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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담 vs 월장

by Helen

오래전 기억이 떠올랐다.


서울교대를 졸업하고 초등학교 교사가 된

나보다 7살 많은 언니가

퇴근해서 집에 오자마자 엉엉 울었던 날이 있었다.


"이원영 씨가 죽었대"

언니가 가끔 언급했던 이름이라

이원영 씨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은 알고 있었다.

언니의 대학 동기였고,

언니와 같은 시기에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고

무엇보다도 혼자 자취하면서 사는

가난한 시인이었다.

그런데 그 사람이 결핵으로 죽었다는 것이다.


이원영 씨의 시집은

그가 죽기 한참 전부터 우리 집 책꽂이에 꽂혀 있었다.

시집이라고는 하지만

학교 앞 인쇄소에서 찍어낸 것 같은 허술한 책이었다.

호기심이 넘치던 어린 시절

책꽂이에 꽂혀 있는 언니 오빠들의 책을

종종 들여다보곤 했었는데

이원영 씨의 시집도 그중 하나였다.


그 시집에는 이상한 제목의 시가 있었다,


"월장력 연마?"


언니에게 '월장'이 뭐냐고 물어봤다.

'담을 넘는다는 뜻'이라고 했다.

내 나이 또래 다른 아이들은 모르는 어려운 단어를

혼자만 알게 된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던 기억이 난다.


시간이 흘렀다.

미디어에서 담을 넘는 상황을 설명할 때

'월담'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을 여러 번 봤다.

왜 월장이 아니라 월담일까?

'월담'이라는 단어를 접할 때마다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가난한 시인

이원영 씨가 생각나곤 했다.


그러다가 얼마 전

역사학자 전우용 교수가 하는 말을 듣게 되었다.


"'월담'은 잘못된 말이고 '월장'이 맞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해묵은 숙제가 해결된 것 같은 상쾌함을 느꼈다.

이미 40년 전,

세상에 이름 한 번 알리지 못하고 유명을 달리 한

가난한 시인의 단어가

드디어 정당성을 인정받은 것 같은 통쾌함도 밀려왔다.

그리고 나는

품을 필요도 없었던 오래된 죄책감을 훌훌 털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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