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일기 1 : 그림일기의 탄생 비화
그녀는 초등학교 때부터 중학교 때까지 사생대회에 나가면 대상도, 장려상도 아닌 중간쯤의 상인 은상이나 동상을 받았다. 그 애매한 재능은 중학교 때까지 지속되어 미대를 가겠다는 꿈을 가진 여중생을 헷갈리게 했다. 빠듯한 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 공무원 아빠의 장녀로 태어난 그녀는 셋방살이를 중1 때까지 했다. 그리 넉넉지 않은 살림 형편에 미대를 가겠다는 꿈을 가질까 말까를 고민할 즈음, 그 정도는 아니라는 미술선생님의 현실적인 조언은 차라리 깔끔한 포기를 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것과 별개로 크게 스크레치를 입은 중2 여중생의 자존심은 며칠을 식음전폐하게 하였지만, 그 사정을 모르는 엄마에게는 끝까지 진실을 함구한 것도 그녀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그렇게 며칠을 헤매고 그녀는 탁탁 털고 일어났다. 그녀에게는 또 다른 재능인 공부가 있었다. 당시 그녀의 성적은 전교 10등을 벗어나지 않았기에 그 명분과 실질적 이득은 훨씬 설득력이 있었다.
그녀는 초등학교 때 교내 글짓기 대회에서 모든 상이란 상은 다 휩쓸었다. 동시, 산문 장르를 가리지 않고 나갔다 하면 상을 탔다. 그 재능은 대학까지 지속되어 맥심 커피로 유명한 '동서문학상'에서 2등 정도의 성과를 올렸다. 30년도 훨씬 넘은 오래된 기억이라 정확한 등수는 긴가민가 하지만 확실히 1등은 아니었다. 그녀는 당시 수상작들의 작품을 편찬한 책과 함께 상품인 오디오세트를 받았다. 그 뒤 몇 번의 이사로 인해 분실한 것이 못내 안타깝다.
그러나 그녀의 그 애매한 재능2는 거기서 멈췄다.
워킹맘의 육아에 치어 흔적도 없이 그렇게 삼십 년을 넘게 숨어만 지냈다. 가끔 회사의 문예란에 몇 번 얼굴을 드러내 아직은 숨이 끊어지지 않았음을 확인할 뿐이었다.
그러다 그 애매한 재능1이 다시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은 그녀의 자식들이 다 독립하고 나서 빈둥지 증후군과 갱년기 증상을 한꺼번에 겪을 때였다. 지독한 불면증에 시달리며 수면제 처방을 받기 위해 간 병원에서 평소 좋아하던 취미생활을 한번 해보라는 충고로부터 시작되었다.
바로 실행으로 옮겨 화실을 등록하고 퇴근 후 일주일에 한두 번씩 6개월을 다녔다. 한번 빠지면 훅 집중하는 그녀의 성격에 보답하듯 그림 실력은 날로 좋아졌다. 그러나 요번에도 신은 그녀에게 또 한 번의 좌절을 안겨주었다. 중2 때와는 달리 이제는 그 애매함을 사랑하는 나이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즐기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인 건강에 태클이 걸렸다. 왼쪽 팔과 다리의 방사통이 너무 심하여 MRI를 찍은 결과 목과 허리의 중복 디스크 판정을 받고 그녀는 결국 그림을 중단하였다.
몇 년을 그림과 절교하고 지내다가 다시 그림에 대한 욕구가 드러난 것은 디스크가 많이 호전된 즈음이었다. 어반스케치라는 분야를 알게 되었다. 어반스케치란 단어 그대로 주변의 도시 정경을 빠르고 간략하게 스케치하는 것을 말한다. 집중하지 않아도 되고 자세히 그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그녀의 건강 상태와도 잘 부합되었다.
그녀는 코로나가 시작되던 2019년부터 닥치는 대로 그리기 시작했다. 다시 화실을 다니지는 않았지만 그냥 유튜브나 어반스케치와 관련된 책을 구입하여 참고하면서 그녀 나름대로 그렸다.
'그리움을 그린다.'라는 허세와 자만이 뿜뿜 드러나는 제목을 가진 아트북 1권에 차곡차곡 그림을 쌓아나갔는데 어느덧 오십여 장이 넘었다.
대부분의 어반스케치는 그림이 위주이고 글은 거의 없다.
그러나 그녀의 그림은 스케치와 소회를 곁들여서 그녀만의 그림일기가 되었다.
이제 그녀는 '브런치스토리'를 시작하면서 그림일기를 연재할까 한다.
딱 그녀의 수준에 맞는 애매한 재능 1 <그리기>와 애매한 재능 2 <쓰기>가 결합되어 더 애매한 <그림일기>가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건 그녀가 책임질 일이 아니다.
' 글쓰기는 일상의 고통과 스트레스를 극복하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좋은 길이며, 글쓰기 습관에 충분한 시간을 부여하는 것이 최고의 자기 배려'라고 말한 세퍼드 코미나스의 말을 그녀는 찰떡같이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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