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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장|아침마다 너는, 눈물로 얼룩진 베개를 걷어찼

베개에 남은 새벽의 무늬

by He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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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exander Zemlinsky – Symphonische Gesänge für Bariton und Orchester, Op. 20 (Text aus Harlem-Renaissance-Poetry)


아침마다 너는, 눈물로 얼룩진 베개를 걷어찼지. 아무도 모르는 싸움의 흔적처럼, 밤새 네 곁에서 숨죽여 젖어 있던 베개는 아침빛을 받으며 꼭 들켜버린 비밀 같았어. 말로는 털어낼 수 없던 감정들이 밤마다 베갯속으로 스며들었고, 네가 발끝으로 툭 밀어낸 그 작은 동작은 어쩌면 ‘나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는 미약한 저항이었을지도 몰라. 끝내 울음을 거두지 못한 채 잠든 너에게 아침은 늘 무심했지. 어제의 슬픔과 오늘의 삶 사이에 얄팍한 경계만을 그어놓고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새벽을 밀어 넣었으니까.

밤의 너는 달랐다. 조용히 누워 천장을 바라볼 때, 네 마음은 분주했어. 입 밖으로 내지 못한 문장들이 가슴 안에서 서로를 밀치며 뛰쳐나올 틈을 찾고 있었지. “그때 왜 그랬을까”, “나는 왜 이렇게밖에 못할까”, “도대체 어디서부터 무너진 걸까.” 이런 질문들은 답을 찾지 못한 채 네 몸 안을 선회하다가 결국 눈물로 형태를 바꾸어 베개 위로 떨어졌다. 베개는 네 마음을 가장 오래 들어준 귀신같은 청자였어. 말 대신 눈물로 적힌 문장들을 한 밤 사이에 고이 받아내며 스며들어갔지. 그 축축한 온기는 네가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유일한 흔적 같기도 했어.

그러나 아침의 태양은 늘 잔혹할 만큼 성실했어. 커튼 틈으로 스며드는 빛은 네가 얼마나 울었는지 알지 못했고, 알고 싶어 하지도 않았지. 그저 예정된 역할 그대로 너를 깨우는 데 집중했을 뿐이었다. 눈가에 남은 소금의 결이 햇빛 아래 드러나는 순간, 너는 씁쓸한 웃음을 지었을 거야. “또 울었구나.”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도 않았는데, 이미 마음은 알고 있었지. 물 한 줌 떠 얼굴을 적실 때, 손등에 닿는 차가움이 네가 살아 있다는 감각을 일깨우는 유일한 방식이기도 했다. 밤새 흔들린 마음이 아직도 제자리를 찾지 못한 채 머무르고 있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네가 울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지. 내려오는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사람들은 그저 예의 바른 미소를 보일 뿐이었고, 버스 창밖에서 스쳐가는 풍경도 네 속사정을 모른 채 지나갔다. 모두가 당연하게 하루를 시작하는 그 시간, 너는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은 눈물의 무게를 혼자서 끌어안고 있었어. 손잡이를 잡은 손끝이 밤의 떨림을 기억하고 있어도, 아무도 묻지 않았지. 그저 “괜찮아 보이네”라는 투명한 기대만이 공기 중에 떠다녔을 뿐이다.

감정에는 분명 이름이 있었어. 상실, 고립, 배신, 막연한 불안, 예고 없이 밀려오는 무기력. 그런데 어떤 것들은 단어로 조명할 수 없는 종류의 그림자였지. 어디에도 놓을 수 없어서, 네 마음 안에서만 허우적거리게 되는 그런 종류. 그 그림자들은 마치 새벽녘 골목에 피어오르는 안개처럼, 형태가 없어서 더 무겁게 느껴졌다. 너는 그 안개를 헤치고 길을 찾으려고 애썼지만, 발걸음은 계속 제자리에서만 맴돌았다. 그러다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지. 그것만이 네가 가진 유일한 표현 방식이었으니까.

