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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en Jun 01. 2023

축하라는 말 대신

내가 결혼식에 안가는 이유

나는 결혼식에 잘 안 간다.

축의금만 보낸다.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예식장에 모인 사람들(특히 뒤편 사람들)이  예식에 집중하지 않고 웅성거리고 있는 상태에서 식이 진행되는 것이 왠지 마뜩잖다.


마치 강사가 앞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데 뒷자리 수강생이 자기들끼리 떠들거나 핸드폰 통화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직업병이라 치자)


그리고, 식에 집중하지 않는 수다의 향연은 마치 공식적으로 허락된 신랑 신부의 뒷담화의 장(場) 같아서 그것도 불편하다.


결혼식의 주인공이라는 이유만으로 신랑 신부의 나이, 부모, 가족관계, 학력, 성장과정, 외모에 대한 품평, 이전 연애사 등등 온갖 개인사가 디스패치급으로 폭로되지 않던가.


마지막으로, 결혼이 축하할 일인지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는다. 결혼이 축하받을 일인지는 죽을 때까지 살아보고 나서 판단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결혼 말고도 꽤 많은 인생사가 이와 비슷하다.


아이를 낳은 것도 모두 축하를 보내는 일이지만 사실은 그때부터 고생길이다. 학교를 졸업하는 것도 축하를 받는 일이지만 취업이 되든 안되든 그때부터 인생 자갈길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 모든 인생의 매듭을 지나는 사람을 볼 때마다 마치 꽃길만이 앞에 놓인 듯이 축하를 한다.


나보다 더 많은 경험을 한 지혜로운 분들이 그 길이 힘든 걸 몰라서가 아니라 나만 당할 수 없으니 어디 한번 너도 당해봐라 하고  속임수 차원에서 축하해주는 것이라고 한다면 나 또한 낄낄거리며 그 속임수에 동참할 의향은 있다. 그렇지만 여전히 "축하합니다"라는 말은 못할 것 같다.


이런 생각도 해본다. 어쩌면 "축하합니다"라는 말은 험난한 인생길에 축하할 일이 생기길 바라는 기도나 주문은 아닐까. 행복한 결과에 대한 축하가 아니라 험난란 삶 속에서 기어기 행복을 찾아가길 바라는 기원의 의미, 즉 축복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나는 앞으로 "축하"라는 단어의 편리함에 기대는 대신 상황에 맞는 최적의 단어를 열심히 찾아 이렇게 말을 해보기로 결심한다.


"결혼을 축하합니다"가 아니라" 결혼을 축복합니다"


"출산을 축하합니다" 대신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기를 기원합니다"


"졸업을 축하합니다"보다는 "새로운 출발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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