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을 말하다, 외로움을 안다

내가 살고 있던 세상에서 벗어 나오고 싶었다 #1

by Helena J

현재 나와 아이들은 캐나다에 살고 있다.


이민 후유증 때문인지, 사춘기를 겪고 있는 아이들과의 심리적 갈등을 지나면서 아이들은 더 이상 내 세상 안에 있지 않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마음속으로는 아이들에게 기대를 내려놓자 다짐하면서도, 어느 순간부터 “만 18세가 되면 엄마로부터 독립해라”는 말을 습관처럼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인다.


“둘이서 일하면 룸렌트비와 생활비 정도는 충분히 벌 수 있어.”


사실, 이곳 캐나다의 현실은 그렇다. 직업과 고정 수입만 있다면 부모로부터의 독립은 비교적 쉬운 일이다. 17세, 18세가 되면 대학 진학을 위해 혹은 자립을 위해 룸이나 하우스를 렌트해 나가 사는 아이들이 많다.


한국처럼 거액의 보증금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반달치 디파짓과 한 달 렌트비만 있으면 가능하다. 무엇보다, 이런 자립을 이상하게 보지 않는 사회 분위기가 그들의 독립을 가능케 한다.


지나간 과거를 되돌릴 수는 없지만, 가끔은 내가 이처럼 독립이 쉬운 사회에 살았더라면 조금 더 빨리 원가족과 거리를 두고, 조금 더 건전한 방향으로 나를 성장시킬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랬다면, 가족 안에서 외톨이였던 20대의 나를 조금은 구할 수 있지 않았을까.


나만의 공간이 있었다면, 스트레스와 우울감에서 조금은 멀어졌을지도 모른다. 그 공간에서 내 목표를 발견하고, 나아가려는 노력을 더 일찍 시작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당시, 친구들을 집에 초대하는 게 부끄러웠다. 가난한 환경이 창피했고, 남자친구가 집 앞까지 데려다주는 것도 민망하게 느껴졌다.


서울에서도 빈곤한 지역으로 분류되는 다세대주택가. 어느 날, 허름한 골목의 버스정류장에서 들려온 고등학생들의 대화가 인상 깊게 남았다.


“우리 아파트에는 외제차도 많고… 생각해 보니까, 우리 동네가 좋은 동네야.”


그 말을 듣는 친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표정에는 어딘지 모를 씁쓸함과 비교의 흔적이 어려 있었다.


우리 가족은 서울로 이사하며 다락방 있는 단칸방에서 여덟 식구가 생활했다. 중학생이 되던 해, 겨우 방 세 칸짜리 연립주택으로 이사할 수 있었다.


어릴 땐, 우리 집이 가난한지 부자인지 몰랐다. 물질적 환경보다는, 늘 엄마와의 정서적 관계가 결핍되었다는 것만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중학생 시절, 아파트에 사는 친구 집에 놀러 간 적이 있다. 좋아 보이고 부럽다기보다, 엄마와 단둘이 살아서 엄마의 사랑을 온전히 받는다는 사실이 더 부러웠다. 내가 진짜 바랐던 것은, 공간이 아니라 정서적인 관심과 애정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 부족한 환경이 나의 자존감을 깎아내렸다. 연애를 하며 처음으로 상대방의 가정환경이 결혼을 결정하는 데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알게 되었다.


그때 헤어졌던 사람으로부터 받은 시련은, 내가 사랑에 얼마나 의지하고 있었는지를 깨닫게 했다. 그 사람에게 의지하고 싶었던 이유는, 스스로가 외로움으로 가득 찬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그때까지는, 내 부모님을 원망한 적이 없었다.

죽을 만큼 아팠던 이별의 순간에도, “내가 죽으면 엄마가 슬퍼할 거야” 라는 생각으로 버텼다.


하지만 자존감이 바닥을 치고, 그 상태에서 나를 좋아해 준다는 이유 하나로 결혼을 선택했을 때, 그 선택은 결국 가장 후회스러운 결정이 되었다.


그 결혼이 내 인생의 악연이 되었을 때, 나는 그 순간의 결정을 후회하고, 더 나아가 그 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던 내 환경과 부모까지 원망하게 되었다.


지금도 아이들을 키우며 버겁다고 느껴질 때면, 그리고 아이들에게 평범한 가정을 주지 못한 죄책감이 들 때면 나의 바보 같은 선택이 아이들에게 고단한 삶을 안겨주었다는 미안함이 나를 짓누른다.


그 미안함은, 그 사람과 결혼했던 순간을 되돌아보게 만들고, 결국엔 내 가정환경과 부모에 대한 원망으로 이어지는 악의 순환 고리처럼 느껴지곤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매번 마음속으로 다짐한다. 과거를 원망하며 살기보다는 지금 이 삶에 감사하며,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오늘을 충실히 살아가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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