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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ena J Feb 08. 2023

나도 엄마의 공주이고 싶었다

지워버리고 싶었던 과거 #2

나도 엄마의 공주이고 싶었다나도 엄마의 공주이고 싶었다

"공주야~"라고 한 중년의 여성이 20대로 보이는 딸을 부르는 다정한 목소리를 들었다. 


다 성장한 딸을 공주라 불러주고 함께 관광을 온 모녀를 보며, 순간 나도 내 엄마의 공주였었더라면 하는 마음이 몰려오며 살짝 서글픈 생각이 들었었다. 


이혼 후, 갈 곳이 없어 친정에 아이들을 데리고 들어와 살고 있었던 시절이라, 주말이 되면 내 원가족인 부모와 형제들과 한집에 있는 것이 숨이 막힐 것 같아서 당시 5살이었던 아이들을 데리고 관광버스로 당일 관광을 갔었던 날이 었었다.


이민 관련 온라인 카페에 올라오는 글들 중에는 성년이고 한 집안의 가장임에도 불구하고 유학하고 이민하고 정착하는데 부모님의 지원을 은근히 기대하고 있거나, 실제로 도움을 받아서 경제적으로 위기 상황을 모면하고 있다는 글들을 가끔 볼 수 있다. 때로는, 엄마가 보내주신 정성이 담긴 김치나 기타 물건들을 받아서 자랑하는 글들도 본 적이 있다. 


그런 글들을 보면, 싱글맘으로 혼자 아이 둘을 키우면서 경제적 가장 역할까지 해가며 억척스럽게 살아가고 있는 나로서는 부럽기도 하고, 나는 왜 이리도 복이 없을까 하고 신세한탄적인 부정적인 생각을 한 적도 있다. 


하지만, 생각을 다시 가만히 해보니, 내 엄마도 일본에 살고 있는 내 동생에게는 김치랑 동생이 좋아하는 반찬이랑 바리바리 해서 국제항공으로 보내주셨던, 다른 사람들의 글 속에서 볼 수 있었던 그런 엄마였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 엄마란 항상 마음속으로 그리운 존재였다. 내가 엄마라고 이름 부르는 분은 항상 전화를 걸면 통화를 할 수 있었고, 아이들이 아파서 어린이집에 보낼 수가 없었을 경우, 아이들이 괜찮아질 때까지 일주일씩이라도 집에서 봐달라고 떠다 넘길 수 있었던, 물리적으로는 가까운 거리에 있는 분이었지만다. 


하지만, 정신적으로는 항상 먼 거리에, 아주 먼 거리에 있는 남처럼 느껴졌었다. 


하루는 장을 보러 이마트에 함께 간 적이 있는데 동생들이 좋아하는 것들을 이것저것 말하시는 엄마를 보면서, 엄마는 내가 좋아하는 것은 알고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한 적이 있다. 


똑똑하고 야무진 동생과 언제나 난 비교 대상이었고, 엄마의 표현 속에 난 언제나 맹한 아이로 자리 잡고 있었다. 어려서부터 그렇게 비교를 당하면서 자란 것이 상당한 스트레스로 자리 잡았었기에, 내가 아이들 낳은 후 키우는 동안에는 서로 비교하지 않으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키워왔다.


원하지도 않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우리 집 내 방에 영창피아노가 생겼고, 동생과 함께 쓰는 방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의 아주 큰 책상을 고등학생이었던 시절 받은 적이 있다. 책상을 설치해 주시고 가셨던 아저씨께서 비싼 책상 아빠가 사주셨으니 공부 열심히 하라고 하신 말씀이 지금도 기억이 난다. 


좁은 집, 내 방안에 자리 잡고 있던 피아노와 아주 커라란 책상 두 개는 자리만 차지하고 있었고, 나나 동생이나 그렇게 값어치 있게 사용하지 못한 것이 지금 생각해 보니 죄송스럽긴 하다.


요즘 들어 사춘기로 엄마를 정신적으로 외롭게 만들고 있는 아이들 때문에 나의 청소년 시기나 내 부모님의 과거 부모로서의 역할에 대해서도 뒤돌아 보기도 하는데, 당시 아빠는 피아노와 고급 책상들을 딸들에게 사주시면서 경제적으로는 큰 부담이 되었겠지만 마음속 한 가슴에는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해주신 것이었구나 하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나 역시 그런 마음으로 아이들의 사교육비나 특별활동비 등등을 아이들 위한 마음으로 이것저것 계획하고 지출을 해 왔는데, 당연한 듯이 받아들이고 가끔은 나에 대한 원망 섞인 말과 함께 누가 해달라고 했내는 말을 들었을 때면, 나 스스로를 위한 지출 안 하고 오로지 자식만 바라보고 살아온 지난 18여 년의 세월들이 허망하게 느껴질 때가 있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 시절 나에게 필요했던 건 다정한 말, 관심 가져주는 말, 걱정해 주는 말, 가족이 함께 웃으며 먹는 저녁밥상이었다는 것을 알았기에 나 또한 내 아이들에게 물질적 결핍은 채워주려고 했으면서, 정작 아이들과 공감적 소통을 하는 정신적 결핍은 충족시켜 주지 못하였구나 하는 후회를 요즘 들어하고 있다.


