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읽은 문장보다 솔직했다
귀문관살이 있는 사람은 꿈을 자주 꾼다던데, 어젯밤 나는 살목지에 있었다. 잠들기 직전까지 읽고 있던 소설 한 문장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두운 숲』 속에 스쳐 지나가듯 등장한 살목지라는 지명, 그리고 심야괴담회에서 몇 번이나 반복해 들었던 이야기들. 익숙하다고 느꼈던 그 감각이 그대로 꿈의 입구가 되었다. 의식이 잠으로 넘어가는 순간, 나는 이미 그 장소에 발을 들여놓고 있었다.
꿈속의 살목지는 설명하기 어려울 만큼 어두웠다. 달도 별도 없는 밤, 호숫가인지 저수지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 물가 근처였다. 인적은 전혀 없었고, 숲길은 길이라기보다는 검은 틈에 가까웠다. 나는 그 한가운데 혼자 서 있었다. 바람 소리는 없는데도 나무들이 서로 몸을 스치는 기척이 느껴졌고, 물은 움직이지 않는데 출렁이는 소리만 반복됐다. 이곳은 현실의 풍경을 닮았지만, 현실보다 훨씬 압축된 어둠을 품고 있었다.
뒤에서부터 한기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누군가 다가오는 발소리도, 그림자도 없었지만 분명히 ‘뒤’라는 방향이 느껴졌다. 이상하게도 도망쳐야겠다는 생각보다 먼저 떠오른 건, 아 이 느낌이라는 자각이었다. 마치 오래전에 한 번 겪어본 감각처럼 익숙했다. 한기는 점점 짙어졌고, 어느 순간부터는 손이 아니라 공기 자체가 내 목을 조르는 것 같았다. 보이지 않는데 느껴지는 압박. 숨을 들이마시면 더 조여 오고, 내쉬면 겨우 조금 풀리는, 아주 불공평한 숨쉬기였다.
돌아보고 싶지 않았다. 돌아보면 끝나버릴 것 같았고, 동시에 돌아보지 않으면 영원히 이 상태로 남을 것 같았다. 그 모순된 감정 사이에서 꼼짝도 하지 못한 채 서 있었을 때, 귀문관살이라는 단어가 문득 떠올랐다. 누가 말해준 것도 아니고, 글자로 보인 것도 아니었다. 그냥 개념처럼, 기억처럼 스쳤다. 사주에 귀문관살이 있다고 들었던 날, 많으면 안 좋다던 말, 다행히 하나뿐이라던 해석. 촉이 좋은 정도라는 말이 그 순간에는 이상하리만치 현실적인 설명처럼 느껴졌다.
귀신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곳에 내가 서 있는 이유를 초자연적인 존재로 설명하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예전에도 유독 피곤할 때 헛것을 본 것 같다고 느낀 적이 있었고, 그런 날이면 꿈을 유난히 많이 꾸곤 했다. 현실과 꿈의 경계가 얇아지는 순간들. 이 장면 역시 그 연장선 위에 있다는 걸, 꿈속의 나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공포는 있었지만, 완전히 압도되지는 않았다.
그때 숲이 아주 잠깐 드러났다. 빛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희미한, 기억이 켜지는 것 같은 순간이었다. 나무들은 이상하리만치 곧게 서 있었고, 전부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각각의 나무가 아니라 하나의 벽처럼 느껴졌다. 그 사이 어딘가에 내가 숨 쉬지 못하게 만든 이유가 있다는 걸, 설명 없이 이해했다. 이곳에는 출구가 없는 게 아니라, 나가고 싶다는 마음이 점점 옅어지게 만드는 구조가 있었다.
목을 조르던 감각이 가장 강해졌을 때, 갑자기 생각이 또렷해졌다. 이건 어젯밤 읽던 이야기의 연장선이고, 나는 지금 너무 깊이 들어와 있다는 자각이었다. 『어두운 숲』 속에서 사람들이 왜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는지, 왜 길이 없다고 느꼈는지. 길이 없어서가 아니라, 돌아갈 힘이 먼저 닳아버렸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그 깨달음과 함께 숨이 갑자기 풀렸다. 나는 비명을 지르지도, 버둥대지도 못한 채 그대로 주저앉았다. 땅에 닿는 감각조차 없이, 그냥 어둠 속으로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그 이후의 꿈은 흐릿했다. 살목지가 사라진 건지, 내가 빠져나온 건지 알 수 없었다. 장면은 점점 희미해졌고, 완전히 잠에서 깬 것도, 계속 꿈을 꾼 것도 아닌 상태가 이어졌다. 눈을 떴을 때 방 안은 익숙했고 안전했지만, 목 주변이 괜히 뻐근했다. 숨을 깊게 들이마시기까지 잠시 시간이 필요했다. 꿈은 끝났지만, 감각은 아직 돌아오지 않은 것처럼.
아침이 되고 나서야 이 꿈을 다시 떠올렸다. 귀문관살이라는 단어, 살목지라는 지명, 어둠과 압박감. 불길함보다는 피로의 흔적처럼 느껴졌다. 너무 많은 이야기와 이미지가 한꺼번에 머릿속에 쌓여 있었고, 몸은 충분히 쉬지 못한 상태였다. 그 모든 것이 밤에 한꺼번에 눌러앉아, 가장 어두운 형태로 꿈을 만들었을 뿐이다.
이 꿈은 무언가를 예고하거나 경고하는 꿈이 아니다. 귀신이 나타났다는 이야기도, 특별한 징조도 아니다. 읽은 문장과 익숙한 괴담, 예민한 감각과 축적된 피로가 만나 만들어낸 밤의 기록이다. 살목지는 배경이었고, 귀문관살은 설명의 언어였을 뿐이다. 진짜 메시지는 훨씬 단순하다. 몸이 먼저 쉬고 싶다고 말했는데, 나는 그 신호를 낮 동안 무시해 왔다는 것.
귀문은 문이지만, 반드시 열어야 할 필요는 없다. 열리지 않은 문 앞에서 잠시 멈춰 서 있었을 뿐이고, 나는 결국 그 자리에서 돌아왔다. 어둠은 꿈에만 남았고, 아침의 공기는 다시 내 것이 되었다. 다만 그 밤을 지나오며 분명해진 것이 하나 있다. 이야기보다 먼저 잠들어야 할 날이 있다는 것, 그리고 피로는 때때로 꿈보다 훨씬 생생한 방식으로 말을 건넨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