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그친 뒤에만 허락되는 것들.
무지개를 보는 일은 손에 꼽을 만큼
드물다. 그래서 우리는 대부분,
무지개를 보지 못한 날들로 살아간다.
비는 종종 내리지만, 햇빛은 제때 오지 않고,
각도는 어긋나며, 마음은 늘 아래를 향해
있다. 하늘은 늘 그 자리에 있는데도, 무지개는
아무 때나 나타나지 않는다. 일곱 가지 색색의 다리를
무지개라 부르는 이유도,
어쩌면 건너기엔 너무 짧고, 믿기엔
너무 쉽게 사라지기 때문일 것이다.
어릴 적에는 무지개를 보면 소원을
빌어야 한다고 배웠다. 그 말은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자연스럽게
믿어졌다. 무지개는 그 자체로 기적이었고,
기적 앞에서는 마음속의 바람이 크든 작든 같은
무게로 허락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그 다리를 올려다보며 오래 서 있곤 했다.
소원을 빌었다기보다 느, 사라지기 전까지
최대한 오래 눈에 담아두려
애썼다는 쪽이 더 정확하다.
무지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말보다 많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 침묵이
이상하게 안심을 주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무지개는 점점
희귀해졌다. 비가 오면 젖을 걱정했고,
해가 뜨면 바쁠 이유를 먼저 떠올렸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는 일은 생활의 가장
마지막 순서로 밀려났다. 그렇게 몇 번의 비와
몇 번의 햇빛을 놓친 뒤, 무지개는 더 이상
'드문 풍경'이 아니라 '잘 떠오르지 않는 기억'이
되었다. 드물다는 건 소중하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놓치기 쉽다는 말과 닮아 있었다.
어느 날, 비가 그친 뒤였다. 특별한
기대도 없이 걷다가 문득 고개를 들었을 뿐인데,
하늘에 무지개가 걸려 있었다. 낮고, 가까워 보이는
무지개였다.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다는 착각이 들 만큼.
그 순간 나는 멈춰 섰다. 사진을 찍을까,
누군가에게 알려야 할까 잠깐 망설였지만, 이내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했다. 저장되지 않아도 괜찮은 장면이
있다는 걸, 그날의 무지개가 알려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화면에 남기지 않아도 마음에는 충분히 남는 순간이
있다는 사실을, 오랜만에 떠올렸다.
무지개는 늘 완전한 원이 아니다.
대부분은 반쪽만 보여준다. 그래서 무지개를
바라보고 있으면 어딘가가 비어 있는 느낌이 든다.
보이지 않는 나머지 반쪽은 각자의 기억 속에서
완성해야 하는 몫처럼 남는다.
삶도 비슷하다. 우리는 늘 일부만 보고,
일부만 이해한 채 하루를 건너간다.
완전하다고 믿는 순간조차 사실은 절반쯤일지도 모른다.
무지개는 그 불완전함을 숨기지 않는다. 오히려
있는 그대로 드러낸 채 서 있다.
일곱 가지 색은 서로 섞이지 않으면서도
한 줄로 이어져 있다.
비슷해지지 않아도 괜찮고, 같은 빛을
내지 않아도 충분하다는 사실을 무지개는
조용히 증명한다.
누군가는 붉은 쪽을 오래 바라보고,
누군가는 푸른 쪽에 시선을 둔다.
그래도 무지개는 서운해하지 않는다.
선택받지 못한 색마저 전체를 이루는 데
필요하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각자의 색으로 버티는 것만으로도
이미 하나의 다리가 될 수 있다는 말은,
생각보다 자주 잊힌다.
무지개는 기다림의 결과이기도 하다.
비를 견뎌야 하고, 그친 뒤에도 다시 햇빛을
만나야 한다. 그렇다고 오래 머물지도 않는다.
그래서 무지개는 성취라기보다
위로에 가깝다. 애써 쟁취했다기보다는, 잠시
허락받았다는 느낌. 노력의 보상이라기보다는,
버텨낸 시간에 대한 짧은 인사처럼 다가온다.
기쁘면서도 조심스러운 마음이 드는 이유는,
이 장면이 오래 이어지지 않으리라는 걸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나는 무지개를 몇 번이나 놓쳤다.
비가 그쳤는데도 고개를 들지 않았고, 하늘이 밝아졌는데도
발치만 보며 걸었다. 그날도 분명 무지개는 있었을지 모른다.
다만 내가 보지 않았을 뿐이다. 지나간 뒤에야 아쉬움이 남았다.
놓친 것은 풍경이 아니라, 잠시 멈출 수 있었던 나 자신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사실이 뒤늦게 마음을 건드렸다.
무지개는 의미를 요구하지 않는다.
해석하지 않아도 괜찮고, 교훈을 찾지 않아도 된다.
그저 나타났다가 사라질 뿐이다.
그래서 오히려 오래 남는다.
의미를 붙이지 않은 장면이 더 깊이 각인되는 경우처럼.
무지개는 설명을 거부하는 대신,
기억 속에서 천천히 색을 바꾼다.
나는 무지개를 떠올릴 때마다,
분명히 존재했지만 지금은 손에 잡히지
않는 순간들을 함께 생각한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장면들, 같은 모습으로는 다시
만나지 못할 얼굴들. 무지개처럼, 그 모든 것은 분명히 있었고,
분명히 아름다웠다. 지금은 닿을 수 없을 뿐이다.
그래서 무지개는 상실의 상징이 아니라, 기억의 방식에
가깝다. 사라졌다고 해서 없었던 것은 아니라는,
너무도 단순해서 자주 잊히는 진실을 조용히 건네는
방식.
무지개 아래에서 우리는 잠시
멈춘다. 걷던 속도를 늦추고, 생각을 덜어내고,
말수를 줄인다. 그 짧은 정적 속에서 마음은 제자리로
돌아온다. 무지개가 사라진 뒤에도,
그때의 고요는 조금 더 오래 남는다.
아마도 무지개가 남기는 진짜 흔적은 하늘이
아니라 사람의 안쪽일 것이다.
이제는 안다. 무지개는 붙잡으려 할수록
멀어지고, 아무 기대 없이 고개를 들었을 때에만
나타난다는 것을. 그리고 우리가 건너야 할 다리는 언제나
하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잠시 멈출 줄 아는 마음
위에도 조용히 놓인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