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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

by Helen

전화벨이 울린다. 헉! 시아버님??? 시아버님은 나에게 전화를 하신 적이 거의 없는 분이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바로 받았는데, 하신 말씀을 요약하면 이렇다. "내가 요 며칠 몸이 안 좋아서 거의 집에 있다. 너한테 부탁할 게 있는데, 네가 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다. 소꼬리 좀 사다가 고아 봐라"


순간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쳤다. 요리 잘하시는 어머님 계시는데 왜 나에게? 정말 곰탕이 드시고 싶은 걸까 아니면 숨은 메시지가 있는 걸까? 전화 끊고 어머님께 말씀드리면 분명히 하지 말라고 하실 텐데 어쩌지? 곰탕을 끓여본 적도 없지만 이 더위에 집에서 어떻게? 사 먹는 게 더 맛있지 않나?


조심스럽게 여쭈어봤다. “제대로 끓이는 집에서 사다 드리면 어떨까요?” 그러자 시아버님은 “그런 건 많이 먹어봤지만, 하나도 소용없다. 직접 해야지.” 하신다. "한번 해보겠다”고 말씀드리고 전화를 끊었다. 급한 대로 언니 1호와 3호에게 차례로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하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상의를 했는데…


언니 1호는 꼬리곰탕 끓이는 방법을 알려줬고, 언니 3호는 “숨은 메시지가 있더라도 직접 말씀 안 하셨으면 모른 척하는 게 맞다”며 “망치면 재료만 아까우니 유명한 집 곰탕 사다 드려라"라고 조언했다.


통화 후 결정한 것은 두 가지.


집에서 끓이지 말고 맛난 집 것 사다 드리되 내가 한 것처럼 해서 드리자.(언니 3호의 조언 일부 수용)

아들이 워낙 살갑지 않으니 며느리를 통해 컨디션이 안 좋다는 사실을 아들에게 알리고자 하셨을 수 있다.(숨은 의도) 그러니 아들에게 오늘 시간 되면 방문하던지 전화드리라고 하자. (언니 3호의 조언 거부)


그런데, 전화 통화 후에도 시원한 마음이 들지 않는다. 두 가지 결정을 얻은 것과는 별개로 언니들과의 통화는 뭔가 아쉽다. 어떻게 하면 좋지?’라고 물었지만, 꼬리곰탕 레시피나 시부모님을 다루는(?) 법을 알고 싶었던 건 아니었던 것 같다.


언니들은 코칭을 모르는 사람들이니 동생이 전화해서 푸념하는 상황을 코칭 순간으로 인식하지 못했겠지만 나는 살짝 코칭 비슷한 것을 원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너 당황했겠구나"

"아버님이 너를 믿으시나 보다"

"지금 제일 걱정되는 게 뭐야?"

"너는 어떻게 하고 싶은데?"

"네 판단이 맞을 거야"


왜 우리 언니들은 이런 말을 안 하는 것일까? 공감이나 지지의 말을 조금이라도 해줬더라면 마음이 가벼워졌을 것이고 같은 해결책을 도출했더라도 그 해결책에 자신감이 생겼을 것 같은데 말이다.


남편에게 전화를 해서 아버님께 전화드려보라고 했다. 잠시 후 통화 마친 남편에게 카톡이 왔다. "농협에서 소꼬리 사다가 내가 끓일게" 이런 문제해결은 대환영이다!


아들이 끓인 꼬리곰탕이라면, 맛이 없어도 맛있게 드시고, 무엇보다 행복해하시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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