그러던 어느 아침이었다. 평소처럼 베개를 걷어차려는 순간, 발끝이 베개를 향해 멈칫했어. 눈물 자국이 흰 천 위에 얼룩무늬처럼 번져 있었고, 네 두 눈은 밤새 부풀어 올랐지. 하지만 그날은 이상했어. 그동안 수없이 반복되었던 ‘이제 일어나야지’라는 체념의 힘이 갑자기 약해졌고, 네 몸 어딘가에서 작은 저항이 일어났어. 더 이상 아무렇지 않은 척 일어나고 싶지 않다는 감정이 들어올 때, 니 가슴은 작은 파열음을 냈지. 그 순간 너는 베개를 걷어차지 않았어. 오히려 양손으로 끌어안았어. 마치 너무 오랫동안 위로만 받다 결국 네가 먼저 미안해진 사람처럼.

그 작은 움직임은 아주 큰 변화의 시작이었어. 너는 그날 지하철 대신 병원의 문을 열었지. 스마트폰 화면을 수차례 망설이며 누르던 손끝이 마침내 용기를 내 상담 신청 버튼을 눌렀고, 그건 네 삶에서 가장 조용하면서도 가장 용감한 클릭이었다. 누군가의 도움을 청한다는 것, 아무리 무너져도 무너지지 않을 수 있다는 희망을 조금이라도 믿어보겠다는 결심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었어. 그 결심은 네 눈물이 쌓여 만들어낸 가장 단단한 증거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너는 조금씩 달라졌지. 여전히 울리는 날이 많았고, 밤은 쉽게 적막해지지 않았지만, 그 적막 속에서도 네 마음은 천천히 들숨과 날숨의 온도를 되찾기 시작했어. 세상이 여전히 너를 몰라준대도, 너만큼은 네 마음을 흘려버리지 않으려는 노력을 반복했지. 그 반복은 아주 느렸지만, 사라지지 않았어. 사람들은 잘 모르는 변화였지만, 너는 알고 있었지. 그 느린 걸음이 너의 삶을 다시 짚어가는 첫 발자국이라는 걸.

그리고 어느 날, 베개가 밤새 젖지 않은 아침을 맞았어. 네 눈이 신기하다는 듯 깜박였고, 입술 끝이 아주 미세하게 올라갔지. “오늘은 울지 않았구나.”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기 전, 이미 너는 그 사실을 온몸으로 알고 있었어. 베개는 가볍고, 너의 머리는 이전보다 덜 무거웠으며, 아침 빛은 네게 조금은 따뜻하게 느껴졌지. 삶이 완전히 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아주 작은 틈이 생겼다는 건 분명했어. 너는 그 틈으로 숨을 들이켰지.

물론, 그 후에도 다시 울었던 밤이 많았다. 어떤 날은 이유도 없이 무너졌고, 어떤 날은 오래된 상처가 덜컥 다시 나타나 베개를 적셨지. 하지만 이전과 달라진 건, 너는 이제 그 눈물이 영원히 계속될 거라고 믿지 않는다는 사실이야. 네 안에 조용히 생긴 그 틈, 그 틈을 통해 삶이 천천히 흘러 들어오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울어도 괜찮은 날이 있고, 울지 않아도 괜찮은 날이 있다는 걸 너는 이제야 조금씩 배워가는 중이었어.

아침마다 너는 눈물로 얼룩진 베개를 걷어찼다. 하지만 이제 그 행동의 의미는 예전과 다르다. 그때의 너는 무너지는 마음을 감추기 위해 베개를 밀어냈지만, 지금의 너는 밤과 아침 사이에서 조금은 더 단단해진 마음으로 하루를 맞을 수 있게 되었으니까. 언젠가는 베개가 눈물이 아니라 따뜻한 숨결만을 간직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날 아침, 너는 아마도 아무 일 없다는 듯 이불을 정리할 거야. 그리고 그 평범함 속에서 아주 작은 충만함을 느끼겠지.

그제야 너는 비로소 이렇게 말할 수 있을지도 몰라.
“아침마다 눈물로 얼룩진 베개를 걷어찼던 시절이 있었지. 그 시절의 나는 참 많이 외로웠지만, 결국 그 베개 위에 다시 웃음을 눕힐 수 있게 되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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