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바꾸는 90초》
작년 이맘때쯤, 마음을 송두리째 흔드는 뉴스를 접했다. 그 뉴스가 내게 전달된 방식조차 너무 불쾌했었다. 감정이 크게 요동쳤고,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내 마음을 나도 어쩔 수가 없어’라는 말이 딱 맞는 상태. 식욕은 뚝 떨어지고, 깊은 잠을 자지 못하는 날이 이어졌다.
급한 마음에 감정을 어떻게 안정시키면 좋을지 ChatGPT에게 물었다. 뻔한 답이 돌아왔다. 프롬프트를 아무리 바꾸어도 비슷한 조언들만 반복되었다.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여라.
감정을 글로 표현해 봐라.
명상을 해라.
운동을 해라.
이도저도 안되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라.
짜증이 나서 마음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래서, 어떻게 하라는 건데? 명상? 지금 당장 죽을 것 같은데 무슨 명상이야. 운동? 좋은 건 알지. 근데 지금은 집 밖으로 나가는 것도 겁이 나. 전문가의 도움? 그런 말 나도 할 수 있어.'
그렇게 겨우겨우 버티던 어느 날, 누군가가 추천했던 책 《인생을 바꾸는 90초》가 문득 떠올랐다. 무심코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고, 곧 한 문장이 마음에 콕 박혔다.
감정은 파도다. 피하지 말고 90초만 서핑하자
책에 따르면 감정은 파도처럼 밀려왔다가 사라지는 생화학적 반응으로, 그 지속 시간은 길어야 90초라고 한다. 그런데 내 기분은 90초보다 훨씬 오래 지속되는 것 같은데 왜 그런걸까? 우리 뇌는 어떤 감정을 떠올릴 때마다 그와 비슷한 생리 반응을 다시 일으킨다고 한다. 즉, 감정 그 자체가 오래가는 게 아니라, 그 감정을 떠올리는 기억이 감정을 계속 되살려낸다는 것이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가만히 앉아 생각을 많이 할 수록 지나간 기억과 감정을 소환해서 나도 모르게 처음 불편을 느꼈던 상황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아진다.
책에서는 감정을 ‘신체 감각’으로 설명한다. 슬픔은 가슴에서 목을 타고 얼굴로, 분노는 몸통에 팔을 거쳐 손끝까지 치솟는다고 한다. 그래서 감정을 다루고 싶다면, 먼저 ‘몸의 신호’를 읽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불편한 감정이 생기는 순간 '메타인지'를 발동시켜서 나에게 일어난 신체변화를 감지해야 한다. 그래야 나에게 껌처럼 붙어있는 감정을 떼어낼 준비가 되는 것이다.
신호를 감지한 후에는 뭘 해야 할까? 책에서는 구체적인 행동법을 설명하진 않고 있지만, 나의 경험으로는 호흡을 조절하는 것이 효과적이었다. 어쩔 수 없이 기억이 소환되어서 처음 뉴스를 접했던 때와 같은 충격이 파도처럼 밀려올 때면, 마음 속으로 '아! 또 왔다!'하고 감지한 다음 행동을 멈추고 조용히 심호흡을 했다. 심호흡을 하면서 되뇌인 말은 '90초면 지나가... 90초면 지나가...'
이 단순한 반복이 생각보다 힘이 되었다. 조금 진정이 되고 나니 드디어 몸을 움직여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밖으로 나가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땀이 송골송골 맺히도록, 매일 한 시간 넘게 걸었다. 꾸준히 걷기 위해서는 동기부여가 필요했는데, 그 때 내가 이용한 것은 '팟빵'이었다. 매거진을 하나 구독해서 계속 이어폰으로 강의를 들으면서 걸었다.
걷기 운동의 효과는 예상보다 빨라서 한 달쯤 지나자 식욕이 돌아오고, 밤에 잠도 잘 오기 시작했다. 비 오는 날이면 ‘못 걸으면 어쩌지?’ 걱정하며 우산을 들고 나가기도 했다. 어느새 걷기운동은 내 감정을 조절하는 루틴이 되었고, '팟빵'으로 듣는 매거진 강의는 그것을 유지하게 해 준 버팀목이 되었다.
그때 내가 세운 목표는 단 하나였다.
다음에 이런 일이 또 오더라도, 그때는 덜 헤매자.
지금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 경험 덕분에, 감정이 밀려오는 순간 나를 살피는 법, 그리고 감정의 '파도를 타는 법’을 제대로 배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