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까지만 해도 몸에 한기가 느껴졌는데,
오늘 아침에는 집 안 가득 열기가 스며든다.
접시 몇 개를 닦는데도 이마에 땀이 맺힌다.
아… 드디어 때가 되었다.
더 이상은 미룰 수 없다.
옷 정리를 해야 한다.
우선 커다란 타포린 가방 네 개를 준비하고
옷장을 열어 옷들을 하나하나 점검하면서 분류를 시작한다.
첫 번째 가방에는 내년에도 입을 옷을 담는다.
두 번째 가방에는 아파트 의류 수거함에 버릴 옷을 담는다.
여기까지는 비교적 수월하다.
하지만 고민이 시작되는 건 그다음이다.
세 번째 가방은 당근 마켓에 팔 것
네 번째 가방은 아름다운 가게에 기부할 것
앞의 두 가방은 옷의 상태로 구분하지만,
나머지 두 가방은 '얼마나 귀찮음을 감수할 수 있느냐'로 갈린다.
당근은 약간의 용돈벌이가 가능한 대신 꽤 번거롭다.
반면 기부는 빠르게 끝낼 수 있지만
손에 쥐어지는 건 기부 영수증뿐이다.
자,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결국 올해는 대부분의 옷을 기부 가방으로 보냈다.
당근 가방은 텅 비어버릴 뻔했지만,
고심 끝에 원피스 두 벌이 당근 가방형으로 결정되었다.
그 옷들도 처음에는 기부 쪽에 넣을 뻔했지만,
예전에 아름다운 가게에 기부하러 갔을 때
아끼던 옷이 살짝 험하게 다뤄지는 모습을 보고
속상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거의 새것이나 다름없는 그 원피스 두 벌만큼은
차마 그런 취급을 받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과한 수고로움을 감수한다.
중고 옷이나마 제일 좋은 옷걸이에 정성스럽게 걸고
색이 왜곡되지 않도록
빛의 방향을 고려해 가며
옷태가 잘 보이게 사진을 찍는다.
군데군데 디테일과 케어라벨, 브랜드 라벨까지
놓치지 않고 꼼꼼히 사진에 담는다.
옷장 속 빈 공간에는
계절과 계절 사이의 바람 길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