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납하지 못한 책의 추억
커스터드푸딩을 만들 때마다 가끔 꺼내보는 일본 요리책이 있다.
제목은 『お菓子作り全科(과자 만들기 전과)』.
여러 레시피로 푸딩 만들기를 시도해 본 결과, 이 책에 나와 있는 레시피가 단연 최고다. 그런데 사실, 이 책이 나에게 어떻게 왔는지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이렇게 추측할 뿐이다.
어린 시절, 온 가족이 일본에 살았던 그때. 아마 요리를 좋아하던 큰언니가 동네 도서관에서 빌려와 보다가, 귀국 이삿짐에 슬쩍 들어가 버린 게 아닐까. 반납도 못한 채, 우리 가족과 함께 현해탄을 건넌 운명의 책… 오랫동안 집 책꽂이에 꽂혀 있던 이 책은 언니들과 오빠들의 기억에선 사라져 갔고,
나만 가끔 화려한 디저트 사진을 보며 군침을 흘리곤 했다.
문득, 어린 시절 종종 방과 후 시간을 보냈던 府中市 문화센터의 풍경이 떠오른다. 1층에는 아이들을 위한 장난감이 가득한 놀이방과, 목공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그리고 유일하게 유료로 운영되던 어린이집도 1층에 있었다. 도서관은 2층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주로 그림책을 대출받곤 했었는데 책을 들고 사서언니에게 가면 사서언니는 책 뒤에 꽂혀 있던 카드를 뽑아 뭔가를 기록한 후 보관했고, 책에 붙은 종이에 대출일자를 찍은 다음 책을 넘겨주곤 했다.
오늘, 오랜만에 책꽂이에서 그 책을 꺼내 펼쳐보았다. 마지막 페이지에 도서관 대출 스탬프 종이가 붙어 있었는데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49. 11. 24. 잠깐. 1949년? 아니다, 昭和(しょうわ) 49년, 즉 1974년이다!
앗! 그렇다면? 나는 지금까지, 귀국 직전에 언니가 대출받았다가 깜빡 잊고 반납을 못 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우리 가족이 일본을 떠난 건 1977년. 즉, 언니는 1974년에 책을 빌려서
무려 3년 동안 반납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쯤 되면 도서관에서도 몇 번은 독촉했을 텐데...
만약 지금이라도 도서관에 찾아가 “이 책, 51년 만에 반납하러 왔습니다”라고 말하면...미담일까, 추문일까...? 물론 반납은 언니가 해야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