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새로워 짜릿해
작년에는 여기저기 정말 전국 팔도로 강의하러 출장을 갔다.
누가 꼭 시켜서도 아니고, 꼭 나에게 주어지는 눈에 띄는 이득이 큰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그 안에서 내가 좋음을 발견해서 자처하는 고생이었다. 곳곳에 가서 사람들을 만나고 현장에서 겪는 고충들과 상황들을 접하는 건, 강의 전에 그 장소에 도착하자마자 나에게 새로운 에너지가 차오르는 걸 느끼게 했다. 그것은 “굳이 안 해도 되지만 그 안에서 유익을 찾는” 작년의 나의 낭만이었다.
올해는 정말 정말 일을 줄이고 하지 말아야지, 천천히 이 일 년은 내가 읽고 싶은 것만 읽고 당장 말하고 싶은 것만 말해야지, 그리고 뭐 그렇게 강의가 많이 들어올 것 같지도 않아,라고 했던 내 생각은 와장창 깨지고 있다. “강사님이시죠?” 이렇게 전화가 오면 내 마음은 이미 흔들리는 나는 강의 보부상러다. 이전 강의처에서 연락이 오면 그렇게나 반갑다. 사실 특강을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는 좀 헛헛한 느낌이 드는 것이, 바로 피드백을 받을 수 없어 어떻게 내 말이 전달되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또 강의 요청이 오면, 마치 지연되어 배송되는 러브레터를 받아 든 듯 최고의 칭찬처럼 느껴진다. 거절할 수가 없다.
이것은 일 중독 모먼트다.
중독의 메커니즘은 흥미롭다.
어떤 중독이든 비슷한 패턴을 보이는데, 중독된 것이 몸에 투입되면 도파민이 올라가며 내적 폭죽이 터진다. 그러나 요동친 그 도파민으로 흐트러진 기분은 제자리를 찾기 어려워한다. 중독 물질이 일정 이하로 몸에서 빠져나가고 나면, 중독 전 상태의 기본 기분 상태보다 조금 더 아래, 약간의 불쾌한 상태에 머물게 된다. 그래서 중독이 계속되면, 사실 도파민 폭죽놀이보다는 이, 자신의 기본 기분 상태가 된 불쾌감에서 벗어나고자 중독 물질에 더 매달리게 된다. 쾌를 찾아 했던 행동이 불쾌를 벗어나고자 하는 갈급함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뇌과학을 공부하는 한 지인은 내가 이런 메커니즘을 설명하자, 뇌의 자극 수용체계도 비슷하다며 설명해 준 적이 있다. 뇌과학의 낯선 용어를 모르는 내가 기억하는 내 버전의 이야기로 풀어보자면 다음과 같았다. 한 번 마약과 같은 강한 물질적 자극을 받은 뇌 수용체계는 이론적으로는 다시 원상복구될 것 같지만, 수용체계가 헐거워져 강한 자극체를 만나기 전으로 완전한 원상복구는 어렵다는 것을 실험실에서 보곤 한다고 했다. 헐거워진 뇌 수용체는 강한 자극으로 흥분되었던 그 기억을 완전히 소거하지 못하고, 자극을 갈구하는 기제를 품고 산다.
그리하여 이 글은 나 스스로에게 보내는 브레이크다. 조용하고 고즈넉한 봄날을 보내고자 하는 내가 나에게 보내는 경고장이다. To do list에 하나씩 소거할 것들 콜렉터가 아니라, 무엇이든 그것을 위해 더 생각하고 차분히 바라볼 수 있는, 세상에 다정한 내가 되는 것을 올해의 나의 낭만으로 삼겠다. 그것으로 늘 새롭고 짜릿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