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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en Oct 27. 2016

우동 한 그릇

여행은 숙제가 아니다

확실히 따뜻한 기후는 사람들을 밝게 만든다. 늦게까지 사람들과 어울리기 좋아하는 스페인만 봐도 알 수 있다. 이들은 낯선 나와 기꺼이 함께 수다도 떨어줄 것 같다. 내가 스페인어를 좀 했다면.


하루 5끼를 먹는다고 알려진 스페인 식사는 실제 점심과 저녁을 제외하곤 간식 수준이다. 그만큼 먹는 핑계로 사람들을 만난다는 거겠지.


그 지역의 음식을 먹는 것도 여행의 즐거움이다.

샹그리아, 빠에야, 하몽, 추러스, 타파스들.

나도 먹어본다. 물론 맛있다.

그런데 가장 맛있었던 건 pan con tomate!!!

번역하면 토마토를 곁들인 빵 되시겠다. 빵에 올리브 오일 바르고 그 위에 간 토마토 발라 먹는다.

주로 아침 식사용. 초간단하지만 슬프게도 한국에서 해 먹었는데 그 맛이 안 난다.

그리고 역시 커피... 난 커피가 맛있는 곳이 좋더라.

보통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그래서 처음 여행을 다닐 땐 입소문 난 음식점을 찾았다. 리뷰도 보고 별점도 보면서.


그런데 그라나다에 우동집 이후로 가끔은 동네에서 그때그때 눈에 띄는 음식점에 들어가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이 우동집이 모든 여행을 통틀어 가장 기억에 남은 음식점이다.


맛있었냐고? 전혀!!! 주방장이 우동을 그림으로 배우셨다. 일단 비주얼을 보면 그럴싸하다.

추운 그라나다 저녁은 따뜻한 우동을 불렀다. 폰을 들고 주변 초밥집을 찾아갔다. 사실 그 집이 문을 연 것만으로도 고마웠다.

초밥은 그럭저럭. 근데 한참을 걸려 나온 우동은 미지근했다. 국물은 미소된장 맛, 국수는 익지 않았다. 아마 우동만 10유로가 조금 넘었을 거다.


예전 같으면? '아놔 망했다. 이게 뭐야'라며 속상해 나왔을 거다. 근데 난 이 우동을 먹고 웃음이 나왔다.

심지어 다 먹었다. 그리고 숙소로 가는 내내 웃었다. 숙소에서도 생각만 하면 재밌었다. 나를 자꾸 웃게 했다.


여행은 숙제를 하는 것이 아니다. 최적의 가격으로 최고로 맛있는 식사를 해야 된다는 미션 클리어도 아니다.


이즈음 난 숙제처럼 해오던 것에서 벗어난 것이다. 즉, 꼼꼼히 계획을 짜고 예약을 확인하고 최대한 맛있는 것을 먹고 가능하면 좋은 곳을 많이 가보고.

아마도 그래서 이 우동 앞에서 재밌게 웃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아직도 이 사진을 보면 웃음이 터진다.

주방장이 그림으로 배운 우동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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