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워버리고 싶었던 과거 #3
심리적 공허함으로 방황했던 청춘
유치원 교사로 오래 일하면서 나는 아이들의 행동을 관찰하고, 분쟁을 중재하고, 대화를 통해 아이들을 지도해왔다. 그러는 동안, 아이들에게 건넸던 내 말들이 어느 순간 내 과거를 돌아보게 하는 거울이 되었다.
나는 스스로 자아성찰 지능이 높은 사람이라 생각한다. 아마도 아이들과 함께하는 직업적인 경험 덕분에,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던 내 인간관계의 단점과 모순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은 오은영 박사님의 금쪽 상담소를 보며, 새로운 나를 찾아가는 중이다.
어떻게 내가 자라온 가정환경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는지, 그리고 그 모습이 내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하루를 마치고 몸을 쉬는 저녁, 내 정신은 그렇게 인간의 심리와 관계에 대해 탐구하는 시간을 보낸다.
가끔은 화려한 삶을 사는 연예인들의 인터뷰 속에서 그들도 과거의 상처와 고독을 품고 살아가고 있다는 걸 알게 될 때, 묘한 동질감을 느끼고, 또 한편으로는 나만 외롭고 고달픈 게 아니구나 하는 작은 위안을 얻기도 한다.
어릴 적 나는 동네 아이들과 종이딱지 놀이, 고무줄놀이, 술래잡기를 하며 하루 종일 뛰어놀았다. 자전거 타기도 스스로 익혔는데, 내 첫 자전거는 어린이용이 아닌 아저씨용 화물 자전거였다. 까치발을 들어야 겨우 발이 닿는 그 자전거를 타고, 차가 뒤섞여 다니던 동네 골목길을 누비며 활동적인 아이로 자랐다.
한 번은 오토바이를 피하려다 배달 오토바이의 뜨거운 엔진에 종아리가 닿아 화상을 입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참 씩씩하고 에너지 넘치는 아이였던 것 같다.
하지만 중학생이 되고 사춘기를 맞이하면서, 친구 관계에서 점점 외로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신학기 때 책상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친구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하나둘 사라졌고, 나는 점점 혼자가 되어갔다.
단짝 친구와만 함께 있는 게 더 편했고, 그 친구에게 다른 친구가 생기면 삼각관계가 불편해져 스스로 관계를 포기하고 혼자가 되기를 택했다.
나는 편지를 통해 마음을 표현하는 걸 좋아하는 아이였다. 중학생 시절엔 친구들과 우정의 편지를 주고받았고, 러시아 소녀와 영어로 1년간 펜팔을 나눈 추억도 있다.
누구에게 괴롭힘을 당하거나 왕따를 당한 적은 없었지만, 쉬는 시간마다 누군가와 어울려야 한다는 것이 내겐 스트레스였다. 단짝 친구와 반이 갈린 새 학기 봄소풍 날, 함께 갈 친구가 없어 엄마에게 배가 아프다고 거짓말을 하고 결석했던 기억도 있다.
엄마는 나의 말을 믿어주었고, 선생님께 대신 전화를 해주셨다. 단 한 번도 ‘왜?’라고 묻지 않으셨다. 그 믿음은 고마우면서도, 정작 나의 감정을 물어봐 주지 않는 거리감으로도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