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일기 2 : 부모님의 회혼례
지난 2024년 11월 8일은 부모님의 회혼례였다.
회혼례의 사전적 의미와 조건은 결혼한 지 60년이 되는 해에 두 분이 모두 살아있어야 하고, 자식들도 모두 살아있어야 하는 것이다. 누군가는 자식 중에 이혼을 한 사람이 없어야 한다는 것도 조건에 넣기도 하지만 그건 구시대적인 발상이므로 논외로 하기로 한다.
작년은 의미 있는 가족행사가 두 개나 있었다.
상반기에는 아버지의 미수(米壽)가 있었다. 88을 한자로 쓰면 八十八이고 이것을 의미있게 조합하면 쌀 미(米)자와 같아서 88세 되는 해를 미수라 한다. 환갑도 못 채우던 예전 관습의 기준으로 보면 88살까지 산 것은 아주 축하할 일이지만 요즘은 장례식장에 가봐도 구십을 넘은 경우가 아주 흔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다. 아파트 노인정에서 모든 정보를 흡수하고 비교하시는 부모님 입장에는 여느 생신과 같게 하면 서운해하실 것이 틀림없기에 축하이벤트를 나름 신경 써서 재밌게 해 드렸다.
그리고 하반기에 있었던 회혼례의 행사진행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맛있는 식사 외에 축하플래카드도 맞추고 두 분이 좋아하시는 현찰도 두둑이 준비하는 옵션도 추가하였다.
축하플래카드가 아주 신의 한 수였다.
두 분 모두 흡족해하셨고 고마워해하셨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후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엄마: 얘~ 나 오늘 한 건 했다~!
나: (뭔 소리?... 애써 두근거리는 맘을 누르고..) 무슨 소리세요? 뭘 한 건 하셨다는 건지?
엄마: 오늘 미사를 갔는데 미사 말미에 신부님이 우리 둘을 호명하며 일어나라고 하시더라. 회혼례를 축하한다며 하셨고 그리고 모든 신자들이 다 박수를 쳤어~
나: 잉? 신부님이 두 분 회혼례를 어떻게 아셨어요?
엄마: 어~ 사실은 내가 늬들이 준 돈에서 일부를 감사헌금으로 냈거든. 내면서 사무장님한테 늬들 자랑을 했지. 아마 사무장이 신부님한테 말씀드렸나 봐~
나: (그러면 그렇지.. 우리 엄마가 자랑을 안 할리가 없지...ㅋㅋ )
그래서요? 근데 그게 뭐가 문제예요?
엄마: 어~ 신부님이 아버지한테 먼저 '다음에 또 태어나도 자매님과 결혼하겠냐?'고 물었거든.
그랬더니 늬 아버지가 ' 네~'라고 바로 대답했는데, 나는 그렇게 대답 안했거든..
'아이구, 신부님~ 육십 년을 살았으면 되었지, 또 살라구요? 절대 안 살아요~!'
나: 그래서 신자들이 다 뽱~ 터졌겠네요~ 잘 하셨네~~!! 맨날 지겹다 지겹다 타령을 하셨는데 하느님 앞에서 거짓말하시면 안 되지~ ㅋ
엄마: 맞아~ 난 솔직히 말했고 늬 아버진 거짓말을 했어. 근데 가관인 게 집에 와서 나한테 화를 내더라.. 신자들 앞에서 자기 망신시켰다고~! 참나, 왜 화를 내?? 도둑이 지 발 저린거지~
충분히 예상가능한 일이다.
두 분의 성정상 아버지는 그 연세의 남자들보다 조금 더 타인의 눈을 의식하는 분이고, 엄마는 그 연세의 여자들보다 훨씬 솔직하고 타인의 시선을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분이다.
아버지는 평균이상, 엄마는 평균이하~
그렇게 성당의 에피소드는 '형제 톡방'에서 충분히 웃음을 주는 해프닝으로 잘 마무리되었다.
육십 년을 같이 산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우리가 처음 옷을 입을 때는 옷을 인식하지만, 입고 있는 동안은 의식하지 못한다. 특별히 불편한 부분이 없는 한 굳이 의식할 필요가 없으니까...
부부가 같이 사는 것도 같은 이치가 아닐까 싶다. 불편함이 지속된다면 결국 벗을 수밖에 없지만, 그 불편함이 벗지 않을 정도일지 아니면 그 불편함마저도 익숙해져서 의식하지 못하는 건지는 당사자들만 아는 일이다.
여하튼 육십 년을 같이 살았다는 것은 충분히 박수를 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
인내와 사랑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 그리고 절대 일방의 노력으로만 되지 않고 , 쌍방의 노력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도 간과할 수 없다. 같이 30년을 조금 더 산 사람으로서 충분히 깨달은 바이다.
여하튼 生老病死중 生만 빼고 나머지를 같이 하고 계신 두 분이 무리없게 잘 마치시길 바랄 뿐이다.
#회혼례 #부부 #같이늙는다는것 #인내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