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PT에 대해 들어보셨나요? Human Performance Technology, 즉 인간수행공학입니다. 앞서 설명드린 Six Boxes Model은 HPT적 접근으로 업무를 수행하는데 활용될 수 있는 하나의 도구라고 볼 수 있어요. HPT는 복잡한 조직체계에서 인간의 성과를 향상시키기 위한 체계적이고 통합된 접근 방법을 개발하려는 시도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지금도 ISPI(International Society for Performance Improvement)라는 비영리단체를 통해 정기적으로 학회를 개최하면서 성과향상 분야에서의 최신 연구와 사례를 소개하고 있어요.
1. 교육이 복지인가요?
과정개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HPT를 먼저 이야기하는 이유는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교육담당자의 시선이 "교육"에만 머무르지 않고 "성과향상"을 바라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현장에서 일을 할 때만 해도 교육부서는 그냥 교육만 열심히 하면 됐어요. 그렇지만 요즘은 성과에 대한 관심이 아주 많이 커졌기 때문에 교육을 하더라도 그 지향점은 성과향상에 있어야 합니다. 어떤 분은 너무 당연한 이야기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겉으로는 역량개발이나 성과향상을 위해 교육한다고 하면서도 실제 조직문화 차원에서는 교육을 일종의 "복지""보상""혜택" 등으로 생각하는 경우를 아주 많이 봤습니다. 여러분 회사는 어떠신가요? 교육 다녀온다고 하는 직원에게 "그래, 잘 쉬었다 와라" 하고 말하는 리더분들 보지 않으셨나요?
교육과정을 개발하고 실시하는 궁극적인 지향점도 결국 임직원과 조직의 "성과"를 향상하기 위함입니다. 어쩌다 보니 "복지"와 "성과향상"을 구분해서 설명했지만 사실 양자택일의 문제는 아닐 수도 있어요. 성과 향상을 위해서는 역량 개발이 필요하고 역량을 개발시킬 기회를 조직으로부터 부여받는다면 그것도 복지라고 할 수는 있을 테니까요. 다만 교육담당자가 업무를 수행할 때 내가 하는 일의 결과를 "성과향상"로 생각하면서 일하는 것과 "복지"로 생각하면서 일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2. HPT 기반으로 일하면 뭐가 달라질까요?
HPT 기반으로 일을 한다는 것은 실제 어떤 것일까요? 사장님이 "교육 좀 해"라고 했을 때 HPT를 모르고 일하는 교육담당자의 경우 깊이 생각하지 않고 일반적인 업무 수행 방식으로 과정개발을 하고 실행을 할 것입니다. 물론 숙련된 교육담당자라면 좋은 교육과정을 개발해서 만족스러운 결과를 낼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여기에서 한 가지 생각해 볼 것이 있어요. 만족스러운 결과를 내는 좋은 교육과정이란 과연 어떤 교육일까요? 이 질문에 대해 많은 교육담당자들이 "교육만족도가 잘 나오는 교육"이라고 답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교육 만족도가 높으면 임직원들의 역량이 개발되고 성과가 향상되는 것일까요? 만족도는 높은데 현장에서 아무 변화가 없다면 그 교육은 과연 좋은 교육일까요? 좋은 만족도가 나오기를 기대하면서 개발한 교육이야 말로 복지를 위한 교육이 아닐까요?
HPT를 알고 일하는 교육담당자는 우선 As-Is와 To-Be의 Gap을 확인하는 일부터 시작합니다. 그리고 Gap의 원인을 분석하지요. 이미 눈치채셨겠지만 그 원인을 분석할 때 Six Boxes Model과 같은 분석도구가 활용되는 것입니다. 분석된 원인에 따라 해결방안(Intervention)을 설계하고 실행하는데, 그때 활용되는 해결방안은 교육 이외에도 다양합니다. 교육적으로 해결가능한 것을 Training Intervention이라고 하고 교육적으로 해결불가능한 것은 Non-Training Intervention이라고 말하기도 해요. 이후 변화관리 및 평가 등의 단계를 거치지요. (HPT에 대한 상세 프로세스는 따로 공부하시기를 바랍니다)
3. Training Intervention과 Non-Training Intervention
Training Intervention (훈련 개입)
조직 구성원의 업무 성과나 기술을 향상시키기 위해 지식, 기술, 행동 등을 개발하는 것.
훈련 프로그램, 워크숍, 세미나, OJT, 코칭, 멘토링 등을 통한 교육 활동. 새로운 도구나 기술을 사용하는 방법, 업무 프로세스 개선 등
Non-Training Intervention (비훈련 개입)
업무 환경, 조직 문화, 업무 시스템 등을 개선하여 성과를 향상시키는 것.
프로세스 재설계, 업무환경 개선, 업무 프로세스의 간소화, 리더십 스타일의 조정, 성과평가 시스템의 개선 등
HPT에서는 성과 향상을 위해 교육 및 개발 활동뿐만 아니라 비교육적인 방법도 강조합니다. 종종, 훈련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더 큰 조직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개입 방법이 조합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접근은 조직의 효과성을 높이기 위해 종합적이고 통합된 전략을 사용하는 데 중점을 둡니다.
여기까지를 이해하고 나면 살짝 갑갑한 마음이 생길 수 있습니다. Non-Training Intervention에는 교육부서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별로 없으니까요. 그러나 HPT 적인 접근으로 일을 하는 교육담당자라면 포기하지 않습니다. 결과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더라도 Non-Training Intervention에 대해 관심을 갖지요. 성과가 나지 않는 원인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결과와 이슈, 제안 등을 보고서에 넣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교육의 결과가 성과 향상에 기여할 수 있을 테니까요. 나아가 이슈와 관련된 타 부서들과 함께 Task Force를 출범시켜서 성과향상에 대한 여러 요인들을 종합적으로 분석하며 함께 해결해 나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노력들이 교육부서의 업무범위를 확장시킬 수 있는 출발점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예전에 일했던 연수원 원장님의 에피소드가 생각납니다. 하루는 원장님께서 연수원 내 관리팀의 한 직원에게 "000 대리가 하는 일이 어떤 일이지?"라고 물어보셨어요. 그때 000 대리는 "전화기 설치하고 관리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답했어요. 실제 그분의 일은 그 일이었거든요. 그런데 원장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니야. 000 대리는 우리 연수원의 커뮤니케이션 담당자야"라고요.
이제 여러분에게 누군가가 같은 질문을 한다면 뭐라고 답하시겠습니까?
[참고]
Performance라는 단어는 수행으로 번역되기도 하고 성과로 번역되기도 하는데요, 처음 국내에 HPT를 소개하신 교수님께서 HPT의 Performance를 "수행"으로 번역하셔서 HPT는 "인간수행공학"이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HPT의 지향점 자체는 "성과" 향상입니다. 앞뒤 맥락에 따라 "수행"과 "성과"를 선택적으로 사용해야 할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