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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에 대한 아주 사적인 생각

by Helen

비 오는 날씨를 안 좋은 날씨라고들 하지만

날씨의 좋고 나쁨은

내가 어떤 맥락에 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프리랜서가 되어 집에서 일하는 시간이 많아진 요즘,

아침에 일어나 커튼을 젖혀보면

비가 오는 날이 반갑기만 하다.

뽀송한 집안에서 창밖에 내리는 비를

느긋하게 바라볼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기분 좋은지 모른다.


비에 젖은 신발과 양말을

내 체온으로 말릴 필요도 없고,

지하철 특유의 퀴퀴한 냄새를 맡지 않아도 된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흐뭇한데,

바로 커피를 내려

집안의 습한 공기에 커피향을 스며들게 하면

극강의 행복감까지 밀려온다.


오늘처럼 비가 오락가락하고 바람까지 부는 날씨는,

누군가에게는 나쁜 날씨일지 몰라도

나에게는 산책하기에 딱 좋은 날씨다.


주말에 날씨가 맑으면

호수공원에 사람들이 몰려 산책길이 북적이지만,

이런 날씨엔 다들 현관을 나서길 망설인다.

덕분에 나의 산책길은 평일처럼 한산해진다.


게다가 바람이 벚꽃잎을 이리저리 날려주니,

눈 내리는 풍경보다 열 배는 아름답다.

축축하게 습기를 머금은 땅에서는

흙냄새가 올라오는데,

피톤치드 못지않게 폐를 정화해 주는 기분이 든다.


바람을 대비해 머리는 질끈 묶고,

접고 펴기 좋은 우산 하나 챙기고,

습기에 강한 신발만 신으면 준비 완료다.

오늘도 이렇게 비 오는 날의 산책을 만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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