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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공부할 것인가』_불편함 속에 남은 것들

by Helen

| 완독 포기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는 300페이지가 조금 넘는 책이다.

이제 '효과적인 직업교육과 직무연수'라는 제목이 붙은 마지막 부분만 읽으면 끝난다.

기업교육을 하는 내게 도움이 될 법한 챕터이기에 마지막 힘을 내보려 했다.

그런데 아, 힘들다.

도저히 페이지가 넘어가지 않는다.

문득 안톤 체홉의 단편소설 『내기』가 떠올랐다.

종신형이 더 바람직하다고 주장하는 변호사와, 사형제도가 더 낫다고 말하는 은행가가

형벌의 우열을 놓고 15년 감금 내기를 벌이는 이야기다.

변호사는 방에 갇혀 책을 읽으며 삶의 본질을 탐구하고,

시간이 흐르자 은행가는 내기를 후회하며 절망에 빠진다.

내기 종료 직전, 변호사는 세속적 가치가 무의미하다는 깨달음을 얻고 상금을 포기한 채 떠난다.

물론 내 경우는 그와 이유가 다르지만,

나 역시 마지막 몇 페이지를 남겨두고 완독을 포기했다.


| 왜 힘들었을까?


읽기 쉽지 않았다.

왠지 모르게 불편했고, ‘왜 이렇게 썼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 힌트는 대충 넘겼던 서문에 있었다.


“이 책은 각 장마다 새로운 주제를 다루되,

주요 학습 원리 두 가지를 책 자체에 적용하는 전략을 택했다.

(…)

그 결과 독자는 책의 내용을 더욱 잘 기억하고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들은 책 속에서 강조하고 있는 인출 연습, 교차 연습, 간격을 둔 반복

독자가 ‘몸소 체험’하도록 구성했던 것이다.

책 자체가 ‘바람직한 어려움’을 구현한 실험장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이 나를 불편하고 짜증 나게 만들었다.


| 효과는 있었을까?


인정하긴 싫지만, 효과가 있었다.

인출연습, 교차연습, 간격을 둔 인출연습, 심성모형 같은 주요 개념이

이 순간에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만약 각 챕터를 “인출연습”, “교차연습”, “심성모형” 같은 제목으로 명확히 나눴다면

이 정도로 기억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기억에 남기 위해 고군분투한 나의 뇌가 이 책의 실험에 제대로 반응한 셈이다.

문제는 다시는 이 책을 읽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읽는 내내 느꼈던 불편함이, 암기된 지식의 가치마저 상쇄해버렸다.


| 교육에 활용할 수 있을까?


만약 이 책의 학습 전략을 내가 하는 일에 활용하여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한다면 어떻게 될까?

수강생들의 머릿속에 남는 지식은 많을지 몰라도

교육에 대한 만족도는 떨어지고, 추천 의향도 낮아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물론 교육의 품질을 만족도나 추천 의향만으로 판단할 수는 없다.

다만, 많은 교육 담당자가 ‘만족도’라는 지표로 성과를 평가받는 현실을 고려한다면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학습 전략을 기업 교육에 적용하기에는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다.


| 남은 단상


다음 달 강의에서는 중간중간 퀴즈를 많이 활용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책의 학습 전략을 보다 실용적으로 풀어낸 책,

Bob Pike의 『창의적 교수법』도 다시 꼼꼼히 읽어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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