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자는 결국 도착한다

내가 살고 있던 세상에서 벗어 나오고 싶었다 #3

by Helena J

“꿈은 이루어진다.

이루어질 가능성이 없었다면
애초에 자연이 우리를 꿈꾸게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 존 업다이크 (John Updike)


우연한 기회에 선물로 받은 외국 번역 도서가 있었다.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 책의 메시지는 분명했다. 목표를 구체적으로 세우고 진심으로 꿈을 꾸면, 언젠가는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


마이너스 통장 하나만 들고 시작한 싱글맘의 삶. 이삿짐을 친정으로 보낸 후, 뒤따라 도착했을 때

짐을 들여놓을 공간이 없어서 이삿짐 기사님들까지 난처해하시던 상황.


엄마는 형편이 안 좋은 큰딸인 나를 마지못해 받아주셨지만, 동생들은 생활공간을 내주는 걸 달가워하지 않았고, 나와 아이들이 쓸 방은 정리조차 되어 있지 않았다.


그날 밤, 짐을 정리하며 서운하고 속상했지만 울 틈도 없었다. 기대하지 않았기에 덜 상처받을 수 있었고, 그저 이렇게라도 더부살이를 할 수 있음에 감사하려 애썼다.


거주지가 바뀌며 직장도 바꿔야 했다. 캐나다 이민을 준비하며 30대에 처음 시작한 유치원 교사 일. 나에게 맞는 어린이집을 찾기까지 몇 군데를 옮겨 다녀야 했고, 스스로 바로 서지 못했던 그 시절,
내 불안감이 아이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었던 시기였다.


그뿐 아니라, 행복하지 않았던 내 성장기의 원가정으로 돌아온 삶은 결혼 전 그들과 한가족으로 지내던 시절처럼, 집에만 오면 숨이 막혀 감정 조절조차 되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좋은 엄마로 보이기조차 어려웠다. 평일에는 출근과 등하원을 반복하며 단칸방에서 하루를 마무리했다. 하지만 주말이 되면, 나와 아이들이 숨 쉴 공간조차 없다는 답답함이 밀려왔다.


그때, 유치원에서 맡고 있던 반의 한 아이 어머니가 알림장에 “주말 캠핑 다녀왔어요!” 라며 사진을 붙여 보내온 것이 내게 캠핑에 대한 동기를 주었다.


짐을 바리바리 챙겨야 한다는 부담은 있었지만, 그래도 텐트 안에서는 내 공간처럼 마음이 편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나 역시 캠핑 모임에 가입했다.


한 달에 한두 번, 아이들을 데리고 캠핑을 다니기 시작했고 점차 자신감이 생겨, 가족 단독 캠핑도 하게 되었다.


그렇게 2년 넘게 전국의 자연휴양림을 돌며 캠핑을 다녔고, 그 경험은 10년 후, 우리가 캐나다에서 다시 캠핑을 시작하게 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 시간들은 내 감정을 다스리고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한 나만의 방법이었다. 우리 가족에게는, 정신적 안정과 회복을 위한 독립된 생활공간이 절실했던 것이다.


나는 아이들이 다니는 유치원 근처, 안전한 동네의 월세 집을 찾기 시작했다. 결국, 보증금 천만 원짜리 원룸형 아파트를 구했다. 그중 70%는 저소득 전세자금 대출로 충당했다.


말 그대로, 한 푼도 없는 상태에서 우리만의 생활공간을 마련한 것이었다. 그러나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가자, 우리 집이 원룸이라는 사실이 더 부담스럽게 다가왔다.


특히 우리 동네는 어느 아파트 몇 동인지 말만 해도 집 평수나 생활수준이 노출되는 구조였기에
이사를 가야겠다는 결심이 더욱 간절해졌다.


보증금을 만들 여력은 없었지만, 나는 끊임없이 그 옆동의 월세 매물을 검색하고 들여다봤다. 그리고 결국, 보증금 3천만 원짜리 투베드 아파트를 얻을 수 있었다.


기존의 대출 보증금에 추가 대출을 얹어 만든 이 3천만 원은, 훗날 내 캐나다 이민 정착금이 되었다.

정말 한 푼 없는 상황에서도 가고 싶은 지역, 형편에 맞는 집, 현실 가능한 방법을 포기하지 않고 찾다 보면 길은 보이기 마련이었다.


나는 아이들이 태어난 순간부터 캐나다 이민을 결심했고, 그 꿈을 향해 한 걸음씩 준비해왔다. 유치원 교사 과정을 수료하고 현장 경력을 쌓으며 유효기간이 없는 캐나다 자격증으로 사전 이관을 마쳤다.


현지에서 영주권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며 ‘나도 할 수 있어’라고 스스로를 다독이 가난한 싱글맘이지만, 결코 희망을 놓지 않았다.


아이들을 더 어릴 때 데려가고 싶었지만, 전세자금 대출을 모두 상환한 후에야 내 돈으로 비행기표를 끊을 수 있었고, 그제야 우리는 서울을 정리하고 캐나다로 떠날 수 있었다.


기대 반, 불안 반.


하지만 결국 나는 내 꿈의 경로에 올라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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