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는 울지 않는다, 대신 남아 있을 뿐
바닷가 보육원에는 파도 소리가 먼저 도착한다. 아이들보다, 어른들보다. 누군가 울기 전에 이미 울고 있는 소리. 그래서 이곳에서는 아이가 울어도 크게 놀라지 않는다. 바다가 대신 울어주고 있으니까. 나는 그 사실이 이 장소를 가장 정확하게 설명하는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슬픔을 숨기지 않아도 되는 곳, 대신 흘려보내는 법을 먼저 배우는 곳.
아침이면 아이들은 파도 소리에 눈을 뜬다. 기상 종이 울리기도 전에 바다는 하루를 시작한다. 창문을 열면 짠 공기가 먼저 밀려들고, 아이들은 무심한 얼굴로 그 풍경을 받아들인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처럼. 하지만 생각해 보면, 이보다 더 특별한 기상은 없다. 하루의 시작이 늘 같은 방향을 향해 있다는 것.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묻지 않아도, 시선이 자연스럽게 향하는 곳이 있다는 것.
바닷가 보육원에 모인 아이들은 각자의 사연을 들고 온다. 누군가는 기억을 잃고, 누군가는 기억에 붙잡혀 있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과거를 묻지 않는다. 대신 오늘의 바다를 묻는다. 오늘 파도는 높았는지, 바람은 차가웠는지, 해 질 무렵 하늘은 어떤 색이었는지. 아이들은 그 질문에 익숙하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마음을, 풍경으로 대신 말할 수 있다는 걸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의 오후는 느리다. 아이들은 모래 위에서 시간을 쌓고, 다시 허문다. 일부러 무너뜨리는 아이도 있고, 파도가 와서 무너뜨리기를 기다리는 아이도 있다. 누구도 그 장면을 말리지 않는다. 무너지는 것이 실패가 아니라는 걸, 이곳에서는 일찍 배운다. 무너진 자리는 다시 평평해지고, 그 위에 또 다른 모양이 그려진다는 사실을 아이들은 몸으로 안다.
어른들은 흔히 말한다. 보육원 아이들은 상처가 많다고. 하지만 이곳의 아이들은 자신을 그렇게 부르지 않는다. 그저 바다 옆에서 자라는 아이들일 뿐이다. 상처는 설명을 요구하지만, 바다는 묻지 않는다. 울면 울게 두고, 웃으면 웃게 둔다. 그래서 아이들은 감정을 숨기는 대신 흘려보내는 법을 배운다. 눈물이 바닷물에 섞여도, 아무도 그것을 구분하려 들지 않는다.
밤이 되면 보육원은 더 고요해진다. 불을 끄면 파도 소리가 더 가까워진다. 아이들은 침대에 누워 각자의 상상을 꺼낸다. 파도 너머에 누군가 있을 거라는 생각, 언젠가는 돌아올 거라는 믿음. 어른들은 그 상상을 꺾지 않는다. 진실보다 위로가 먼저 필요한 밤이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나는 이곳을 떠올릴 때마다 생각한다. 어쩌면 바닷가 보육원은 아이들을 보호하는 곳이 아니라, 아이들이 세상을 연습하는 장소일지도 모른다고. 떠나도 괜찮고, 남아도 괜찮고, 잃어도 다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배우는 곳. 이곳의 아이들은 일찍 안다. 모든 이별이 파괴는 아니라는 것을. 어떤 이별은 다음을 살아가기 위한 연습이라는 것을.
바다는 오늘도 같은 자리에 있다. 아이들이 자라 떠나도, 다시 돌아오지 않아도. 끝까지 붙잡지 않지만, 끝까지 지켜보는 존재처럼. 그래서 이곳은 슬프지만 절망적이지 않다. 누군가 곁에 없더라도, 돌아올 수 있는 자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사람은 충분히 버틸 수 있다는 걸, 이 바닷가 보육원은 매일 증명하고 있다.