아주 어렸던 시절에는 낮잠을 자고 일어났더니 집에 아무도 없이 혼자 남 계셔서 엉엉 운 기억도 어렴풋이 기억이 안다. 엄마의 말에 의하면 어릴 적 시골에 계신 할아버지 할머니댁에 보내놓았더니 이불을 뒤집어쓰고 가족사진을 보면서 엉엉 울었더라고 한 적도 있다. 


우리 집이 이사를 하던 날 난 겨우 초등학교 6학년이 막 되었을 때였고, 아빠와 함께 동생과 함께 버스를 타고 이사 갈 집을 딱 한번 다녀온 적이 있다. 얼마 후, 학교를 맞히고 돌아와 보니 텅텅 빈집에 가족은 모두 이사를 가고 없었고, 멍하니 서서 나를 데려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옆집 언니가 동전 500원을 주면서 나보고 이사 갈 집을 찾아오라고 하였다고 말을 전하였다. 


지금으로 말하면 금천구에서 영등포구로 이사를 한 것이었고, 버스를 한참 타고서도 내려서도 20분도 넘게 걸어야 했었다. 내가 스스로 집을 찾아갈 것이라 생각을 한 적이 없었지만, 정말 정신을 바짝 차라고 버스번호를 기억해 내고 내려야 할 정류장을 기억해 내고 그리고 정류장에서 집까지 걸어갔던 길을 기억해 내서 결국은 이사 간 새집을 스스로 찾아간 적이 있다. 


문들 열고 집안으로 들어선 날 보고 아빠는 "잘 찾아왔네"라는 단 한마디를 던지셨었고, 엄마는 집 정리하느라 분주하셨다. 내 기억으로는 그날 난 눈물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었고, 누구에게도 원망이 섞인 한마디도 하지 않았었다. 내 감정을 표현할 대상이 없었고, 한다고 해도 받아줄 사람이 없다는 것을 이미 많은 경험을 통해 알고 있어서였었을 것이다.


기억하고 싶지는 않지만, 아주 먼 기억 속에는 내 나이 중학생이던 시절 아빠의 담배 심부름을 하러 늦은 저녁 집을 나섰어야 했고, 집 근처 담배 파는 곳이 문을 닫아서 문 연 곳을 찾아서 몇 시간을 걸어 다니다 밤늦은 시간에 집에 돌아온 적도 있다. 


이렇듯이 난 어려서부터 큰딸이고 어린 동생들이 있다는 이유로 부모로부터 버림을 받듯이 자라온 듯한 느낌이 크다. 우리 집은 자식이 많아서 한 명 없어도 상관없다는 엄마의 차갑게 던져진 말이 가슴에 항상 멍이 되었었고 무서웠던 말이었었다. 


초등학생 때는 난 지금 남의 집에서 살고 있고, 그래서 내 친부모가 날 찾으러 올 것이라는 공상을 하며 지냈던 적도 있었다. 내 친부모는 다정하고 좋은 분이실 거라는 상상의 날개를 펼치며 날 찾아줄 그날이 오기만을 기다렸었다. 


실제로 미취학년의 나이에 동화 '아기돼지 삼 형제'를 읽은 후 집을 떠나겠다고 결심 후, 아기돼지들이 했던 것처럼 보자기에 빵과 우유를 싸았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있다. 결국 집은 못 나가고 안방 안의 벽장 안에서 울다가 잠들어서 부모님에 의해 보따리와 함께 발견되었던 기억이 아직도 어렴풋하다.


사춘기가 되면서는 방안에 혼자 외톨이로 있었고, 집에서는 잠을 참 많이 잤었다. 그래서인지 여자형제들 중에 내가 키가 제일 크다. 


집안에서 받는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해 항상 인상을 쓰고 살았었는지 엄마는 나보고 우거지 상을 하고 있다고 나무란 적도 있는데, 정말 우습게도 난 밖에 나가서는 인상 좋은 아이로 항상 불려졌었다. 좋은 일도 하나 없는데, 왜 그리 싱글벙글 웃으며 지냈는지, 성인이 되어서도 결혼 전까지 나에게 있어서 자부심은 좋은 인상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아이러니하다.


당시 돈을 내고 책을 빌려볼 수 있었던 책방이 한창 인기였던 시절이라, 만화책이나 소설 등을 빌려보면서 공상의 세계에서 살 수 있었던 것이 정신적으로 외로웠던 나를 버틸 수 있게 해 주었던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지금에서야 해본다. 


특히나, 빨강머리 앤처럼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지만 자신의 환경을 극복하고 멋진 사람으로 성장하는 종류의 이야기들을 예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읽는 것을 좋아한다. 


이렇게 자기 계발적인 이야기를 읽으면서 난 스스로를 초등학교 저학년 때 가지고 놀았던 장난감 '오뚝이'라 생각하고 넘어져도 스스로 벌떡 일어설 수 있는 그런 사람으로 살아올 수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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