어리석음, 가족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런 기억들을 떠올리는 것 자체가 나에겐 감정적으로 너무 벅찼고, 그래서 의도적으로 외면하며 살아가는 법을 배웠던 것 같다.


하지만 아무리 잊으려 해도, 잠자리에 누우면 문득 떠오르는 장면들이 나를 괴롭혔다. 그 기억들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나는 스스로를 훈련시키듯 기억을 덮어버렸고,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일처럼 살아가는 것이 더 마음이 편했다.


어린 시절, 나는 햇살 가득한 옥상 같은 조용한 공간에서 혼자 앉아 있는 걸 좋아했다. 따뜻한 햇살이 온몸을 감싸면 몸도, 마음도 함께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 그런 순간만큼은 외로움도 사라지는 듯해서, 오랫동안 그 자리를 떠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의 군인 생활로 인해 여러 곳을 옮겨 다니다가, 강원도 춘천에서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초등학교 1학년, 2학년 시절은 기억 속에서도 비교적 따뜻하고 밝은 시절이었다. 반 친구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있었고, 엄마 말로는 반 남자아이들이 나와 짝꿍이 되고 싶어 했다고 했다.


한 번은 수업 중에 짝꿍과 계속 이야기를 나누다가 선생님께 주의를 받고, 결국 복도로 나가 벌을 섰던 일이 있었다. 수업이 끝난 후, 선생님은 나를 부르더니 따뜻하게 안아주며 “조용히 수업 듣자”고 말해주셨다. 그 장면은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그때의 나는 얌전하면서도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관심 받는 걸 좋아하던 아이였다.


하지만 갑자기 아버지가 군대를 그만두시고, 우리는 서울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그때부터 삶은 조금씩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서울에서의 첫 집은 다락방이 있는 단칸방이었다. 여동생 셋과 부모님까지, 여섯 식구가 좁은 공간에 옹기종기 모여 살아야 했다. 가족이 늘었고, 살림은 더 빠듯해졌다. 아버지는 슈퍼를 시작하셨고, 엄마도 하루 종일 슈퍼를 함께 꾸려나가느라 바쁘셨다. 그렇게 우리 집은 점점 더 생존을 위한 하루하루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엄마는 슈퍼를 지키고, 막내 남동생 둘을 돌보느라 지쳐 있었다. 내가 학교에서 돌아와 엄마 곁에 붙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려 하면, 엄마는 항상 귀찮다는 듯 밀쳐냈다. 들으려 하지 않았고, 오히려 내게는 질타와 비난의 말들만 돌아왔다. 사춘기가 시작되며 나는 점점 집에서 말문을 닫아버렸다.


학교에서도 상처받는 일이 있었다. 어느 날 쉬는 시간, 책상에 엎드려 쉬고 있던 나는 친구들의 웅성거림에 깼다. 그런데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내 머리카락에서 머릿니가 발견된 것이었다. 친구들은 우르르 몰려들었고, 나는 고개도 들지 못한 채 엉엉 울었다. 그때의 수치심과 외로움은 지금도 마음 깊은 곳에 남아 있다.


초등학교 3학년이던 나는, 관심을 받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애를 쓰기 시작했다. 슈퍼에는 과일이 많았기에, 검은 비닐봉지에 바나나나 귤을 담아 선생님께 가져가곤 했다. 어느 날 선생님이 “이제 그만 가져오렴” 하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제야 그게 선을 넘는 행동이었다는 걸 느꼈다. 물질을 이용해서라도 누군가 내게 관심을 주길 바랐던 것 같다.


더 어릴 적에는 슈퍼의 동전 바구니에서 몰래 동전을 가져와 오락실에 가기도 했다. 심지어 뒷마당에 있던 볶기 장사 아줌마의 리어카에 있던 동전통에서 돈을 훔친 적도 있었다. 그때의 나는 완전범죄를 저질렀다고 착각했다.


하지만 어느 날, 엄마가 뒷마당에서 그 아줌마에게 조용히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장면을 들었다. 엄마는 다 알고 계셨던 것이다. 그날 이후, 나는 다시는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다. 죄책감과 부끄러움, 그리고 엄마에 대한 미안함이 내 안에 깊이 새겨졌다.


초등학교 6학년이 되어서야 우리 집에는 욕실이 생겼고, 그전까지는 공중목욕탕에 가거나, 큰 고무대야에 물을 받아 집 안에서 씻어야 했다. 어린 나는 목욕도 혼자 해야 했기에, 제대로 씻지 못한 날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어느새 나는 집안에서도, 학교에서도 아무도 내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 아이가 되어 있었다. 사람들과의 관계는 점점 더 멀어졌고, 나는 존재감 없는 아이로 성장해갔다. 그렇게 자란 나는 청춘 시절 많은 실수들을 저질렀고, 지금 돌아보면 너무도 부끄럽고 어리석은 순간들뿐이다.


그 모든 기억이 나를 덮쳐올 때면, 기억상실증에 걸린 사람처럼 어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우고 또 지우며 살아야만 했다. 그렇게라도 해야, 나는 오늘을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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