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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졸

사람 1: 자매애로 뭉친 사회 친구들의 우정에 대한 찬사

by 게을러영

그녀들의 첫 만남은 부추칼국수집이었다.

23년 전 일이다.

새로 부임한 얼떨떨함과 내숭을 적당히 감춰야 하는 새 학교에서, 평소 마당발로 유명한 P교사가 본인의 인맥을 중심으로 사람들을 모아 점심을 샀다.

J, K, Y는 모두 새로 부임하였고 P와 C만이 원래 그 학교에 있던 사람이었다.

그중 이쁘장한 K는 딱 봐도 막내였는데 말은 꽤 거칠었다.

초면인데도 불구하고 “에이씨, 00시에 들어와서는 조용히 살려고 했는데... 또 낚였네..”

그렇게 간보기로 끝난 첫 만남은 몇 번의 술자리를 하면서 막역한 사이로 발전하였으나 대신 잦은 술자리로 인한 위염을 얻게 될 줄은 그 때는 몰랐다.


그리고 그들은 ‘고졸’이 되었다.

운명인지 지랄인지 당시 미혼인 두 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그다지 부부사이가 좋지 않아서 막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거룩하게 이혼도장을 찍자며 호기롭게 도원결의를 했다. 그 결의는 분명 거나한 술자리였음은 확실하나 시기와 장소는 전혀 기억이 안 난다.

사회에서 만난 동료가, 그것도 적당한 내숭과 교양을 떨어야 하는 여교사들이 그렇게 똘똘 뭉치기는 쉽지 않았지만 당시 이삼십 대의 그녀들의 똘기는 어떤 것도 다 접수시킬만했고 결속력은 막강했다.


그렇게 다섯이 똘똘 뭉쳐 다니던 그다음 해, H가 그 학교로 부임을 했다.

H는 신입 교사 환영회에 빠지면서 당시 총무이었던 C에게 와서 불참의 이유를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우리 시아버지 이혼을 시키러 재판에 가야 해요. 아버지가 돈이 많아서 벌써 세 번째 결혼을 젊은 조선족 여자랑 했는데 그 여자가 바람을 펴서 시아버지랑 이혼을 해야 하네요. 재판하러 가야 해서 참석 못해요. 죄송해요. "


그냥 개인적 사정이 있어서 못 간다고 해도 되는데... 지금도 이런 말 하기는 쉽지 않은데.. 더구나 교사가?... 더구나 여교사가?... 더구나 새로 전입한 여교사가?... 그것도 이십삼 년 전에?...

H의 그런 솔직함은 그녀들의 눈에 띄었고 술을 못하는 점이 못내 아쉬웠지만, 노란색 안전모를 쓰고 50CC 오토바이로 출퇴근을 하는 초보 라이더라는 점도 꽤 흥미로웠다. 시내버스를 추월 못하는 초보 라이더의 실력이라 할 수 없이 버스의 뒤꽁무니의 배기가스를 몽땅 마시며 출근하는 무용담을 늘어놓는 H의 유쾌함은 충분히 그 모임에 들어올 자격이 되었다. 그렇게 그녀들은 여섯이 되었다.


상호 간의 명칭이 ‘선생님’에서 ‘언니와 00아’로 바뀌고 나서부터 그들은 시시때때로 뭉치고, 학교 안의 모든 일을 다 알고 관여했다. 단지 호기심 때문은 아니었다. ‘이건 아니지!’의 정의감과 패기가 그들을 뭉치게 했다. 교내의 관리자들의 횡행과 비민주적 절차를 고치기 위해 힘을 합쳤고, 학생들의 인권 신장을 위해 노력했다. 특히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나타나는 짱가’처럼 J를 필두로 나타나서 해결하였다.

(짱가는 2000년 초반에 방영했던 만화영화 제목으로 아주 유명했던 변신 로봇의 이름이다. 만화주제가가 이렇게 시작한다.)

