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질문의 강박
오늘 한 코치에게 30분 코칭을 받았다. 내가 들고 간 주제는 명확했다. 어제 코칭에서 실수했다고 느꼈고, 그걸 혹독하게 복기하고 싶었다. 그리고 같은 상황이 왔을 때 어떻게 더 잘할 수 있을지 방법을 찾고 싶었다. 명확한 주제와 목표가 있었던 세션이었다.
그런데 코치는 계속 존재 질문만 던졌다. “어떤 코치가 되고 싶은가요?” “좋은 코치는 어떤 코치인가요?”“코칭이 왜 중요한가요?” 속으로 점점 답답해졌다.나는 어제의 세션을 구체적으로 돌아보고 싶었는데, 변죽만 울리고 있는 느낌이었다. 결국 코칭이 끝났을 때, 나의 이슈는 풀리지 않은 채 공허함만 남았다.
KPC를 준비하는 많은 코치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이 바로 이거다. 시험 준비를 하다 보면 “문제를 보지 말고 사람을 봐라”라는 말을 너무 정직하게, 또 너무 극단적으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당장 고객이 직면한 문제와 상황을 외면한 채 존재, Being만 붙잡고 씨름한다. 마치 수술이 필요한 환자에게 보약을 먹이는 느낌이다.
물론 존재 질문은 중요하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이 코칭의 전부가 될 때다. 고객이 눈앞의 문제를 안고 있는데, 코치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만 반복한다면? 고객 입장에서는 현실을 무시당한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다. 코칭이 추상적인 자기탐구로만 흐르고, 결국 아무런 선택이나 변화로 이어지지 않는다.
여기서 중요한 건 문제를 본다고 해서 문제가 코칭의 중심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코칭에서 문제를 본다는 건 문제에 매몰된다는 뜻이 아니라, 고객이 당장 안고 있는 현실을 존중한다는 의미다.
고객의 문제를 듣고
그 문제 뒤에 있는 감정과 신념을 들여다보고
그리고 나서 미래의 선택과 가능성으로 연결하는 것
이게 코칭의 본질적인 흐름이다. 존재 질문은 이 과정에서 '소금'처럼 쓰일 때 빛난다. 하지만 모든 음식에 소금을 때려 넣으면 짜서 못먹는 요리가 되는 것처럼, 존재 질문만 던진다고 해서 세션이 깊어지는 건 아니다.
“고객이 눈앞에 문제를 들고 왔다면, 그 문제를 존중해라.”
“Being 질문만 고집하지 말고, 고객이 원하는 구체적인 대화의 층위로 들어가라.”
“문제를 보지 말라는 말은 문제를 무시하라는 뜻이 아니다. 문제 너머의 사람을 보되, 그 사람이 당장 붙잡고 있는 맥락에서 출발하라.”
“존재와 행동은 둘 다 중요하다. 어느 한쪽으로 기울면 균형이 깨진다.”
고객이 원한 건 “내가 어제 코칭을 어떻게 더 잘할 수 있었을까?”라는 구체적인 리플렉션이었다. 그 질문을 존중하고 탐색을 깊게 했다면, 오히려 자연스럽게 “내가 어떤 코치이고 싶은지”라는 Being으로도 연결될 수 있었을 것이다.
문제를 존중하면서 존재를 확장시키는 것,
그때 비로소 고객은 실제적인 변화를 경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