그녀들은 전투력만 있는 게 아니었다. 낭만도 있었다. 낭만 담당은 P였다. P가 제안하면 Y가 세부계획을 세우고 운전을 담당하여 떠났다.

주산지의 새벽 운무를 보겠다고 밤 11시에 모여 밤새 달려간 적도 있었고, 꽃이 필 때면 유명 꽃산지를 찾아가기도 했다. 첫눈이 오던 날은 덕유산 향적봉으로 내달리기도 하였고, 밤바다가 보고 싶으면 퇴근 후 4시간의 운전도 마다하지 않고 간 적도 많았다.


모두가 같이 한 학교에 근무한 3년 동안 거의 매일 같이 모였고, 매일 같이 치열했다. 그 뒤 한 명씩 다른 학교로 가면서 일 년에 네다섯 번 정도 만나는 모임이 되었지만, 우정의 강도(剛度)는 전혀 변함이 없었다. 그녀들은 여전히 서로의 생일을 챙기며 그렇게 우정을 다졌다.


막내 K가 오랫동안 그녀를 짝사랑해 왔던 동료 교사와 결혼을 하고, 우리의 드라이버 Y도 마침내 결혼을 했는데 제일 참을성이 많던 Y가 제일 먼저 이혼을 하여 유일하게 고졸이란 이름값을 하였다. 나머지는 막내가 고등학교뿐만 아니라 대학도 졸업했음에도 불구하고 무채색 부부로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다.


항상 그렇게 찬란할 줄 알았던 그녀들의 ‘고졸’이 가장 마당발이었던 P가 암으로 투병하다가 갑자기 오 년 전 세상을 떠나면서 빛이 사그라들었다. 여섯 중 하나가 그렇게 가고 남은 다섯은 상실감과 충격에 한동안 모이기도 쉽지 않았다. 모여서 서로의 상처를 보듬기조차도 두려웠다.

그저 톡방에서만 안부를 물으며 그때와 맞물린 코로나 시기를 그렇게 견디었다.

그런데 K가 작년까지 2년 동안 암투병을 하면서 그들은 다시 뭉쳤다.

P를 맥없이 떠나보내야만 했던 그녀들은 K의 투병에 일거수일투족 관여를 했고 그녀의 완치를 위해 노력을 했다. K가 다시 복직하던 작년 9월 그녀들은 애써 눈물을 참으며 기쁨을 누렸다.


그리고 모임의 첫 명퇴자인 J의 축하모임을 하기 위해 올해 2월의 어느 날 그들이 아주 유쾌하게 뭉쳤다.

꼭 그녀의 마지막 출근날 저녁에 모여 기쁨과 위로를 해야한다는 J를 제외한 나머지의 제안으로 성사되었다.

퇴직축하 내용이 담긴 X배너 스탠드를 제대로 못 다뤄 자꾸 쓰러져서 깔깔깔,

노안으로 인하여 공로패의 글자가 보이지 않아 제대로 읽지 못해서 깔깔깔,

주변에 쪽팔리니까 좀 조용히 웃으라는 막내의 지적에 깔깔깔,

장학사인 C의 교감 임지에서 퇴직을 꿈꿨는데 결국 이루지 못하고 떠난다는 J의 답사에 깔깔깔..


이제 오십대초반부터 육십대 초반이 된 그녀들은 모이면 항상 깔깔이다. 십 년의 차이도 넘지만 언니라는 호칭 빼고는 다 반말이다. 그것을 의식도 못한다. 격의 없는 그 반말과 그 세월의 더께가 더 소중하기 때문이다.

사회에서 친한 친구들을 만드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도 알고 그것을 유지하는 것은 더 어렵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J는 그녀들이 해준 공로패의 가치를 무엇보다도 크게 인정하고 고마워한다.

그냥 공로패도 아니고 요즘 천정부지로 오르는 24K 반돈의 순금 열쇠를 장착한 공로패인데 어찌 소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자매애 #우정 #함께늙는다는것 #사회친구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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